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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의 변화, 박근혜 약발은 왜 먹히지 않는가?

대구 사람들도 자식들 눈치는 본다. 세상 돌아가는 정보는 어느 정도 안다. 좀 불편하지만 새누리당만 찍은 이유는 그래도 '실속'을 챙겨야 한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충족될 때다. 내가 알아서 새누리당을 찍는 것과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할테니 너희는 충실하게 따라와 라고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진박 논란을 펼친 사람들은 이 부분을 놓쳤다. 대구 사람의 자존감은 유명하다. 대구는 굳이 지하철이 필요가 없지만 '밍구스럽지 않기 위해'(즉 창피하지 않기 위해) 또는 '모양이 안 나기 때문에' 지하철을 3호선까지 만든 도시다. 나름 딸깍발이 정신 또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와 같은 정서가 강하다. 진박 논란은 이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 김성해
  • 입력 2016.04.08 08:19
  • 수정 2017.04.09 14:12

이형기의 <낙화>란 시가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란 멋진 내용이 있다. TK의 절대군주로 군림해 왔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은 내용이다. 지금이라도 떠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결말이 아름다울 것 같지는 않다.

화랑공원. 대구 수성구에 있는 꽤나 유명한 곳이다. 꽃비가 내리는 아침 6시에도 어김없이 많은 분들이 찾는다. 우산을 받쳐 들고 걷고 있어도 도란도란 얘기는 끝없이 들려온다. 오늘의 주인공은 60대 중반의 할머니 두 분이다. 대화 주제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번 총선'이다. 행여 이 분들이 무슨 대단한 정치의식을 가졌거나 또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고 착각은 하지 않았으면 싶다. 앞으로 뒤로 봐도 그냥 평범한 이웃 어른이다.

"옛날에는 새누리당 욕하면 그냥 화가 났는데 이번 선거는 전혀 안 그렇다." 첫 말씀은 이렇게 시작했다. "대통령도 그러면 안 된다. 여염집 아낙네도 아니고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 그렇게 생속이면 어떻게 하자는가 싶다. 언제는 좋아서 난리를 치다가 이제는 밉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유승민이 이뻐서가 아니라 그 양반 하는 게 도를 넘어섰다" 대강 앞부분을 옮기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여자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그래서 여자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가 싶다. 애도 낳아보고 세상 어려움을 좀 겪어봐야 하는데, 감이 아닌 것 같다" 듣기에 따라서는 불편할 수 있지만 거침이 없다. 박대통령의 후광효과가 작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리더십에 대한 실망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일반 국민들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받는 황제는 끝이 좋지 않았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한구도 찍어 줬는데 그러면 안 된다. 지금은 뭐가 무서워서 일본으로 도망을 갔노"라고 말씀 하시는 이분은 분명 박 대통령에 대한 '경멸'감을 갖고 계신 것 같다. 같은 여자면서 여자 대통령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쉬웠을 것 같지는 않다. 대구 민심의 또 다른 지점은 "지겹다"로 정리된다.

지겹다. 식사 자리에서 아내에게 물어봤다. 어떨 때 지겹다는 말을 하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래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될 때" 라고 말한다. 대구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려 20년 가까이 반복되는 정치쇼의 실체를 어느 정도는 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용서를 구하면 못이기는 척 하고 찍어준다. 설마 하다가 벌써 20년이다. 지역경제는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 대학 졸업을 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못 찾는 자식들 볼 낯도 없다. 같이 사는 장모도 그런 비슷한 얘기를 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당신들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단다. "젊은 애들한테 기회를 한번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표현하는 분들이 많다. 지겹다는 정서는 자연스럽게 '대안' 모색으로 이어진다. 최소한 투표를 하지 않거나,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60대 언저리에 계신 분들 중 투표를 안 하겠다고 하는 비중이 꽤나 된다는 것은 이런 '지겨움'이라는 정서가 반영된 것 같다. 마지막 화두는 "자존심이 짓밟혔다"는 점이다.

대구 사람들도 자식들 눈치는 본다. 세상 돌아가는 정보는 어느 정도 안다. 좀 불편하지만 새누리당만 찍은 이유는 그래도 '실속'을 챙겨야 한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충족될 때다. 내가 알아서 새누리당을 찍는 것과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할테니 너희는 충실하게 따라와 라고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진박 논란을 펼친 사람들은 이 부분을 놓쳤다. 대구 사람의 자존감은 유명하다. 대구는 굳이 지하철이 필요가 없지만 '밍구스럽지 않기 위해'(즉 창피하지 않기 위해) 또는 '모양이 안 나기 때문에' 지하철을 3호선까지 만든 도시다. 나름 딸깍발이 정신 또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와 같은 정서가 강하다. 진박 논란은 이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직접선거가 있다는 점은 다르지만 2000년 전의 로마와 지금은 비슷한 게 많다. 존경받지 못하는, 체통을 잃어버린, 모방하고 싶지 않은 황제는 항상 짧은 임기에 만족해야 했다. 자신은 물론 가족 전체가 비극을 겪는 것도 일상사였다. 대구와 경북이라는 가장 든든한 정치자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양날의 칼이다. 자신에게 부담이 된다고 생각할 때 또는 모멸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황제의 목에 칼을 겨누는 사람은 항상 최측근이었다. 만약,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진행된다면, 그 진원지는 서울도 광주도 아닌 대구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대구가 그 촉발지가 될 경우 어쩌면 가장 잔인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벚꽃이 비에 흩날린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참 무섭다. 박 대통령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새누리당 서청원 공동선대위원장(왼쪽 네번째)과 대구지역 총선 후보들이 8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민께 사과하고 있다. 왼쪽부터 곽대훈, 김상훈, 윤재옥, 서청원, 조원진, 곽상도, 정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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