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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이 작가는 배운 게 하나 있다

  • 허완
  • 입력 2017.02.06 17:07

지난해 12월17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5차 탄핵기각을 위한 태극기 집회’에 3만명(경찰 추산)이 나왔다. 대부분 노인이었다. 최현숙(60)씨도 그 속에 있었다. 그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태극기를 손에 쥐고 우는 60대 여성에게 다가갔다. 부산에서 교회 사람들과 함께 올라왔다는 그를 최씨가 토닥였다. 60대 여성은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다니 감격스럽다”고 했다. 울음을 멈춘 그와 그의 동지들은 ‘애국시민 신참내기’로 보이는 최씨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이고 언론사 사주들이고 다 김대중 때 북한 기쁨조랑 애를 낳고 와서 김정은 말을 따르고 그러는 거예요. 팟캐스트에서 들었어요.”

불안과 소외감, 극단적인 주장과 공포가 어지럽게 뒤섞인 태극기 집회에 최씨는 지난해 12월10일과 17일, 31일 세 차례 참여했다. 진보 정치 운동을 했고, 2007년부터는 독거노인관리사로 활동한 그는 지난해 10월 <할배의 탄생>을 포함해 노인들의 생애구술사를 담은 책을 세 권이나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 2일 서울 대흥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그는 태극기 집회를 들여다본 이유에 대해 “노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버린 뒤 조롱거리로 치부해버리기보다 ‘이해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카페에 가입했고, 유튜브에 올라온 태극기 집회 발언 영상을 반복 시청했다. 그들이 애청하는 팟캐스트도 끼고 살았다. 그는 “태극기 노인들의 외침은 일종의 ‘인정투쟁’”이라고 정리했다.

최씨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공간적으로 노인들은 배제되고 내몰려왔다. 이런 식의 인정투쟁의 끝은 ‘너 죽고 나 죽고’식 막무가내다. 점점 극단적인 흐름이 감지되고 있어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태극기 집회에서는 모든 주류 언론을 싸잡아 비난하곤 하는데, 최씨는 “그나마 자신들의 창구라고 생각했던 보수언론마저 잃어버리자 본인들의 시대·가치관·문화가 말살된다고 느껴서인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려는 거다. ‘박근혜’는 이런 상실감을 표상하는 하나의 구실이 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막연한 불안과 공포는 노인에겐 상수다. 태극기 집회에서 만난 한 80대 노인은 최씨에게 “대통령이 잘못했더라도 정치권이 조용히 물러나도록 해줘야지. 시민이 거리로 나와 국정 혼란을 만드는 건 남한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 태극기 집회도 탄핵이든 기각이든 결정이 나면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씨는 “거리에 나온 촛불시민들의 모습은 노인들에겐 혼란이고, 이것은 전쟁의 기억과 동일시됐다. 몸에 새겨진 기억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지 못한 노인들에게 국정 혼란은 두렵고 무조건 막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커 보였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1월31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설치한 천막 주변에 모여 있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는 투신사망한 박사모 회원의 분향소를 이곳에 설치했다. ⓒ한겨레

태극기 집회는 광장에 나서지 않은 노인들의 생각도 많이 바꿔놓았다. 최씨는 “알고 지내는 노인 스무분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지난해 12월 초까지만 해도 모든 노인이 박 대통령을 욕했다. 그러다 점차 ‘불쌍한 대통령이 속았다더라’, ‘모든 정권이 부패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늘었다. 지금은 70%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잘못은 했지만 최순실에게 속은 것이고, 새삼스런 부패가 아니다’라는 논리는 태극기 집회에서 지속적으로 전파되는 메시지다. “집회 발언대에서 집회 군중으로, 다시 동네 경로당으로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 태극기 집회의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촛불의 의미를 되짚는 움직임이 시민사회에서 활발하다. 최씨는 “태극기 집회도 빠뜨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별도의 세계’로 보지만, 그 세계로 배제된 노인들도 결국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경질나서 못 보겠는 거 이해한다. 우리 안의 많은 혐오를 들여다보고 나아지려고 촛불시민들이 많이 애썼다. 그분들께도 다가가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2004년, 47살의 나이에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그의 태극기 노인 관찰기 ‘모든 밀려난 존재들의 악다구니는 아름답다’는 계간지 <문학동네> 2017년 봄호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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