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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 인터뷰] 이연복 쉐프 '작은 가게 열고 아기자기하게 살고 싶어요'

  • 박세회
  • 입력 2015.05.14 11:18
  • 수정 2015.05.27 07:30

이연복 쉐프의 목란이 연희동에 개업할 때 어쩌다 보니 초대받아, 그의 동파육을 먹어보고 반했다. 그 뒤로 갈 때마다 수줍게 인사를 했는데 아무래도 그는 기억을 못 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얼마전 TV에서 그를 봤다. '냉장고를 부탁해'였다. 아차 싶었다. 이제 목란 동파육 먹긴 글렀구나. 아닌 게 아니라 예약하려고 전화를 해보니 6월 중순이 넘어야 자리가 난다고 한다. 에라, 이렇게 된 바에야 인터뷰를 잡고 얘기라도 듣자 싶어 만나기로 했다. 그는 그날도 tvN의 인터뷰 프로그램 <택시>를 촬영하고 왔다고 했다. 아이고. 준비해간 질문지를 접어 버렸다.

<택시> 촬영을 하고 왔다고 들었어요.

인터뷰 한참 하고 왔는데 또 인터뷰를 해야 하네요. 저 원래 이런 일 없으면 일평생 가게 지키는 사람인데 요새 촬영이 너무 많아요.

안 그래도 오기 직전에 저희 팀에서 셰프님 기사를 하나 올렸거든요. 조회 수가 엄청나더군요.

어휴, 그래요? 근데 걱정이 있어요. 맨날 같은 얘기 하면 식상하지 않을까 싶어요. 중식 요리 인생에 대한 걸 계속 물어보는데 독자들이 질리지 않을까요?

그래서 좀 다른 걸 물어보려고요(라고 말하며, 준비한 질문지를 접어버렸다). 마침 가게 입구에서 전설적인 사진을 발견했어요. 이 사진에서 강레오, 레이먼 킴은 완전 아기네요.

이게 예전에 한겨레 기사에 쓰인 사진인데, 여기 왼쪽은 왕육성이라고 지금 진진 쉐프시고, 이분은 여경래라고 엠버서더 호텔 '홍보각'셰프시고, 이분은 상해루라고 예전에 굉장히 유명했던 중식 집 쉐프신데 나중에는 만다린이라는 체인점 13개를 운영하던 큰 손이죠. 제일 오른쪽 이분은 장입화 선생님. 그랜드 힐튼에 계시는 현역 최고참 중식 쉐프시죠. 예전에 대통령의 중식 주방장으로 유명하신 분이에요. 나머지는 박찬일, 레이먼, 강레오 뭐 양식하는 친구들이죠. 다 친해요.

왕육성, 여경래, 장입화 등 한국 중식 최고수들이 함께 찍은 사진. 이 사진은 목란의 입구에 조그맣게 걸려있다.

사진 속에 '생활의 달인'에 4대 문파라며 출연하신 분도 있네요.

여기 여경래가 그 프로그램에 나왔었죠. 근데 중식에 뭐 4대 문파라고 꽉 짜인 틀이 있는 게 아니고 예전에 유명했던 중국집 중에서 그래도 아직 명맥을 잇고 있는 걸 따져봤더니 그 4개가 그나마 유지가 되고 있더라. 뭐 그런 거에요.

일식 업계처럼 족보가 있군요. 조선호텔 스시 조랑 신라호텔 아리아케 출신들이 지금 압구정이나 청담동 고급 스시집을 꽉 잡고 있다고 하더군요.

예전에는 중식은 더 했어요. 지금은 그래도 좀 서서히 흐트러진 거죠. 역사가 길잖아요. 저는 지금도 예전 호화대반점 출신들이랑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요.

요새는 쉐프들의 세계가 살짝 변한 것 같아요. 얼마전만 해도 인터뷰 하면 서로 다른 가게 험담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서로 칭찬해주는 분위기가 생겼어요.

예전에는 욕도 하고 그랬죠. 이제는 사람들도 좀 배웠으니까, 그게 무례하다는 걸 아니까 안 그러나 봐요(웃음) 서로 칭찬하는 게 좋은 거죠.

그렇죠. 모든 분야에 고루 지식을 쌓은 음식 평론가가 많지 않으니까 쉐프들끼리 서로 평가하는 게 오히려 더 믿음이 가요.

(평론가들이) 자기가 아는 분야에서만 얘기하면 참 좋은데, 모르는 걸 막말하니까. 예전에는 왜 블로거 파워가 어마어마했잖아요. 파워 블로거 한 명이 가게 하나 죽이고 살리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중식에 대해 잘못된 상식 바로잡기 1 - 불맛

블로그가 우리 음식문화에 참 많은 영향을 끼쳤죠.

맛을 몰고 다녔어요. 파워 블로거가 어떤 집 음식이 짜서 맛없다 그러면 다들 좀 안 짜게 하고, 싱겁다 그러면 다들 좀 짜게 하고 그랬어요. 잘 알면 좋은데 어설프게 아는 걸 가지고 단정적으로 써 놓으니까 정말 위험했죠.

블로그에서 자주 떠도는 그런 얘기 중에 이건 아니다 싶은 게 있나요? 예를 들면 '불맛'이라든지 말이죠.

딱 그런 거 말이에요. 어떤 블로그 하나에서 시작된 것 같은데 손님들이 와서 뭐만 하면 불맛 나게 해달라고 하니까. 속으로는 '그거 사실 탄 건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손님이 원하니, 팬 밑에다가 좀 오래 붙여서 살짝 태워 내고 그래요.

개방형 주방 보면 중국집 주방장들이 웍을 아예 불에 태우던데, 그건 불 맛 내는 게 아닌가 봐요?

영화에서 보면 왜 아예 불을 질러서 요리를 볶잖아요? 그렇게 볶으면 그을음 맛나서 못 먹어요. 그거 다 멋있자고 하는 거예요. 다만 채소를 많이 볶을 때는 기름도 많이 써야 하니까 불이 나죠. 하지만 살짝 붙었다가 꺼지는 게 정상이에요.

바오궈라고 하던가요? 그 맛을 사람들이 불맛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바오궈는 중식의 기초인데, 파를 기름에다가 달달달달 볶으면 향이 참 좋아요. 거기에 볶기 전에 간장을 살짝 '팍'넣고 볶는 거죠. 중식의 기초에요. 파 기름이랑은 달라요. 파 기름은 큰 통에 기름을 넣고 파를 통으로 넣어서 우려내는 거고요.

중식에 대해 잘못된 상식 바로잡기 2 - 중식 웍 길들이기

중식 쉐프들의 주무기 '웍'에 대한 오해도 있어요. 저도 볶음요리를 좋아해서 얼마전에 집에서 쓰려고 '탄소강'으로 된 정통 중국식 웍을 샀거든요. '시즈닝'(길들이기)이라는 걸 해야 한다기에 외국 블로그를 좀 찾아봤더니 블로그 마다, 세제를 쓰면 안 된다, 물을 묻히지 말라 등등 방법이 수십 가지더라고요.

어유, 어떻게 세제를 안 써요. 박박 닦아야지. 우리 집 팬은 매일 박박 닦아요. 어떻게 다뤄도 관계없어요. 다만 쓸 때 코팅을 잘해야죠.

코팅을 매번 한다고요?

그렇죠. 코팅이란 게 별것이 아니라 웍을 쓰기 전에 기름을 잘 두르고 연기가 나기 직전까지 데워요. 그러다 연기가 나면 그 기름을 버리고 새 기름을 둘러서 요리를 하는 거예요.

중식에 대해 잘못된 상식 바로잡기 3 - 부먹 찍먹은 정해져 있다

이런 거 말고 혹시 중식에 대한 오해가 있나요?

요새 자주 쓰는 '부먹 찍먹'이란 말 알죠? 부먹 찍먹 이런 게 사실 논란의 거리가 될 게 없는 거에요. 튀김은 소스에 강한 튀김옷이 있고 소스에 약한 튀김 옷이 있어요. 일식 중에 돈부리라고 알죠? 그런 튀김이 소스에 약한 튀김이에요. 젖으면 눅눅해지죠. 탕수육도 마찬가지로 주방장에 따라서 소스가 닿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삭하게 유지되도록 튀기는 게 있고 포삭하게 튀기는 게 있어요. 전자는 부어 먹는 거고 후자는 찍어 먹어야 맛있죠. 아니 딱 탕수육 상태를 보면 알지 그걸 가지고 싸워요.

중식에 대해 잘못된 상식 바로잡기 3 - 라드와 돼지고기

정통 중국집은 라드랑 돼지고기를 쓴다는 말도 있죠.

솔직히 볶음밥에는 돼지고기를 넣으면 맛있어요. 저도 제 밥을 해먹을 때는 돼지고기를 넣어요. 그런데 돼지고기를 넣으면 건강에 안 좋다 콜레스테롤이 높다. 뭐 이런 말이 많으니까 점점 없어졌죠. 라드도 마찬가지예요. 라드로 볶아먹거나 튀겨먹거나 하면 고소하고 맛있어요. 근데, 80, 90년대에 중국요리는 돼지기름 써서 건강에 안 좋다는 말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없어진 거죠. 지금도 웬만한 거래하는 정육점에서 달라 그러면 다 줘요. 킬로에 천원에 달라고만 하면 떼거리로 가져오죠.

중식에 대해 잘못된 상식 바로잡기 4 - MSG와 설탕

중식은 MSG랑 설탕 맛이라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식에서 MSG 쓰긴 쓰죠. 근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만큼 많이는 안 써요. 옛말에 이런 말이 있어요. 주방장이 주인이 미우면 미원을 마구 쓴다. 미원이 그만큼 비쌌던 거예요. 심지어 직원들이 먹는 밥에는 미원이랑 설탕은 못 넣게 했어요. 비싸다는 이유였죠. 지금도 미원은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그 비싼 걸 어떻게 마구 써요. 물론 그런 말도 있었죠. 주인이 미워서 미원을 마구 썼더니 손님이 많아지더라.(웃음) MSG에 대한 건 대부분 오해에요. MSG는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가 있어요. 굴 소스, 치킨 파우더, 치킨 스톡, 시중에서 파는 된장, 쌈장, 고추장 전부 MSG가 함유되어있죠. 그러니 간혹 MSG 알레르기가 있다는 손님을 만나면 '저분은 뭘 드시고 사실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MSG에 대한 오해도 오해지만 요새 음식이 지나치게 달아지고 있기도 하지요.

MSG보다 오히려 설탕이 더 건강에 나쁩니다. 생각해보세요. 건강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면 '단 거 먹지 말라'고 말하지 어떤 의사가 'MSG 먹지 말라'고 해요. 그게 건강에 정말 안 좋으면 의사가 MSG 먹지 말라고 했겠죠. 저도 단 걸 좋아해서 큰일이에요. 후각이 없다 보니까 커피도 단 캔커피를 마셔요. 아메리카노는 향으로 마시는 건데 저 같은 사람이 먹으면 그냥 한약이에요.

그래도 궁금한 이연복의 주방 인생 1 -쉐프가 유명해질 줄 알았다면

요새 하도 많이 말해서 지겹겠지만, 인생 얘기를 좀 듣고 싶어요.

내 인생이라고 해봐야 어느 주방에 있었는지 밖에는 얘기할 게 없어요. 대만 출신 부모님 밑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고. 13살에 주방 들어가서 22살에 대만 대사관 주방장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8년 있다가 서른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가게엘 들어갔죠. 한 4년 동안은 남의 가게 돌아다니면서 중식도 하고 술집 주방장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내 가게 차려서 한 6년 내 장사를 하고 마흔 다 돼서 한국으로 돌아왔죠.

그럼 이연복 요리의 베이스는 대만식인가요?

일본에 가서 요리가 좀 변했어요. 그때 특별히 신경 쓴 손님이 대만사람 한국사람 일본사람이었는데, 한국 사람이 시키면 좀 맵게, 중국 사람이나 일본사람이 시키면 안 맵게 했죠. 그때그때 맞춰서 간장이랑 소금도 섞어가며 쓰고. 그러다 보니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대만, 중국, 일본 음식의 영향을 받아서 조금씩 섞였죠.

국적은 어떻게 돼요?

전 한국에서 태어났고 국적은 대만이었죠. 지금은 한국 사람이에요.

어쩌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요리를 했어요?

화교학교는 정부에서 지원을 안 해주니까 등록금이 아주 비싸요. 형제들이 다 학교에 다니기엔 무지 부담스러웠죠. 제가 둘째인데 먼저 그만뒀어요. 한 명이라도 벌어야 하니까.

처음으로 '연복이는 이거 하나는 잘해'라며 칭찬받았던 요리가 있나요?

요리 하나 얘기하라면 좀 말하기 힘들어요.

그럼 처음으로 홀에 나갔던 자기 요리는 기억나나요?

13살 때부터 주방생활을 해서 그런 게 기억이 안나요. 기억이 안 날 법도 한 게, 일단 첫 요리는 주방 식구들 밥이랑 반찬을 만들다가 '얘 요리 좀 시켜봐도 되겠다' 싶을 때 슬쩍 시키는 거거든요. 천천히, 그러나 정신없이 일하면서 올라가는 거예요. 아, (깊은 탄식) 내가 정말 이렇게 인터뷰할 줄 알았으면 다 적어 놓을 걸 그랬어. 이렇게 중국집 주방장이 유명해질 줄 알았나요? 대한민국에서 쉐프가 유명해질 줄 몰랐어요.

이연복의 30대 시절. 그는 30대에도 동안이었다.

왜요?

옛날에는 직업이 요리사라고 남들 앞에서 말하기도 창피했었잖아요. 장가가기도 힘들다는 얘기 있었는데.

저 어려서는 중국집 주방장이 꿈인 애들 많았는데요.

그거는 어릴 때 맛있는 거 먹고 싶은 욕심에서 그런 거죠. 중국집 주방장이라고 하면 대접 못 받았어요.

그래도 궁금한 이연복의 주방 인생 2 - 내 자식은 절대 안 시켜요

그래도 지금은 오너 쉐프니까 좀 다르잖아요.

그렇죠. 그래도 오너쉐프가 낫죠.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게 식재료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거예요. 직장 생활하면 사장이 식재비가 왜 이리 많이 나왔느냐며 잔소리를 하거든요. 내가 주인이면 쓰고 싶은 거 맘대로 쓸 수 있으니까 그게 좋죠.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너 쉐프면 재료를 아껴서 다 남기려고 한다고 생각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자신이 짠돌이다 싶으면 식당하면 안 돼요.

좋은 점도 있지만, 너무 힘들진 않나요? 재료 사입부터 일일이 다 신경 쓰려면?

그런데 그렇다고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이 오너 하기도 쉽진 않아요. 이게 요리하는 게 눈에 다 보이니까 잔소리를 하게 되거든. 맘에 안 드는 게 눈에 보이는데 잔소리 안 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자꾸 잔소리하자니 주방장이 기분 상해 할 거 같고.

직장 쉐프도 힘들고 오너 쉐프도 힘들고 오너만 하기도 힘든 거네요. 슬하의 자제분이 요리 한다면 시킬 건가요?

(단호하게) 안 시켜요. 이 힘든 걸 왜 시켜요. 아침에 10시에 가게 나와서 재료 준비하고 집에 가려 치면 밤 11시에요. 저는 쉬는 날도 없어요.

그럼 아예 못 쉬세요?

임대료다 뭐다 재정상 가게를 한 자리에서 계속 하기가 힘들잖아요. 연희동 목란은 시작한 지 1년 7개월 됐고 그전에는 평동에 있었어요. 그러니 가게를 자주 옮겨야 하는데, 옮길 때마다 부동산 돌아다니면서 자리 알아보는 기간이 한 두 달 정도 있거든요. 그때가 제일 행복해요. 아, 지금이다. 인생을 즐기자. 아내랑 둘이 여행 다니는 걸 아주 좋아하니까, 그럴 때면 빚을 내서라도 일단 여행을 가요. 그래 놓고 새 가게 열어서 조금씩 갚는 거죠. 근데 비행기에서 귀 먹먹한 게 너무 괴로워서 멀리는 못 가고 중국, 일본, 대만엘 자주 가요.(웃음)

그래도 궁금한 이연복의 주방 인생 3 - 나이트 라이프

가게 끝나면 뭐 하세요?

지인들 만나서 술자리에 가고 그래요. 근데 냄새를 못 맡으니까 술을 과하게 하면 다음날 요리하는 데 지장이 있어서 과음은 안 해요.

홍대 모처에서 쉐프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제보가 자주 있었는데요.

모임이 많아요. 요리사 끼리도 자주 마시는데 카덴(이자카야) 하는 정호영, 몽로(이탈리아식 주점)하는 박찬일, 맛칼럼니스트 박정배, 중앙일보 안충기 부장 뭐 그런 사람들이랑 소소하게 모여요. 가게 끝나면 연 곳이 별로 없어서 문제에요.

어디서 주로 드세요?

몽로나 진진같이 늦게까지 하는 곳에서 모이곤 하죠.

가게 예약도 꽉 찼던데 혹시 중식 파인 다이닝(고급 요리)을 차리실 생각은 없나요?

없어요. 오히려 서민식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지금 여기도 너무 커요. 요새 이런 생각을 해요. 식당이 좀 작고 돈을 적게 벌더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데,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서너 명이 아기자기하게 일하면서 행복한 가게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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