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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로버섯은 죄가 없다

청와대가 오찬 자리에 송로버섯을 올린 것은 호사였다. 어쩌면 그것은 보기에 따라 지나친 호사였을지도 모른다. 송로버섯이 호사라면 샥스핀은 비윤리다. 지구상의 어떠한 이성적인 국가 정상도 공식 식탁에 샥스핀을 올리지는 않는다. 항상 말하지만 지금은 2016년이고, 식탁 위의 윤리는 매우 중요한 윤리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중국은 샥스핀을 열심히 먹지 않냐고? 바로 그게 문제다. 그게 상어를 멸종시키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식욕에 도취되어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시진핑 주석은 이미 샥스핀을 공식 연회에서 금지시켰다.

  • 김도훈
  • 입력 2016.08.17 06:41
  • 수정 2017.08.18 14:12
ⓒHerwig Prammer / Reuters

송로버섯 파스타를 먹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트러플(송로버섯) 오일을 뿌린 파스타다. 트러플 오일은 작년 런던에서 샀다. 캠던 마켓에는 트러플 오일만 파는 가게가 있다. 가까이 가면 트러플 오일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그 냄새를 한 번 맡으면 부산행 케이티엑스에 탑승한 좀비처럼 의식을 잃은 채 가게로 들어가 어느새 트러플 오일 여러 병을 구입한 채 걸어나오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그 정도로 송로버섯 냄새는 근사하다. 파스타에 마무리로 오일을 몇 방울만 떨어뜨려도 놀랄 정도로 호강하는 기분이 든다.

확실히 송로버섯은 호사스러운 음식이다. 캐비아, 푸아그라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힌다. 한국은 여전히 미식의 변방이니까 사람들이 송로버섯의 놀라운 향을 즐기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난주까지다. 송로버섯은 사람들이 그 향을 알기도 전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케이크' 비슷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와의 오찬에 송로버섯을 내놓았고, 사람들은 송로버섯의 가격을 검색했고, 미디어는 송로버섯을 사치의 상징으로 못박아 박제해버렸다. 슬픈 일이다.

청와대는 그저 식재료로 살짝 사용한 정도라고 뒤늦게 해명을 했다. 이건 납득이 가능한 해명이긴 하다. 송로버섯을 무슨 송이버섯처럼 쪄서 만든 요리는 당연히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송로버섯은 향이 압도적으로 강해서 송이버섯처럼 먹기는 조금 힘들다. 대신 파스타나 고기 요리 위에 얇게 슬라이스해서 살짝 올린다. 그러면 강렬한 향이 요리의 풍미를 더해준다. 그외에도 오찬에는 바닷가재, 캐비아 샐러드, 한우 갈비, 샥스핀 찜 등이 올라왔다고 전해졌다. 나에게 이 오찬 메뉴의 문제는 비싸기 때문이 아니다. '비싸고 귀한 재료라면 뭐든 일단 집어넣은 졸부의 메뉴'처럼 느껴진다는 게 문제다. 취향이 영 별로라는 소리다.

자, 그렇다면 가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자. 송로버섯은 물론 비싸다. 어떤 송로버섯은 1㎏에 1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이 해외토픽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다만 그건 예외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기사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마켓에서 500g에 150만원 정도에 냉동 포장한 송로버섯을 팔고 있다. 여전히 비싸다. 하지만 송이버섯도 좋은 것은 이에 필적할 정도로 비싸다. 문제는, 송이버섯은 익숙하고 송로버섯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물을 건너온 익숙하지 않은 것을 좀더 사치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있긴 하다. 한국 대기업 프랜차이즈 커피와 비슷한 가격의 스타벅스를 사치의 아이콘으로 못박는 경향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모두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송로버섯의 값어치에 집중하느라 정작 청와대 오찬에서 정말로 지적했어야 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나에게 청와대 메뉴의 진짜 문제는 샥스핀이다. 샥스핀은 상어 지느러미를 의미한다. 거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소비되는데, 대체로 탕이나 죽으로 만들어 먹는다. 가격도 비싸다. 1㎏당 100만원 정도다. 문제는 남획이다. 중국 어부들은 상어를 잡은 뒤 지느러미만 잘라내고 다시 바다에 버린다. 상어는 부레가 없다. 지느러미가 없으면 헤엄을 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버려진 상어는 결국 바다에서 죽는다.

많은 국가들은 샥스핀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2014년 미국 수산청은 샥스핀 재료로 인기가 높은 귀상어를 멸종위기 명단에 추가했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샥스핀 판매 자체가 불법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2013년 여름부터 샥스핀 운송을 전면 중단했다. 샥스핀은 지금 지구에서 가장 해악을 많이 끼치는, 그래서 가장 전면적으로 불법화되고 있는 음식이다.

청와대가 오찬 자리에 송로버섯을 올린 것은 호사였다. 어쩌면 그것은 보기에 따라 지나친 호사였을지도 모른다. 송로버섯이 호사라면 샥스핀은 비윤리다. 지구상의 어떠한 이성적인 국가 정상도 공식 식탁에 샥스핀을 올리지는 않는다. 항상 말하지만 지금은 2016년이고, 식탁 위의 윤리는 매우 중요한 윤리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중국은 샥스핀을 열심히 먹지 않냐고? 바로 그게 문제다. 그게 상어를 멸종시키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식욕에 도취되어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시진핑 주석은 이미 샥스핀을 공식 연회에서 금지시켰다. 그렇다. 샥스핀은 가장 많이 소비되는 국가의 지도자가 식탁에 더이상 올리지 않을 정도로 비윤리적인 음식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재벌과 정치인들이 값비싼 음식을 먹고 그들의 손자 손녀가 값비싼 옷을 입는 것을 그토록 열렬하게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비윤리적인 사업 행태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눈을 감는다. 경중이 잘못됐다. 호사의 문제는 호사의 문제다. 그것은 윤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염치의 문제에 가깝다. 염치가 없는 것이 곧 비도덕과 연결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종을 멸종으로 몰아가는 음식을 먹는 것, 한 국가의 지도자가 그런 음식을 공식 오찬에 내놓는 건 염치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다. 우리는 전자에 화를 내는 에너지를 아껴서 후자를 지적하는 데 더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럼에도 여전히 송로버섯에 더 화가 난다면, 그 화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싶다. 네이버 쇼핑에서 '트러플 오일'을 검색해보시라. 250㎖가 3만8천원 정도다. 이거 하나면 몇 달은 먹을 수 있다. 죽을 끓인 뒤 살짝 뿌려도 좋고, 파스타를 볶은 뒤 살짝 뿌려도 좋다. 병에 들어 있는 송로버섯 조림은 100g에 7만원 정도면 구입 가능하다. 이것도 얇게 슬라이스를 해서 요리 위에 살짝 뿌려 먹으면 좋다. 갓 지은 뜨거운 밥 위에 살짝 올리는 것도 권한다. 뜨거운 밥의 향과 송로버섯의 향이 섞이면서 침샘이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하고 식탁이 폼페이처럼 초토화될 것이다. 그러면서 식탁 앞에 앉은 상대에게 대통령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라. 그 순간 그는 당신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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