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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임종을 예견한 고양이

미 요양병원에서 사망 직전 환자 곁 지킨 ‘호스피스 묘’ 오스카

미국 프로비던스의 요양병원 스티어하우스에 사는 고양이 오스카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다가가 마지막 시간을 함께한다. 2013년에는 오스카가 응급실로 실려가 심정지를 겪었으나, 스티어하우스에 돌아와 회복됐다.
미국 프로비던스의 요양병원 스티어하우스에 사는 고양이 오스카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다가가 마지막 시간을 함께한다. 2013년에는 오스카가 응급실로 실려가 심정지를 겪었으나, 스티어하우스에 돌아와 회복됐다.
ⓒhuffpost

고양이가 인간의 친구라고 하기에는 우린 떨어진 지 너무 오래됐다. 우리가 침팬지와 떨어진 지는 대략 500만 년 전, 오랑우탄과 떨어진 지는 1400만 년 전, 고양이와 떨어진 지는 85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우리와 고양이의 공통 조상이 있고 그 조상은 로라시아테리아라는 주장이 있다. 화석조차 발견되지 않은 가상의 동물이지만, 그 동물이 돌연변이를 낳고 돌연변이를 낳아 지금의 인간과 개와 고양이와 박쥐와 고슴도치가 되었다는 건 진화생물학의 기본이다.

한 몸이었던 두 종이 8500만 년 동안 다른 몸으로 살다가, 그 끄트머리 8500의 1쯤에서 고양이가 인간을 찾아온 셈이다. 아마도 신석기시대 초기, 누군가가 창고에 곡식을 쌓아놓을 즈음, 거기에서 잠복하며 쥐를 잡아먹고 곡식에 손대지 않아(고양이는 곡식을 잘 안 먹는다) 인간에게 환영받았을 것이다. 서로 상관하지 않으면서도 이익이 되는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둘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1만 년 뒤 고양이사의 가장 역사적 시기가 시작됐으니, 바로 지금이다. 인스타그램의 사진과 동영상을 스타 고양이가 장악했으며, 그 휘하에 ‘고양이가 나를 선택했다’며 모시는 집사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고양이는 사람의 죽음을 예견하고 죽음을 함께하기까지 한다. 그의 이름은 오스카.

SNS 없던 시절 세계적인 스타

스마트폰이 없을 때, 오스카는 최고로 유명한 고양이였다. (물론 오스카도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지만, 신진 스타들에 비하면 힘에 부쳤다.) 과거 한국에서도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왔으며, 물론 점잖은 일간지의 기사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대중에게 알려지기로는 거의 처음이라고 할 만한 2007년 7월26일치 <로이터> 통신의 기사를 보자.

“고양이 ‘오스카’가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요양병원) 스티어하우스의 (특정 환자) 병실에 들어가면, 의료진은 행동에 들어간다. 오스카는 몇 시간 안에 (그 환자가) 죽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병원 전문의 데이비드 도사(브라운대학 교수)에 따르면, 오스카는 지난 2년 동안 스티어하우스의 말기 치매 병동에서 25명 넘는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오스카의 존재가 알려진 건, 어쩌면 우연이었다. 일에 자신만만하던 젊은 의사 도사는 마침 한 프로젝트 공모에 낙방한 터였다. 인생의 진리란, 유난히 일진이 나쁜 날 꿈틀거리며 부상하는 법. 인생이 헛되다고 느껴질 찰나에 그간 병원에서 소문으로 나돌던 고양이 오스카가 떠올랐다. 그는 건조한 학위 논문 대신 촉촉한 에세이를 유명의학 저널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보냈다. 처음엔 글을 실어줄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저널은 이를 택했고, 언론은 앞다퉈 죽음을 예견하는 고양이를 보도했다. 3년 뒤 도사의 책 <고양이와 회진을>(번역서 제목 ‘고양이 오스카’)이 나오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그 뒤 9년이 흘렀고, 오스카는 잊혔다. 5월 초, 데이비드 도사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오스카의 근황을 물었다.

임종 환자 어떻게 알아봤을까

“오스카는 살아 있나요? 건강은 어때요?”

“제가 몇 년 전부터 매일 진찰을 하지 않아요. 지금도 병원 이사회 일원이긴 한데,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오스카가 사는 곳에 건너가지요. 오스카는 지금도 스티어하우스에 살고 있습니다. 열두 살이니 이제 노인이 다 되었지요. 그래서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저를 보면 알아본답니다.”

“오스카가 죽음을 지켜본 환자가 몇 명인가요?”

“오스카를 매일 보지 않기 때문에 확실히는 몰라요. 하지만 초창기에 이미 100명이 넘었지요.”

놀라운 일이 알려지면서, 어떤 사람들은 오스카를 ‘죽음의 사자’처럼 받아들였다. 말기 치매 환자의 병실에 고양이가 들어간다. 곧이어 환자가 세상을 떠난다. 고양이는 조용히 병실을 떠난다. 이런 식으로 자극적으로 단순화된 서사는 고양이에 대한 불길한 선입견을 강화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오스카는 침대 곁에 앉아 환자와 함께했다. 가족들은 오스카를 ‘호스피스’로 받아들였고, 가족이 없는 환자에게는 오스카가 유일한 가족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오스카와 ‘한 팀’으로 움직이며 죽음을 준비했다.

“요즘도 오스카가 임종을 같이하나요?”

“알레르기 문제로 죽을 뻔한 뒤, 더는 환자 병동에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한밤중이나 조용할 때 가는 것 같아요.”

“죽을 위기를 겪었다니요?”

“몇 년 전, 추수감사절 연휴 때였어요. 오스카가 음식물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고, 스테로이드를 주사했지만, 곧 죽을 것처럼 보였죠. 고양이 응급실로 이송됐는데, 심각한 심정지가 왔어요. 모두들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가 호스피스가 되어주자고 했습니다. 오스카를 스티어하우스로 돌려보냈지요. 함께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죽음을 맞으라고요. 그런데 스티어하우스에서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오스카가 기적처럼 회복됐습니다.”

“죽어가는 세포 냄새에 반응한 듯”

오스카는 어떻게 다가온 죽음을 느끼는 걸까? 유일한 과학적 설명은, 우리 몸에 있는 ‘케톤’이라는 물질에 반응했을 거라는 추측이다. 케톤에는 특유의 향이 있어, 의대생들이 초기 당뇨병 환자의 입 냄새에서 이걸 구분하는 훈련을 받곤 한다. 도사가 말했다.

“나는 오스카가 무엇인가에 반응한다고 믿습니다. 무엇인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요. 케톤은 죽어가는 세포나 굶주린 상태에서 방출되는 냄새나는 물질인데, 오스카가 이 냄새에 반응한다는 게 꽤 가능성 있는 설명입니다. 또한 초창기에 오스카가 죽음에 임박한 말기 치매 환자 옆에 있으면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었지요. 그런 칭찬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오스카의 행동을 강화했을 수 있죠.”

궁금한 게 또 있었다. 고양이는 죽음의 의미를 알까? 죽음은 영원한 부재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길거리에서 차에 치어 죽은 어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 아니면 그 반대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만 년의 세월 동안 함께해온 반려자 인간의 부재에도 고양이는 그런 감정을 느낄까? 이에 대해 도사는 과학자답게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오스카는 환자가 죽으면 병실을 떠났다”고 했다. 더는 그가 육체에 깃들지 않는다는 걸 안다는 듯이 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고양이가 쳐다본다. 고양이는 신과 영혼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생각하는 걸까? 인간은 그것에 집중했고 여기까지 왔다. 고양이는 자신의 종이 창조된 후 떨어져 있다가 마지막 8500분의 1의 시간을 인간과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 1만 년 아니면 10만 년, 1천만 년 뒤에도 고양이는 인간과 함께 있을까?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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