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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눈으로만 남다른 세계를 포착하는 사진작가, 알버트 왓슨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사진전에 다녀왔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WATSON, THE MAESTRO-알버트 왓슨 사진전'

"스무 명의 임원과 아침 회의 중이라고 생각해 봐요. 내 의견을 반대하는 그들 사이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확신에 차서 말하고 있는 본인을 상상해서 포즈를 취해보면 어떨까요?"

 

사진작가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한 시간. 그러나 사진작가는 20분 만에 스티브 잡스와의 촬영을 끝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찍는 잡지 촬영을 위해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 사진작가는 여권 사진처럼 스티브 잡스를 찍는 콘셉트로 단순하게 피사체에 접근했다.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아! 이 사진!"

그가 누군지는 모르는 사람도, 그가 찍은 사진은 익숙하다. '스티브 잡스'하면 떠오르는 자서전의 표지 사진은 81세인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 알버트 왓슨의 작품이다.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거장으로 불리는 알버트 왓슨은 스티브 잡스, 앨프리드 히치콕, 앤디 워홀 등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아이코닉'하게 찍은 사진들로 널리 알려졌다. 또 그는 1977년부터 보그 표지를 100차례 이상 찍었으며, 샤넬, 프라다 등의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며 패션 사진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상업적인 작품만을 찍지 않았다. 현재도 그는 자연과 인물, 정물 등 특정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진정한 사진 예술을 추구해오고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가 사진 한 장에 담는 세계는 남다르다. 같은 피사체라도, 왓슨 본인의 관점을 투영해 특별한 사진으로 완성시킨다.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알버트 왓슨의 작품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사진전에 다녀왔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WATSON, THE MAESTRO-알버트 왓슨 사진전>에서는 알버트 왓슨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사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왓슨이 작업한 테스트샷과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만날 수 있었다.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이 사진전이 독특한 이유는 상업 사진과 개인 사진을 구분해서 전시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상업 작품이건, 개인 작품이건 경계 없이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추구하는 알버트 왓슨의 철학과 일치한다.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전시 섹션은 패션, 인물 등 사진의 주제에 따라 구분되지 않고 시간 순으로 나뉘었다. 사진전에서는 그의 초창기 작업부터 2020년대의 디지털 사진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으로 변화하는 알버트 왓슨의 사진 세계를 따라가 볼 수 있다.

복도 끝, 알프레드 히치콕을 담은 사진이 배치되어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복도 끝, 알프레드 히치콕을 담은 사진이 배치되어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그가 거장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된 사진, 알프레드 히치콕이 거위를 들고 있는 작품은 특별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명암을 잘 활용해 피사체에 집중하게 하는 그의 사진처럼, 조명과 어둠을 활용해 복도 끝의 사진 작품에 시선이 머물게 하는 전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왓슨 역시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 만큼, 관람객들로 하여금 작품의 울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히치콕을 찍은 사진을 시작으로, 왓슨만의 고유한 포트레이트 사진 스타일은 그의 시그니처가 됐다. 그의 인물 사진은 단순해서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정적이지만,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 모두 치밀한 사전조사의 결과다. 알버트 왓슨은 인물 사진 촬영 전, 인물에 대해 연구한다고 밝혔다. 스티브 잡스를 찍은 사진 역시, 사전에 인물에 대한 그만의 관점을 확립한 후에 탄생한 작품이었다.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알버트 왓슨 사진전. ⓒ허프포스트코리아

사진작가는 사진 한 장에 자신이 해석한 피사체의 본질을 담는 직업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도구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관점으로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은 달라진다. 알버트 왓슨은 그래서 대가라고 불린다. 그에게는 자신이 파악한 피사체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행위가 곧 사진을 찍는 행위다.

<WATSON, THE MAESTRO-알버트 왓슨 사진전>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2023년 3월 30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김지연 에디터: jiyeon.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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