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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주술화, 박근혜의 역주행

막스베버는 근대화와 근대정치의 탄생을 종교와 정치의 합일로부터 이 둘이 분리되는 '脫주술화'(disenchantment)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번 사건이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대로, 종교적 주술에 의해 대통령이 포획된 사건이라면 우리정치는 '정치의 주술화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박대통령의 정치가 주술화에 의존한 것이라면 정치개혁이전에 종교개혁이 필요할 정도로, 이것은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조국의 근대화'에 반하는 역주행임에 틀림이 없다. 박정희는 조국의 근대화를 명분으로 마을 토착신을 모신 성황당을 부수고 미신타파와 계몽에 앞장섰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10.28 07:07
  • 수정 2017.10.29 14:12
ⓒ한겨레

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최순실씨에게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을 유출한 '위법행위'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파문이 연일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깊은 실망감과 배신감에 빠졌다. 분노한 시민들은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은 내각총사퇴와 함께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압박하면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특검과 국정조사를 진행할 태세다.

대체 박근혜 대통령은 왜 참모진도 아닌 민간인 최씨에게 지나치게 의존해 왔던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언론들과 정치권은 사이비 교주로 알려진 최태민씨와의 관계와 여러 증언을 들어,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가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신학림 미디어오늘 대표는 "최순실은 영혼합일교, 영혼합일법(최면술)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일종의 교(敎)의 총재, 교단의 교주일 가능성이 있고, 박 대통령은 신도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2년 전 최순실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가 비선실세로 국정에 개입했다는 논란을 촉발시켰던 박관천 전 경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가 최순실, 정윤회 씨 얘기만 나오면 누나가 최면에 걸렸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27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 "2년 안에 북한이 붕괴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데, 최씨는 주술적 예언가임에 틀림없다"며 "최씨가 무슨 근거로 그런 주술적 예언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만약 대통령이 이 말에 현혹돼 외교·대북정책을 펼쳤다면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한 우 원내대표는 "이 주술적 예언에 사로잡혀 외교안보 정책이 흘러온 것이라면, 외교통일부는 단순히 주술적 예언을 실천하는 부서였다면, 한국은 정말 엉망인 나라였던 것이다. 믿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이건 정말 독재정치도 아니고 한마디로 우스운 '신정정치'라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도 "미르재단도 미륵과 연결된다고 한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최순실씨의 선친인 최태민 목사가 스스로 미륵이라고 했다"면서 "지금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최순실의 사교(邪敎)에 씌어서 이런 일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주술(呪術)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비적인 힘을 빌어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키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해결하려고 하는 기술을 말한다. 부족국가시대의 지배자들은 대체로 무속적 기능을 가진 정치인들이었다. 주술적 능력으로 부족구성원의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의 승패를 예언하며 부족의 운명을 예지하였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단군왕검이 대표적인 주술적 기능을 가진 정치지도자였다.

막스베버는 <탈주술화 과정과 근대: 학문, 종교, 정치>라는 저술에서 근대화와 근대정치의 탄생을 종교와 정치의 합일로부터 이 둘이 분리되는 '脫주술화'(disenchantment)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번 사건이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대로, 종교적 주술에 의해 대통령이 포획된 사건이라면 우리정치는 '정치의 주술화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박대통령의 정치가 주술화에 의존한 것이라면 정치개혁이전에 종교개혁이 필요할 정도로, 이것은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조국의 근대화'에 반하는 역주행임에 틀림이 없다. 박정희는 조국의 근대화를 명분으로 마을 토착신을 모신 성황당을 부수고 미신타파와 계몽에 앞장섰다. 많은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조국 근대화의 이미지를 보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부친의 업적과는 정반대로 역주행했다. 즉 박대통령은 '정치의 주술화'에 빠져 전근대로 역진하여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시민이라고 하는 공화국 정신을 부정하고, 정교일체의 종교공동체와 주술적 신도정치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어쩌다가 사교(邪敎)에 홀린 '사제(司祭)형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이것은 우리 정치문화가 대체로 '보스-추종자의 계파정치'와 일종의 '열광하는 빠문화'로, 여기에는 신앙공동체의 교주와 신도가 공유하는 후원-추종관계(도제관계/사제관계)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사제형 정치인의 대표적 인물은 궁예이다. 궁예는 스스로 '미륵'이라 칭하며 일종의 '관심법'이라는 종교적 판단을 통해 정치를 했고, 자신의 반대자들을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자로 몰아 숙청했다. 궁예는 '정치적 공론장'을 신도들의 신앙공동체로 주술화시켰으며, 정통과 이단의 구분법을 통해 정치를 종교재판화하였다. 그렇다면 '신도'와 '시민'의 차이는 무얼까? 자율적인 비판 없이 추종만 하는, 배타성이 강하고 편향적인 사람이 전자라면 후자는 대화와 토론 및 논쟁을 통해 참여하고 견제하는 균형 있는 사람이다.

정치의 주술화는 박대통령만 빠진 것일까? 진영논리와 진영대립은 진보와 보수라는 명분으로 패거리를 만들고 싸우면서 선과 악의 이분법을 사용하고, 서로를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일종의 '정치의 주술화현상'이라는 점에서, 우리정치 모두가 정치의 주술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의 주술화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적절한 사회생활을 통해 상식을 배우고 타인의 고통과 처지를 알며 타인과 함께 대화와 소통하며 건전한 비판과 논쟁을 해 본 '시민적 정치인'이 정치적 공론장의 검증을 통해서 대통령으로 선출돼야 할 것이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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