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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2일 13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2일 14시 12분 KST

한일관계 타개방안 | 정상회담과 위안부 문제의 분리대응

이명박 정부의 처음 2년간 8차례나 개최되었던 한일 정상회담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만 2년이 되도록 한 번도 개최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정상회담 없는 한일관계의 정상화'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국교 정상화' 50주년의 화두가 '관계 정상화'에 집중되어 버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대로라면 금년에도 한일관계의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대세인 가운데 두 가지만큼은 분명한 듯하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에서 '1965년 체제'의 한일관계가 확실히 막을 내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래의 발상으로는 현 상황을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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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와의 대화에 참석한 박근혜(왼쪽)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일본의 변화

국교정상화 이래 일본은 과거에 대한 부채의식과 앞선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일관계에서 나름대로 융통성과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면모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특히 한일 외교 현안을 다루는 일본 정부의 자세가 과거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따지고 주장하며 맞대응도 마다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독도나 동해에 관한 문제에서 그러한 자세가 두드러졌고, 작년 6월의 고노담화 검증 결과 발표에서는 비밀 해제도 되지 않은 외교 협의 내용까지 일방적으로 공개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세를 전개했다.

또한 최근에는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약화된 것 같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중국에 경사되는 태도를 보이는데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서명 직전 취소(2012년 6월)나 남수단 한빛부대에 대한 자위대의 탄약 지원 소동(2013년 12월) 등 크고 작은 외교 사안에서 한국 정부의 자세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 것 같다.

한편, 일본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감정이 최근 몇 년간 크게 악화되었고, 특히 위안부 문제에서 적나라하게 반감이 표출되고 있다. 보수우파들은 근거 없는 주장이 유포되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명예가 실추되었으며, '아시아여성기금'과 같은 일본의 성실한 노력도 부당하게 폄훼되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아사히신문의 오보 사태를 계기로 이 같은 주장이 일본 사회에서 상당히 공감을 얻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 외교현안으로 떠올랐던 1990년대만 해도 일본에는 위안부 문제에 호의적인 여론이 상당히 폭넓게 존재했으나 지금 그러한 여론은 소수로 전락해 버렸다. 주목할 것은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주던 일본의 중도.진보 세력조차 최근에는 한국의 태도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일방적이며 일본의 성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협력으로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루고 나면 일본에 대해 관대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거꾸로 일본에 대한 한국의 자세는 더욱 경직되었고 이제는 일본을 경시하고 무시하기까지 한다는 것이 일본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다.

한국의 변화와 뉴 노멀(New Normal)의 한일관계

한국에서는 과거 '1965년 체제'에서 억제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사와 독도 문제에 대한 불만이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는 냉전 종식과 중국의 대두라는 국제정세의 변화 그리고 한일 경제격차의 축소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그리고 민주화의 실현, 인터넷과 SNS의 발달에 따라 국민여론이 외교정책에 대해 직접적이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여론은 외교에서 투명성과 선명성을 요구하고 정치지도자들은 이를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으며, 외교정책에서 유연성의 발휘가 점점 어려워졌다. 특히 국민감정이 민감하게 작용하는 한일관계에서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고려보다 감성적인 인식(perception)이 외교를 좌우하는 현상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현저하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나, 남쿠릴, 센카쿠와 같은 영토해양 문제, 야스쿠니 참배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본에서는 '일본의 한국화'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과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태도 변화는 쉽게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며, 한국 사회에서 독도나 과거사 문제가 예전처럼 억제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외교에 대한 국민여론의 영향력도 쉽게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1965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까지 이러한 한일관계의 '뉴 노멀(New Normal)'의 상태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대일정책에서도 과거와는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 한국의 국민여론이 납득할 수 있는 국내적 설득력과 함께, 변화된 일본 사회도 납득시킬 수 있는 대외적 설득력까지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 대국적 견지에서 지금의 불만은 조금 덮고 가자는 발상으로는 국내여론을 납득시킬 수 없다. 일본의 원죄를 지적하며 공세를 벌이는 방식만 가지고는 더 이상 일본 사회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종래의 방식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시시비비에 따라 따질 것은 따지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국내적으로도,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두 가지 설득력' : 청구권협정이 시험대

'두 가지 설득력'의 첫 번째 시험대는 한일 청구권협정이다. 현재 한일관계의 관건은 위안부 문제다. 그런데 그 핵심은 청구권협정에 있고 강제징용자 문제와 동전의 양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청구권협정으로 맥을 짚어 종합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제대로 풀어낼 수 없다.

위안부 문제의 헌법재판소 판결(2011년 8월)과 징용자 문제의 대법원 판결(2012년 5월)은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일 간의 모든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판결을 계기로 한국의 사법부가 국가 간의 약속보다 국민감정을 중시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대두되었다.

한편,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2005년 8월 '한일회담 문서공개 민관공동위원회'가 분명히 밝혔다. 청구권협정으로 징용자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위안부, 사할린 한인, 원폭피해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1) 그렇다면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방향도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우선 징용자 문제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이 실시되어 한일 간에 중대한 외교문제로 비화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국가 간에는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필요하다면 피해자들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밝혀야 한다. 작년 6월에 발족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재단'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있을 것이다. 국가 간의 조약을 체결한 이상 한국 정부가 그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 마땅하며 정부가 밝힌 청구권협정의 해석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피해자들과 국내여론의 반발이 있겠지만 2005년에 밝힌 정부 입장에 따라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일본에 대해 한국 정부의 신뢰가 회복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방향 전환

한편,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므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협정의 해석 문제를 일본에 철저히 따져야 한다.2) 이미 청구권협정 제3조 1항에 따라 일본에 대한 외교적 협의를 두 차례나 요청했으나 일본이 응하지 않았으므로, 다음 단계로 제3조 2항에 따라 중재위원회 회부를 요청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는 이와는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외교당국 간의 국장급 협의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조치'를 일본 에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합의안이 나와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양보와 타협이 수반되는 외교협상을 통해서 과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어디까지나 도의적 책임에 입각한 인도적 조치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안에 대해서는 한국의 피해자와 국민여론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는 지난 20여년의 우회적 해결(한국의 금전적 보상 불요구 방침 및 피해자 지원 국내조치와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 사업)의 시도가 벽에 부딪혔고 결국 헌법재판소 판결을 계기로 청구권협정의 해석 문제로 되돌아온 것이다. 따라서 외교적 타협을 통해 또 다시 우회적 해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중재위원회 회부로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하여 문제의 핵심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적극 이행하는 것이며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도 일관되는 것이므로 피해자와 국내여론에 대해 큰 설득력을 갖는다. 청구권협정의 해석이 서로 상반되고 있는 문제를 협정의 규정에 따라 따져보자는 것이므로 일본 측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것보다 논리적으로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과 위안부 문제의 분리대응

현재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분위기나 일본 정부의 입장으로 볼 때 한국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합의안이 나오기 어려운 만큼, 위안부 문제를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결코 한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라는 단일 사안이 대일외교 전체를 옭아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상회담과 위안부 문제를 '분리대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재위원회 회부는 이러한 분리대응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국내여론에 대해서는 위안부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분리하는 것이 결코 일본에 대한 양보가 아니며, 정상회담과는 별도의 트랙에서 청구권협정 해석의 문제를 일본에 제대로 따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분리대응은 대일외교의 기본방침으로서도 필요하다. 과거사나 독도 문제에서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되 안보나 경제 분야에서는 실용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사 문제에 성의를 보이지 않더라도 안보와 경제에서 실익을 챙길 수 있는, 일본에게 편리한 논리라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분리대응에 대한 국내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위안부 문제처럼 따질 것은 분명하게 따지면서 다른 한편으로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시비비에 따라 분리대응을 구사하며 '두 가지 설득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 이것이 한일관계를 풀어가는 새로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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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관공동위원회는 '한일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발표했다. 반면, 징용자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보고 한국 정부가 1975년의 국내보상조치에 이어 2008년부터 제2차 국내보상조치를 시작했다.

2)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핵심은 위안부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해석이 상반됨에도 불구하고,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른 노력(외교적 협의와 중재위원회 회부)을 하지 않고 있는 부작위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즉, 청구권협정의 제3조에 따라 '해석의 차이를 해결'하라는 취지로서, 단순히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과는 구별된다.

* 이 글은 동아시아연구원의 'EAI일본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