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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은 ‘나’를 미치게 했다 : 모성애 신화에 시달리던 이 여성의 고백은 또 다른 여성들의 증언을 불러내고 있다

“아기를 위해 존재하는, 하라는 대로 하는 포유동물처럼” 느껴졌다.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저자 캐서린 조.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저자 캐서린 조. ⓒ창비

 

백일을 앞둔 아기의 눈에서 악마를 보았다. 그날 응급실에 실려 갔다. 옷을 찢고 “지옥에 떨어졌다.” “악령이 오고 있다”고 소리 질렀다. 잠을 못 잔 그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깨어 있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캐서린 조의 병명은 ‘스트레스성 산후우울증’이었다.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은 30대 한국계 미국인 캐서린 조가 산후정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을 기록한 논픽션이다. 임신과 출산을 거쳐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겪은 정신질환에 관한 내밀한 고백서이자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는 ‘모성애 신화’에 갇힌 한 여성의 투병기이기도 하다. 책은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질병 ‘산후우울증’의 현실을 드러낸다. 산모 85%가 겪는 우울감이 산후우울증이다. 이 중 1000명에 1명 꼴로 환청·망상 등 정신 이상 증상이 발생하는 산후정신증에 빠진다. 주로 출산 이후 급격한 호르몬 변화와 피로, 양육부담 등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캐서린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자신의 지난날을 복기한다. 나는 누구인지, 왜 내가 정신병원에 왔는지, 언제부터 자신은 정신병에 걸린 것인지 자신에게 묻는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규율에 따라 숨죽여 지낸 어린 시절, 그를 가두고 때린 전 애인과 보낸 시간 등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폭력의 시간을 떠올린다. 캐서린은 폭력의 시간을 벗어나 2017년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와 결혼했다. 남편은 자신처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민 2세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그와 결혼 생활은 평범했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세계를 경험했다. 임신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변화는 컸다.

“임신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느끼지 못했다. 나라는 존재가 나뉘고 공유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몸은 내 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운반자였고 생명을 품은 자였다.”

 

출산의 순간은 경이로운 생명의 만남이 아니었다. 피부가 붉고 우렁차게 울어대던 아들 케이토를 처음 봤을 때 “애정이 샘솟는다거나 막중한 책임감이 들지”는 않았다. 대신 “낯선 사람을 소개받았을 때처럼 호기심이 들었”을 뿐이었다. 앞으로 알아가야 하는 낯선 생명이었다.

출산 뒤 본격적으로 모성의 세계를 경험했다. 일상은 수유 시간에 맞춰졌다. 쉽지 않았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데에만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수술부위는 화끈거렸으며, 가슴은 퉁퉁 부었고 쓰라렸다. “아기를 위해 존재하는, 하라는 대로 하는 포유동물처럼” 느껴졌다. 출산 병동의 다른 여성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저는 동물이 아니에요”라고 외치고 “왜 제 말을 안 듣는 거죠?”라며 안타까워했다. 이곳에서 그들은 모두 오직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뭉뚱그려졌다.

자료 사진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출산 병동에서 퇴원한 첫날부터 그는 케이토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양육자의 의무감은 무거웠다. 케이토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또 먹이는 것을 반복했다. 그가 케이토와 떨어져 있는 순간은 저녁에 모유 수유를 마친 뒤 1시간뿐이었다. 그때야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생각하며 기억하는, 나라는 존재가 엄마가 전부가 아님을 상기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친정과 시댁 식구들은 갑자기 한국 전통문화를 강조했다. ‘삼칠일’ 동안 외출하면 안 되고,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고. 시어머니는 ‘엄마의 자세’를 말했다. “그냥 항복해야 해! 엄마로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란다!” 항복이라는 단어에는 희생, 순종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친정어머니도 희생에 바탕한 ‘내리사랑’을 강조했다. “네가 아기였을 때, 어린아이였을 때, 네게 필요한 것은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뿐이었어.” 그런 말들 속에서 그는 심청전, 견우와 직녀 이야기 등 전래동화에 담긴 희생을 떠올렸다.

하지만 생후 두 달 된 아기와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주변 사람들의 의심과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케이토가 왜 이렇게 뚱뚱한 거니? 여행만 하느라 운동을 충분히 시키지 않았구나.” “아기가 왜 이렇게 자주 우니? 여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의 밤, “시부모님이 질책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케이토에게 젖을 물리고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손바닥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분했지만, 혼란스럽고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형편없는 엄마인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케이토를 데리고 여행하는 것이 무책임한 행동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욕망을 따른 행동을 되짚어보고 자신을 ‘나쁜 엄마’라 여기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기 검열과 혐오가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2주간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잃어버린 ‘나’를 찾으며 서서히 회복된다. 산후우울증을 겪었던 여성들의 토론회에 참석해 다른 이들이 엄마가 되면서 겪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아이가 악령이라고 믿거나 아기의 몸이 불에 탈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몸에 난 제왕절개 수술 자국을 발견할 때마다 울었다”는 여성들. “아기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믿었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아기를 통해 느낀 불안과 공포에 관한 이야기 꺼내기를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을 힘들거나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학습된 금기이자 숨겨야 하는 열등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엄마가 되고 겪은 광기의 시간을 이야기한 캐서린은 또 다른 여성들의 증언을 담아낸다. 그와 그들의 목소리는 ‘광기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또 다른 1인칭들의 목소리를 불러내는 것이다.

한겨레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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