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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5일 08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25일 14시 12분 KST

'한·일 정상회담과 위안부 문제 분리'는 대담한 제안이지만

한일관계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위안부문제를 일단 정상회담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 한일 기본조약의 부속 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를 설치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중재위원회 설치 제안은 중재위원회 그 자체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양국간의 새로운 분쟁을 초래한다. 또 일단 중재위원회 설치가 제안되면 위안부문제 이외의 문제도 거의 확실하게 논의 대상으로 책상 위에 오르게 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외무상이 3월 21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새 정부, 즉 일본의 제2차 아베 정권과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이미 2년 이상이 지났다. 아시다시피 그 동안 양국은 정상회담마저 개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한일관계는 1965년 한일수교 이후 반세기 중 "최악의 상황"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런 한일관계 상황에서 나온 조세영 교수의 블로그 글 "한일관계 타개방안 | 정상회담과 위안부 문제의 분리대응"은 아주 대담한 제안을 담고 있다. 첫째 이유는 전 한국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정부의 대일외교의 기본 방침의 하나 - 즉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위안부문제의 진전이 필요하다"는 주장 -에 명백하게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점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위안부문제를 한일기본조약의 부속 협정(위안부문제에 대해서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을 촉구하는 데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 한국 정부는 위안부문제를 비롯한 양국 간 현안에 대해 중재위원회를 설치하여 논의하는 것에는 소극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세영 전 국장이 과감히 이런 주장을 전개한 배경은 그가 오늘의 한일관계에 대해 그만큼 강한 위기감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상회담이 장기간 개최되지 않으면 다양한 문제가 정체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위기감은 한일 양국의 일반 시민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난 수년 동안 한일 양국의 정치적 관계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양국간의 경제적 또는 사회적 교류는 문제 없이 계속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양국에서는 가끔 "정상회담을 억지로 개최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조차 나온다.

물론 오늘날 전 세계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국제적 현안이 뜨겁게 논의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정상회담은 개최할 때까지 주로 관료들이 쌓아온 협상의 성과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며, 그래서 뭔가 "서프라이즈"가 튀어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갑자기 정상회담에서 뭔가 새로운 제안을 해도 상대방이 그에 대한 준비가 없으면 의미 있는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상회담이 아무런 역할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FTA협상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정상회담 개최에 맞추도록 다양한 외교 협상이 진행된다. 즉,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다양한 외교 협상의 "마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국제관계에서는 정상회담이 장기간에 걸쳐 개최되지 않으면 다양한 문제가 정체하게 된다. 국제관계에서는 합의 내용에 기한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장기간 열리지 않으면 다양한 교류나 협정이 "만료"로 끝나버린 채 갱신되지 않은 사태도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한일간의 다양한 교류가 정체되거나 기능이 정지되었다. 교육이나 문화 등에 관한 것부터 군사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물론 한일 양국에 존재하는 문제는 위안부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관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교관을 지낸 조세영 교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과감한 제안을 한 것 같다.

"중재위원회"설치는 새로운 분쟁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한일관계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위안부문제를 일단 정상회담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 한일 기본조약의 부속 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를 설치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원래 이 중재위원회는 "각 (조약) 체결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 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 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된다. 당연히 여기에서 중재의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제3의 중재위원"이고, 또 그 선정 과정에서 양국의 의견을 대표하는 중재위원에 의한 "대리 전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부속 협정에 한일 양국은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승)복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그 결과를 결정짓는 "제3의 중재위원" 선정에 역사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명운이 갈리기 때문이다.

즉 중재위원회 설치 제안은 중재위원회 그 자체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양국간의 새로운 분쟁을 초래한다. 또 일단 중재위원회 설치가 제안되면 위안부문제 이외의 문제도 거의 확실하게 논의 대상으로 책상 위에 오르게 된다. 왜냐하면 한일 기본조약과 그 부속 협정을 둘러싸고 양국 행정부와 사법부 간에서 이해가 어긋나는 이슈는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징용자 문제나 군인 군속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에서 보면 한일 기본조약 협상 과정에서 논의된 것이 외교 문서상으로도 명확한 징용자 문제는 중재위원회에서 "싸우기 쉬운" 이슈이기 때문에, 만일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중재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을 제안하면, 일본 측에서는 징용자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렇게 중재위원회에서 논의될 문제는 끝없이 확대된다. 논쟁의 대상이 확대되면, 당연히 양국 여론에 대한 정부의 부담도 커진다.

물론 양국 정부와 여론이 각오를 다진다면 돌파구를 여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양국 정부와 여론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중재위원회 설치를 제안했을 경우, 거기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징용자 문제 등 폭넓은 분야의 문제를 논의해야 할 중재위원회 설치에 동의할 것이라고는 현재 단계에서는 예상하기 힘들다. 즉 중재위원회 설치에는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고, 그것은 적어도 "지금"이 아닐 것이다.

구속력 없는 완만한 "세컨드 트랙" 협의 기관을

하지만 위안부문제를 비롯한 한일간의 현안을 이대로 내버려둬도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실효성을 갖추는 동시에 갈등을 지나치게 심화시키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중재위원회 설치가 문제를 심화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구속력을 가지고, 부속 협정에 따라"제3의 중재위원"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형태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은 중재위원회에 준하는 조직을 구속력을 갖지 않고 인선을 둘러싼 혼란이 초래되지 않는 형태로, 즉 양국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만 그것에 제한 받지 않은 완만한 "세컨드 트랙"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현재 양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한일 기본조약에 대한 이해가 행정부 수준뿐만 아니라 사법부 수준에서도 괴리되어 있으며,그래서 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등에 대처하는 방법이 엇갈리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어느 한쪽, 혹은 양쪽의 사법부가 접근 방법을 바꾸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양국 행정부 및 사법부의 한일 기본조약과 양국간의 현안에 대한 해석이 어느 정도 국제적으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중재위원회를 비롯한 오늘날 국제사회의 법적 중재기관은 영향력 있는 국제법 학자와 전 외교관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조직을 세컨드 트랙으로 설치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역사학자들의 토론과 달리 법학자들의 토론은 명확한 흑백이 결정되기 쉬운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만일 이 조직에서 어느 쪽의 이론이 명백하게 부정되면 그 나라는 이를 전제로 대처해야 하는 입장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논리를 유지한다면 입장이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떻게 분쟁을 불필요하게 심화시키지 않고 어느 쪽의 주장을 철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이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지혜"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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