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지속 강조해 온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노동시간·임금체계 개편 등이 포함된 ‘노동시장 개혁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노동부는 시대흐름에 맞게 고용노동시스템을 ‘현대화’한다는 입장이지만, 연장근로시간 정산단위 확대 등 기업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이어서 향후 추진과정에서 큰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노동부 발표자료를 보면, 노동부는 현재 주 12시간으로 규정된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월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주 12시간까지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환산하면 약 52시간(12시간×4.345주)으로, 월에 배정된 연장근로시간을 한 주에 몰아서 할 경우 1주 최대 노동시간이 92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52시간)까지 가능해진다. 윤 대통령이 후보시절 “주 120시간 바짝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 현실화될 수 있는 셈이다. 이밖에도 연장근로시간을 휴가로 보상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스타트업·전문직 근로시간 규제완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권 시기 적극적으로 추진하다 노사·노정관계 악화를 불러왔던 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 개편도 주요 추진과제에 포함됐다. 호봉제를 직무급·성과급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그동안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지지 못했던 이유를 ‘노사합의의 어려움’으로 지목하면서 “현장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 해결과제는 없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브리핑에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미 공약·국정과제 등에서 임금체계 개편의 동의 주체를 전체 사업장의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대표가 아니라, ‘부문별 근로자대표’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 역시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노동부는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재차 언급하면서도,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 논의를 거쳐 입법·정책과제를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이 연구회는 내달부터 10월까지 4개월동안 운영될 예정이지만, 논의의 결론은 사실상 윤 대통령의 공약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등에 이미 수록돼있어 노동계에선 “연구회 운영은 명분쌓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주52시간제를 무력화하고 노동시간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도록 노동시간 유연화 확대, 사용자의 성과평가권한과 임금저하를 위한 직무성과급제의 확대, 이를 위한 노동자간의 갈등을 조장하겠다”는 것이라며 “노동담당 부처 장관으로서 소신과 전문성은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