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강준만 칼럼] 싸가지 없는 진보 : 문 대통령도 야당 시절 우려했던 ‘싸가지 없는 진보’는 훨씬 더 악화되었다

혹 진보는 보수로부터 배울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가?

 

“21대 국회는 대결과 적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반드시 새로운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전 세계적인 위기와 격변 속에서 협치는 더욱 절실합니다.”

지난 7월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21대 국회 개원축하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왜 협치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인용한 게 아니다. 일단 말로나마 협치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게 중요하다. 흥미로운 건 협치라는 단어 자체가 문재인 정권의 열성 지지자들로부터는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겨레>의 한 기사에 달린 다음 댓글을 보자.

“야당과의 협치? 사기꾼과 협치하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4·3항쟁으로 3만명 이상이 죽었고, 광주 민주화운동 등 반성했는가? 이들은 사람 죽이는 것을 파리 죽이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들이다. 과거 행동에 대한 반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언론, 검찰, 대기업 등을 동원해 국민들을 속이고 이용해 자신들의 사익을 챙기고 있을 뿐이다.”

이 댓글엔 아무런 대표성도 없지만, 평소 댓글을 좀 들여다보는 분이라면 이런 논조의 댓글들이 매우 많다는 데에 흔쾌히 동의할 게다. 지난 1월 정세균 국무총리가 사회통합과 협치를 위해 ‘한국판 목요클럽’을 출범시켰을 때 문 정권 지지자들이 “지금이 한가하게 협치 놀음 할 때냐”며 비난을 퍼부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박근혜 탄핵 집회
박근혜 탄핵 집회 ⓒ뉴스1

이런 ‘협치 반대론’의 주요 논거는 역사적인 것이다. 야당은 몹쓸 짓을 많이 한 역대 독재정권들의 후예이니 아예 상종할 가치가 없다는 식이다. 이는 일부 강성 여당 의원들이 야당을 공격할 때에 쓰는 주요 메뉴이기도 하다. 심지어 온건한 이미지의 어느 의원마저 지난 9월 추미애 장관 아들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때 “과거 군을 사유화하고, 군에서 정치에 개입하고 그랬던 세력들이 민간인 사찰 공작하고 쿠데타도 일으켰다”며 “이제 그게 안 되니 그 세력이 국회에 와서 공작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권모술수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 정권이 협치를 거부하면서 야당의 분노를 극한에 이르게 하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여당이 야당을 완전히 무시하고 독주를 하면 할수록 야당이 내분을 겪으면서 합리적인 온건파가 설 자리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겨레>에 실린 ‘‘중도지향’ 한다며 태극기와 손잡나…우왕좌왕 국민의힘’(12월11일치 5면) 등과 같은 기사들은 그런 이치를 잘 시사해주고 있다.

문 정권이 의도적으로 그런 권모술수를 구사하는 건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결과적으로 야권에서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만든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여권에선 그걸 내심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공수처법 개정안을 힘으로 밀어붙인 것에 대해 “180석의 힘을 똑똑히 보여줬다”는 식으로 자화자찬 일색인 걸 보더라도 그렇다. 애초의 약속과 달리 ‘야당 거부권’을 없앤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문 대통령도 야당 시절 우려했던 ‘싸가지 없는 진보’가 훨씬 더 악화되었다.

 

박근혜 탄핵 집회
박근혜 탄핵 집회 ⓒ뉴스1
박근혜 탄핵 집회
박근혜 탄핵 집회 ⓒ뉴스1

인간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배은망덕하게 굴어도 되는 건가? 박근혜 탄핵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던지 잊었는가? 당시 60여명의 여당 의원들과 보수 언론의 협력 없이 그게 가능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일부 보수세력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사실상 문 정권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문 정권 사람들은 그건 까맣게 잊고 모든 게 다 자기들 잘나서 정권을 잡은 것처럼 ‘싸가지 없는 진보’의 길로만 나아가고 있다.

혹 진보는 보수로부터 배울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가? 배울 게 전혀 없는 사람들이 보수를 이끌게끔 하는 술수를 부리려는 게 아니라면, 그런 오만방자한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은 이 경우에도 들어맞는 진리다. 문 정권이 부동산 문제를 비롯해 민생 관련 정책들에서 실패했거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엔 무능한데다 ‘선의’만 앞세운 탓이 크다. 이게 바로 협치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무언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나의 잘못이라면, 앞서 인용한 문 대통령의 협치에 대한 꿈,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4년 전에 밝힌 다음과 같은 꿈의 실현을 열망하는 것임을 밝혀두고 싶다.

“독선과 아집 그리고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역사 발전의 장애물입니다. 우리 정치도 이제 적과 동지의 문화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 경쟁의 문화로 바꿔나갑시다.”

 
 

강준만 Ι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치 #박근혜 #강준만 #협치 #강준만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