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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보다 돈벌이 혈안 '탐욕의 상아탑'

내가 가르치는 재정학에 '조세부담의 전가'(shiftiing)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A에게 부과된 세금의 부담을 A 혼자 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부 혹은 전부가) 떠넘겨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학이 업자에게 지운 부담은 결국 교수, 교직원, 학생에게 떠넘겨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대학 당국은 그렇게 해서 발전기금 많이 거뒀다고 혹은 대학 운영자금 많이 확보했다고 자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업자들이 자선사업가가 아닌 이상 그렇게 대학에 낸 돈의 부담을 스스로 질 리가 없습니다. 이윤 추구가 유일한 목적인 그들은 바로 대학 구성원에게 그 부담을 떠넘겨 버릴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대학이 거둬들인 돈은 결국 교수, 교직원, 학생의 주머니를 털어 얻은 돈에 불과한 것입니다.

  • 이준구
  • 입력 2015.07.13 13:12
  • 수정 2016.07.13 14:12
ⓒgettyimagesbank

학문보다 돈벌이 혈안..... 탐욕의 상아탑

이것은 한국일보에 난 기사의 제목입니다.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기업논리를 학내에 도입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을 꼬집은 기사입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서울대학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느낀 바 있어 이 기사가 더욱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기사는 한 대학의 학생복지관에서 김밥집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가 10년 만에 가게를 접어야 할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공개입찰을 통해 새로 선정된 복지관 관리업체가 14개 점포 운영권을 넘겨 받으면서 임대료를 2배나 높여 지불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7억원 가량의 상가 리모델링 비용이 든다는 이유에서라지만, 현재 내는 임대료조차 버거운 자영업자가 그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김밥집이 있던 자리에 새 주인이 들어와 똑같이 김밥을 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만약 기존의 감밥집 주인이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면 새 주인은 높은 임대료 지불하고도 어느 정도의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 기존의 깁밥집 주인이 폭리를 취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대학에서 김밥집 운영한다면 입에 간신히 풀칠할 정도일 것이 분명하니까요.

새로 들어선 김밥집 주인이 자선사업가가 아니라면 당연히 이윤을 내야 할 것인데, 이 상황에서 이윤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즉 더 싼 재료를 써서 더 비싼 가격에 파는 것 이외에는 두 배로 높아진 임대료 내면서 이윤을 낼 다른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내가 모르는 다른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신다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애당초 대학 당국은 공개입찰을 통해 관리업체에게 상당한 금액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관리업체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한 것은 리모델링 비용도 있지만 실상은 대학에 낸 거액의 돈을 회수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거금을 낸 관리업체는 임대업체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고, 임대업체는 다시 학생이나 교직원, 교수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얼마 전 새로 주인이 바뀐 우리 대학의 한 식당에 실망해 다시는 그곳을 가지 않겠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음식점이 나를 실망시킨 이유도 정확이 이것과 똑같습니다.

대학의 요구를 따르느라 든 돈을 회수하기 위해 더 싼 재로를 써서 더 비싼 가격에 팔았고, 그것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1만 8천원의 가격이 붙어 있는 해물탕에 달랑 하나 들어 있는 전복이 돌덩이처럼 단단하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재정학에 '조세부담의 전가'(shiftiing)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A에게 부과된 세금의 부담을 A 혼자 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부 혹은 전부가) 떠넘겨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학이 업자에게 지운 부담은 결국 교수, 교직원, 학생에게 떠넘겨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대학 당국은 그렇게 해서 발전기금 많이 거뒀다고 혹은 대학 운영자금 많이 확보했다고 자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업자들이 자선사업가가 아닌 이상 그렇게 대학에 낸 돈의 부담을 스스로 질 리가 없습니다.

이윤 추구가 유일한 목적인 그들은 바로 대학 구성원에게 그 부담을 떠넘겨 버릴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대학이 거둬들인 돈은 결국 교수, 교직원, 학생의 주머니를 털어 얻은 돈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제 닭 잡아먹기"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대학 당국이 한 일이 바로 이와 같은 바보짓인 셈인 거지요.

부담의 전가라는 개념을 알 리 없는 보직교수나 행정직원이 그런 일 해놓고 으스대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명한 대학 당국이라면 이와 같은 부담의 전가가 일어날 것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를 해둬야 합니다.

공개입찰 끝나 돈을 챙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취할 것이 아니라, 업자들이 어떤 질의 상품을 어떤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지를 감시해야 합니다.

업자들과 계약할 때 그와 같은 감시를 한다는 조건을 내걸어야 하겠지요.

대학 당국은 발전기금이나 임대료 수입의 숫자놀음에서 벗아나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지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수, 교직원, 학생들 주머니 털어 발전기금과 임대료 더 거둬들였다고 해서 자랑스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각 대학에서는 눈이 돌아갈 정도의 빠른 속도로 상업화(commercialization)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 어딜 가봐도 이런 정도로 시장 바닥이 된 곳은 찾아 보기 힘듭니다.

이 상업화 현상은 교수, 교직원, 학생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대학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외부 업체를 상대로) 돈벌이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대학 구성원의 주머니를 터는 제닭 잡아먹기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그 상업화 현상의 배경에는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은 대학 당국의 천박한 셈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성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이 천박한 숫자놀음의 포로가 되어 있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스럽습니다.

나는 이것이 대학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에 관한 철학의 부재가 빚은 비극이라고 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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