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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노무현이 그리운 이유

노무현과 참여정부가 대한민국이 나아지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와 판단이 분분할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이 사익보다는 공익을, 사리보다는 대의를 추구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균형감각을 현저히 잃은 태도일 것이다. 노무현이 자진하기 얼마 전 봉하사저를 찾은 인사에게 했다는 "절대 정치하지 마라"는 말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한 실존적 인간의 낙담과 허무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비감하기 이를 데 없는 언사다.

  • 이태경
  • 입력 2015.05.25 07:04
  • 수정 2016.05.25 14:12
ⓒ한겨레

노무현이 우리 곁을 떠난지 벌써 6년이다. 시간이 정말 속절 없이 흘러갔다. 노무현의 자결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한없이 스산해진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명박, 검찰, 조중동 등의 비대신문들에 대한 분노와 적의 보다 스산함과 허망함이 앞선다. 노무현과 참여정부가 대한민국이 나아지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와 판단이 분분할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이 사익보다는 공익을, 사리보다는 대의를 추구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균형감각을 현저히 잃은 태도일 것이다.

노무현은 한 마리의 분망한 숫말처럼 이상을 쫓았고, 그 이상을 이룰 수 없음에 절망했고, 비극적 최후로 생을 마감했다. 노무현이 자진하기 얼마 전 봉하사저를 찾은 인사에게 했다는 "절대 정치하지 마라"는 말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한 실존적 인간의 낙담과 허무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비감하기 이를 데 없는 언사다. 정의가 구현되고 확장되는 세상, 인간적 존엄이 철저히 옹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도 세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자신의 실존적 삶은 한없이 불우해질 때 마음이 얼마나 무참하고 참혹할 것인가? 그런 마당에 드러난 윤리적 흠결과 인격살해에 이른 검찰과 언론의 공격은 그의 자아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철학과 가치, 정책을 둘러싸고 벌이는 싸움을 그는 즐겼고 그런 싸움에서 패배한 적이 별로 없을 만큼 그는 강했지만, 그가 지닌 윤리적 염결성은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것이어서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광주가 피의 늪에 빠진 1980년, 눈 밝은 시인은 「그날」이라는 시에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갈파했다. 시인의 이 말을 정의가 불의에 패배하는 현실, 의인이 핍박당하고 악인이 흥왕하는 현실에 대한 정치적 알레고리로 읽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시인이 「그날」을 쓴 건 30년 훨씬 전의 일이다. 그토록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병든 모두가 아프지 않은 현실'은 그닥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는 한국사회가 이처럼 병리적일 수 없다. 의인들은 낙엽처럼 지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 시비(是非)에 대한 분별이 흐리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세상.

공적인 분주함으로 충만했으나 사적으로는 고단한 삶을 살았던 노무현의 죽음은 좋은 세상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지만, 어떤 죽음은 삶보다 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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