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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훈이 '증세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 합리적인 이유

  • 허완
  • 입력 2017.07.24 10:53
  • 수정 2017.07.24 11:57
ⓒ뉴스1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정부·여당의 '초대기업·초고소득자 증세' 계획에 대해 "증세를 논의하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두 가지 잘못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뼈 아프게 들릴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솔직히 사과하는 게 앞으로 야당과 국민의 동의를 얻는 데 꼭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가 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①소요될 예산에 대한 애초의 계산이 틀렸고, ②입장을 번복하면서 솔직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

이 대표는 우선 "대선 기간 문 대통령이 말한 재원 소요는 엉터리였다는 점을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문 대통령은 공무원 17만4천명을 늘리는데 24조원이면 된다고 했지만 예산정책처는 328조원이라고 했고, 국정 100개 과제 시행에 178조원 예산은 턱도 없이 모자라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표는 "선거기간 내내 증세는 최후 수단이라고 했는데 취임하자마자 증세 카드를 꺼내든 것을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국정기획자문위가) 100대 과제를 발표할 때만 해도 '증세는 필요없다'고 '증세 제로'를 말하면서 정부 지출을 줄인다고 했다"며 "그래놓고 하루만에 말을 뒤집으려니 여당 대표 등이 증세를 건의하는 형식으로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또 '증세가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 깎아줬던 세금을 일부 정상화하는 것'이라는 여당의 설명도 단호하게 반박했다.

이혜훈 : "박근혜 정부 때 담뱃값, 담뱃세를 올려놓고 이걸 세율이 일률적으로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건 증세가 아니다라고 국민한테 혹세무민하는 거랑 똑같습니다."

(중략)

"(웃음) 세율 인상이기 때문에 증세죠. 그때 박근혜 정부가 세율 인상이 아니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라 그랬을 때 민주당이 얼마나 비판했습니까? 세금 부담이 오르는데 왜 증세가 아니냐고. 그런데 그렇게 ‘내로남불’하면 안 되죠. 이건 분명히 증세 맞고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7월24일)

이혜훈 대표의 이런 비판은 나름 합리적인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①에 해당하는 소요 재원의 경우,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5년 간 178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무원 증원 같은 핵심 정책은 물론, 기초·장애인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같은 복지정책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돈이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복지 정책의 특성 상 '줬다가 뺐는' 식의 방향 전환은 어렵기 때문. (물론 그런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다.)

이 대표가 언급한 국회 예산정책처의 공무원 증원 소요재원 추정치 '328조원' 역시 이런 장기적인 영향(30년)을 감안해 산출된 수치다.

이 대표는 이런 이유를 들어 "조세 저항이 적을 것으로 보이는 초고소득자, 초대기업을 상대로 증세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며 "핀셋 증세로는 3조~4조원밖에 걷히지 않고, 전반적인 세제개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좀 더 폭넓은 증세 방안을 제시한 뒤,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

바른정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유승민 전 대표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부터 '중(中)부담 중(中)복지'를 주장해왔다. 이 대표의 이날 발언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해석하면, 이 문제에 대한 문 대통령의 사과나 입장표명을 전제로 바른정당은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논의에 협조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증세 논의가 시작된 과정(②)도 석연치 않은 게 사실이다. 국정기획자문위가 지난 19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한 직후, 언론들은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증세 등 '세법 개정'을 언급했던 것과는 달리, 국정과제 발표 때는 '증세'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약 후퇴 논란이 제기됐다.

당장 그 다음 날인 20일 내각에서부터 "좀 더 나은 복지를 하려면 형편이 되는 쪽에서 소득세를 조금 더 부담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좀 더 정직하게 해야 한다"(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는 쓴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하루 뒤인 21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증세 필요성을 거론했고, 청와대와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검토에 나서겠다고 화답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국정기획자문위에서는) 소득세·법인세율 인상을 장기적 과제로 봤지만 당에서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속도가 빨라진 것"이라는 다소 궁색한 설명을 내놨다.

불과 열흘 전인 12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적어도 소득세 명목세율을 올리는 것은 지금까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던 터라 혼란은 가중됐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며칠 사이에 증세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층에서 충분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 한,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증세 논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핀셋 증세'든 '슈퍼리치 증세'든, '명예증세'든, 증세는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은 주제다. 그만큼 첫 걸음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미 첫 발을 헛디딘 셈이다.

이 대표는 "그냥 솔직하게 대통령이 국민 앞에 이 정도 복지를 하려면 부담이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하시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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