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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이 과욕을 부렸다" 2차 가해로 두 번 우는 김용균의 유족과 동료들

방어권이라는 이름으로 고인을 욕되게 하고 있다.

발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관계자 결심공판이 열린 21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앞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와 김용균 동료였던 발전 하청노동자들이 김용균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발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관계자 결심공판이 열린 21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앞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와 김용균 동료였던 발전 하청노동자들이 김용균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

“우리 직원들이 과욕을 가지고 설비 점검에 임해서는 안 된다.”

지난 21일 발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이하 김용균)를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원청’ 한국서부발전 법인·임직원 9명과 ‘하청’ 한국발전기술 법인·임직원 6명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이근천 사고 당시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김용균 사망 사고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검사의 질문에 ‘위험한 설비’와 더불어 ‘직원의 과욕’을 꼽았다. 그가 속한 한국발전기술은 최후변론에서도 파워포인트(PPT) 자료에 ‘사고의 직접적 원인-재해자 과실’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지난 2018년 12월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 노동자 김용균은 점검구 안에 몸을 집어넣고 컨베이어를 점검하던 도중 빠르게 회전하는 컨베이어벨트와 아이들러(운반용 벨트 컨베이어를 받치고 있는 롤러) 사이에 협착돼 숨졌다.

 

재판 내내 이어진 ‘2차 가해’

이날 대전지법 서산지원 108호 법정에서 열린 결심공판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이어졌지만, 방청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고인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와 동료였던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피고인들의 2차 가해성 발언을 들으며 한숨을 쉬거나 탄식했다.

이날 피의자 신문을 받은 원·하청 관계자들은 ‘평소에 얼마나 안전을 강조했는지’ 주장하며 산재의 책임을 김용균에게 전가했으나, ‘구체적으로 안전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백남호 한국발전기술 당시 대표이사(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는 “(직원들에게) ‘부모가 낳아준 몸을 멀쩡하게 가져가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거니까 회사에 과히 충성하지 말라, 여러분 몸 상하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며 “사고 당시 제 상식으로는 저 안(점검구)에 (김용균이) 왜 들어갔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종합하면 김용균은 ‘불효자’가 된다. 그러나 정작 그는 ‘현장에서 안전지침이 잘 준수되는지 아느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관리자가 관련 기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앞서 ‘과욕’ 발언을 한 이근천 당시 태안사업소장도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무사히) 집에 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는데 받아들이는 입장(노동자)에서 어땠는지 모르겠다”며 노동자 안전을 챙긴 것처럼 말했으나 정작 노동자들이 점검구에 몸을 집어넣었던 사실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평소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작업하는지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였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김병숙 당시 대표이사(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 역시 “핵가족 시대에 인명의 소중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현장에 늘 강조했다”면서도 ‘현장의 위험 요인에 어떻게 대처했냐’는 검사의 질문엔 “현장 노동자들이 전문가라 특별히 (안전을) 보진 않았다”고 말했다.

故 김용균 씨의 영정사진. 2019.1.22
故 김용균 씨의 영정사진. 2019.1.22 ⓒ뉴스1

노동자가 안전을 우선시하고 싶어도 설비 자체가 위험하거나 생산 일정에 쫓기다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생긴다. 김용균도 낙탄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아이들러와 점검구 위치가 달랐고 내부 사진을 찍어오라는 지시까지 받자 점검구에 몸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은 안전보건공단 재해조사의견서와 민간위원들로 꾸려진 특별조사위원회 동료 면담 조사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용균의 동료는 “나도 몸이 점검구 안으로 들어가 조끼가 찢어진 적이 있다”며 “그때 사고를 당했으면 김용균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사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숙 대표는 피고인들의 이러한 진술을 지켜보기 힘든 듯 중간중간 고개를 숙였다. 그는 피해자를 대리해 진술할 때가 되자 여러 번 읽고 고친 듯 구겨진 종이를 한장한장 넘기며 읽어나갔다. “(사고 이후) 용균이 주검을 확인하고 울고 있는데 하청 이사 첫 마디가 ‘애가 일은 열심히 했는데 고집이 있어서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 사고가 났다’였습니다. (중략) 회사는 이후에도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사과하는 척 했지만 사고 직후부터 재판까지 일관되게 용균이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재판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를 두 번 죽이고 모욕하는 과정이 되고 있어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의 진술이 이어지는 동안 방청석 곳곳에선 눈물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애도는 없었다.

검찰 역시 피고인들의 반성 없는 태도를 문제 삼았다. 사건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한 김민수 검사는 “수사단계에서 일부 책임을 인정했던 피의자도 있었는데 법정에 이르러서는 부인하고 있다”며 “피고인들이 반성하거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런 부분을 감안해 상응하는 처벌을 내려달라”고 구형 의견을 밝혔다. 다만 구형은 한국서부발전 당시 대표이사 징역 2년, 한국발전기술 당시 대표이사 징역 1년6개월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법정 최고형인 7년형과 견줘 낮았다.

방어권을 이유로 산재 사고 사망자를 비난하는 피고인 태도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판례가 있다. 2019년 한국철도공사가 2명 배치했어야 할 열차감시원을 1명만 두었다가 선로 시설관리원이 열차에 치여 숨진 사건에서 지난 8월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맹준영 판사는 한국철도공사 법인에 법정 최고형인 벌금 1억원을 선고하며 이렇게 판시했다.

“피고인들 모두 법정에 이르러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관계와 사정을 내세워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대부분을 뒤집고 심지어 피해자들 측에 사고로 인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과연 진지하게 범행을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와 같은 피고인들의 법정태도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 죄책에 상응하는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재판이 마무리되기 직전 김용균과 함께 일했던 한국발전기술 동료는 피고인들을 향해 “자기들 죽는 소리만 하냐. 사람이 죽었는데 애도는 없이”라고 소리쳤다. 선고공판은 2월10일 열린다.

신다은 박태우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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