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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7일 12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17일 14시 12분 KST

왜 서구의 젊은 유권자들은 낡은 정치를 버리고 있나

gettyimage/이매진스

미국과 유럽의 투표 패턴에 흥미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연장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투표하는 것이다. 소득, 교육, 젠더보다는 유권자의 세대에 기반한 큰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고령자와 젊은이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의 과거가 다르고, 앞으로의 전망도 다르다.

예를 들어 냉전은 현재 젊은이들 일부가 태어나기도 전에, 혹은 어린이였을 때 끝났다. '사회주의'와 같은 단어는 과거와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만약 사회주의가 사람들이 공유하는 우려가 관심을 받는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라면, 사람들이 타인들과 환경을 아끼는 사회를 만드는 거라면 사회주의도 나쁠 것이 없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사반세기, 반세기쯤 전에 했던 실험들이 실패했을지 몰라도, 오늘날의 실험은 과거의 실험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니 과거 실험의 실패는 새로운 실험과는 무관하다.

미국과 유럽의 고령의 상위 중산층들은 좋은 삶을 살았다. 그들이 노동 시장에 들어갔을 때는 보수가 좋은 직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했던 질문은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였지, 독립할 수 있게 해줄 직업을 얻을 때까지 얼마나 오래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었다.

그 세대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일찍 결혼하고, 집을 - 어쩌면 별장도 - 사고, 상당히 안정적인 상태로 은퇴할 것으로 기대했다. 전반적으로 그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살게 되리라 기대했다.

오늘날의 나이 든 세대는 중간중간 장애물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기대는 이루어졌다. 그들은 노동에 의한 수입보다 자산에 의한 수입이 더 컸을 수도 있다. 분명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들은 투기시황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적당한 때에 적당한 것을 산 자기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기대는 현재 소득이 얼마이든 전 세대와는 정반대다. 그들은 평생 직업 불안정에 시달린다. 평균적으로 대학 졸업생들은 몇 달 동안 직업을 찾은 다음에야 취직한다. 무급 인턴을 한두 번 거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더 나쁜 경우들을 알기 때문이다. 학교 성적은 자기보다 좋았는데도 수입 없이 한두 해를 버틸 수가 없다거나 인턴으로 취직할 연줄이 없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젊은 대학 졸업자들은 빚을 떠안고 있다. 더 가난할수록 빚을 더 많이 진다. 그래서 그들은 무슨 직업을 갖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20년 이상 부담이 되곤 하는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물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집을 사는 것은 머나먼 꿈이다.

이러한 고난으로 인해 젊은이들은 은퇴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 봤자, 낮디 낮은 금리를 고려했을 때, 괜찮은 삶을 살려면 (가장 기본적인 사회 보장 연금 외에) 돈을 얼마나 많이 모아야 하는지 깨닫고 겁먹을 뿐일 것이다.

즉,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세대간 공정함의 렌즈로 세상을 본다. 상위 중산층의 자녀들은 결국 잘 살지도 모른다. 부모들의 부를 상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의존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대안, 즉 한때 기본적인 중산층 라이프스타일로 여겨졌던 그 어떤 것도 성취할 가능성이 낮은 '새로운 출발'은 더욱 싫어할 것이다.

이러한 불공평을 잘 해명하기란 쉽지 않다. 이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모든 것을 다 '잘 해낸'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현재 계속되고 있는 경제 불안의 원인인 금융 위기를 불러온 은행가들이 엄청난 보너스를 받고, 잘못된 행위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면 경제의 게임이 조작되었다는 사회적 불평등의 느낌은 더욱 커진다. 엄청난 사기가 벌어졌는데 실제로 사기를 저지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치 엘리트들은 '개혁'이 유례없는 번영을 가져올 거라 약속했다. 그 약속은 이루어졌지만, 그 번영은 상위 1% 만의 번영이었다. 젊은이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얻은 것은 유례없는 불안정이었다.

이러한 세 가지 현실 - 유례없는 사회적 불평등, 엄청난 불공평함, 엘리트에 대한 신뢰 상실 - 이 우리의 정치적 순간을 규정한다.

이제까지와 똑같은 것은 해답이 아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 당들이 패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상한 위치에 처해 있다.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들은 사태를 악화시킬 잘못 고안된 제안으로 민중 선동 경쟁을 하는 반면, 민주당 후보들은 두 명 모두 - 국회를 통과시킬 수만 있다면 -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가 주장하는 개혁이 도입된다면, 이미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먹이로 삼을 수 있는 금융제도의 능력이 제한된다. 두 후보 모두 고등 교육 비용을 대는 방식을 바꿀 심도 있는 개혁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한 주식 시장과 제로에 가까운 금리를 생각하면 할부금을 내줄 수 있는 부모를 둔 사람이 아니라도 집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안정적인 은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가 훨씬 나아지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노동 시장에 쉽게 들어가지 못할 거라는 점이다.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4.9%지만, 훨씬 높은 보이지 않는 실제 실업률은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면 해결할 수도 없다. 젊은이들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세대간 공정성이 없음을 인지하고 있고, 그들의 분노는 옳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Young Voters in the U.S. and Europe Are Forsaking Old Politic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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