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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집단 강간 사건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용인한다는 걸 보여준다

ⓒSergio Moraes / Reuters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그리고 가장 묵인되는 인권 침해는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폭력이다." - U.N. 위민 총재 품질레 음람보-응쿠카

리우 데 자네이루 파벨라에서 16세 소녀가 30명이 넘는 남성들에게 강간당했다. 30명의 남성 중 단 한 명도 강간을 멈추고 왜 이러는지를 묻지 않았다. 소녀의 몸과 모든 인권은 완전히 침해 당했다. 뒤에서 남성들이 웃고 있는 가운데 버자이너에서 피가 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이 영상은 강간범 중 한 명의 트위터 피드에 올라가,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소녀는 의식이 없었다. 30명이 넘는 남성에게 강간당했다.

이 극악무도한 범죄는 소셜 미디어에서 농담 거리가 되었다. "그들이 그 여자애를 KO시켰어."라는 덧글도 달렸다. 소녀의 할머니는 CBN 라디오에 소녀가 파벨라에 가곤 했고, 며칠 동안 아무 소식도 없다가 돌아온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4년 전부터 마약을 사용했으며, 3살 난 아들이 있다는 것도 밝혔다.

곧 피해자의 사생활이 범죄의 핑계가 되었다. 이런 끔찍한 폭력 행위를 정상화하는 강간 문화가 지속된 것이다. 일부 사람들, 특히 남성들에게는 범죄를 잊고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더 쉽다. 보통 다음과 같은 잔인한 질문들이 이어진다.

"그녀가 자청한 거 아니야?"

"마약 사용자였다면서?"

"외출은 왜 했던 거야?"

"당해도 쌌던 거 아니야?"

눈에 띄게 충격을 받은 소녀는 병원에서 나오며 오 글로부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주위에는 남성 33명이 있었다."

그녀는 금요일에 남자친구 집에서 밤을 보내러 갔는데, 모든 일이 일어나고 난 뒤 일요일에야 깨어났다고 오 글로부에 말했다.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에게 체포된 강간범 Rai de Souza(22살)

그 무엇도 강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게다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관습은 슬프고 충격적이며 혐오스럽다. 힘과 굴복이 인간 관계를 주도하는 사회의 비교적 건강한 남성들이 저지르는 일이다. 이런 문화는 남성들이 이런 범죄를 저지른 다음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게 만든다.

강간은 남성이 여성에게 '누가 위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다. 강간은 섹스가 아니고, 감정의 교환이나 애정이 아니다. 강간은 타인에 대한 힘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행위다. 강간은 폭력, 통제, 침해, 고문, 무례, 잔인함, 잔혹 행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나는 범죄이다.

강간은 받아 들여질 뿐 아니라 교육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교육받는다.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살면서 언젠가는 공격 당할 것, 침해 당할 것이라고 상정된다(사실 모든 여성 중 거의 5명 중 1명은 살면서 한번은 성적 학대의 대상이 된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소년들에겐 '남근' 숭배와 벌린 다리, 자유롭게 덮치는 것이 최고로 여겨진다.

이렇게 불균형한 사이클 속에서 어린이들은 성인이 된다.

강간하는 남성들은 멀리 있지 않다. 여성이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믿는 남성들은 멀리 있지 않다. 브라질에서는 11분마다 한 명의 여성이 학대 당한다. 우리는 2009년까지는 강간은 명예에 대한 범죄로 여겨졌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2016년이 된 지금도 브라질에서 강간은 가장 적게 신고되고 가장 쉬쉬하는 범죄다.

브라질에서는 매년 5만 건 정도의 강간이 신고되는데, 실제 사건의 약 10%만 신고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대 당한 여성은 거의 언제나 보복의 두려움, 드러나는 수치, 자신에게 저질러진 폭력 때문에 비난 받는 것의 두려움 때문에 목소리를 죽인다.

침묵이 메아리친다.

우리는 여성들이 대상으로 취급된다고 반복하여 말한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자치권을 원한다는 것을 남성들이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거절할 권리, 신고할 권리, 사용한 다음 버리면 되는 대상이 되지 않기를 원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평화롭게 걷고, 존중 받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할 권리.

강한 것에서 물러서기란 쉽고 이기적이다. 우리는 강간범을 '정상적인 남성'으로 본다. 가끔은 정말로 그럴 때가 있다. 대다수는 우리 바로 옆에 있다. 남편, 남자 친구, 할아버지, 형제, 남편, 이웃, 삼촌이다. 사회는 범죄자를 정당화하고 핑계를 준다. 그리고 그만큼 피해자를 비난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이러한 권력의 악순환을 깨야 한다. 이것은 문화적 문제다. 뿌리깊고 압제적이다. 30명과 함께 타인의 몸을 공격하고, 그걸 공개하는 게 누구를, 무엇을 자유롭게 해주는 일인가? 지배, 타인에 대한 폭력, 인권을 침묵시키고 힘을 휘두르는 속에 로맨스는 어디 있는가? 거기서 어떤 긍정적이고 즐거운 것이 나올 수 있는가?

이 사건에 연대를 보여주고 다른 남성들에게 혐오감을 품는 남성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남성이 친구가 대상화하는 발언을 했을 때 동의한다거나, 자기 자신 속의 유독한 남성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 30명. 그들 중 누구도 왜 이러는지 묻지 않았다. 누구도 범죄 참여를 그만두지 않았다.

우리는 여성들이 얻어낸 인권을 예속시키고, 침해하고, 존중하지 않고, 부숴버리려 노력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내게 있어 그보다 더 명백한 것은 우리는 서로만을 믿을 수 있다는 느낌이다. 오직 다른 여성만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할 수 없다. 알레산드르 프로타[주: 배우이자 전직 모델 겸 유술 선수]를 초청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주지사들에게서 기대할 것은 더욱 없다. 그들은 인권과 인종 평등 및 여성부를 없애고 그 대신 '가족, 수정란부터의 생명을 지키는' 여성이 이끄는 '사무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여성들이 이미 얻은 권리를 빼앗는 PL/5096이 투표 및 승인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

U.N. 위민 품질레 음람보-응쿠카 총재의 말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용인되는 인권 침해다.

이런 사건은 우리 모두에 대한 사건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갈 길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를 일깨워 준다. 우리는 조용히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행동과 함께, 눈물 한 방울마다 새로이 태어날 것이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더 아름답다. 화났을 때 더 아름답다.

허핑턴포스트BR의 A violação de direitos 'mais tolerada no mundo' é o estupro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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