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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22일 16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22일 16시 13분 KST

‘땐뽀걸즈’, 완뚜쓰리뽀, 그 뒤엔?

젊은 세대는 중공업 가족이라는 틀을 거부했다.

″성적은 9등급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그린 장면이 인상 깊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란 이런 것”

영화 <땐뽀걸즈> 독자평에 달린 댓글이다. ‘성적은 9등급’,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는 말은 주인공들의 진로를 이미 암시하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거나, 춤과 관련된 적성을 찾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 사실 그녀들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녀들의 주위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과 어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밝은 분위기와 짠한 감정이 묘하게 교차할 수밖에 없다. 조선업의 위기만이 그 분위기를 만드는 건 아니다.

영화 <땐뽀걸즈>에는 아빠들의 모습도 슬며시 등장한다. 사실 영화에서 댄스 동아리를 맡아 운영하는 것도 남자 선생님이다. 영화에 ‘여자 어른’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거제도가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도시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셈이다. 선생님을 제외한 아빠들의 모습에서는 거제도의 무너진 경제 상황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른바 ‘가(부)장의 위기’. 삼성중공업에서 일하다가 석연찮은 이유로 그만두고 버스를 운전하는 아빠, 대우조선 1차 희망퇴직에서 사표를 던지고 횟집을 운영하겠다며 서울로 올라가는 아빠, 조선소에 일하러 온 남자와 ‘눈이 맞아’ 덜컥 아이를 낳은 엄마와 아이를 두고 어디론가 일을 찾아 떠나간 아빠. 활황의 경제가 쇠락하고, 중공업 가족의 경제적 토대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위기들이 영화 곳곳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 가족을 건사하는 든든한 아빠의 모습은 물론이고, 남편의 월급을 받아 육아와 가사, 소비 생활에 전념하는 엄마들의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아빠들은 불안정한 노동과 자영업으로 내몰렸고, 엄마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났거나 아예 가족을 떠나버린 상태이다. 이렇듯 <땐뽀걸즈>에 중공업 가족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지 않은 장면은 없다.

영화 속 여고생들은 정작 덤덤하다. 위기를 몸으로 느끼며 우울해하지도 번민하지도 않는다. 부모 없이 친구와 보증금 240만 원에 60만 원 하는 집의 월세를 내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빈, 횟집에서 일하는 부모 대신 다섯 명의 동생을 돌보는 은정, 서울로 일을 배우러 떠난 아빠를 기다리는 시영 모두 현재의 고단함과 불안한 미래에 휩싸이는 대신 댄스가 주는 기쁨과 설렘에 집중한다. 어쩌면 ‘다른 꿈’을 꿀 만한 반전 요소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는 것을 달관했기에 가능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땐뽀걸즈>의 여고생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졸업을 하고 선배 사무보조직들이 떠난 자리를 채울 예정이다. 앞 절에서 살펴본 인구의 이동을 떠올려보면 그녀들은 20대 후반, 30대 초반 즈음 결혼을 해서 중공업 가족에 편입되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다. 어떤 미래가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영화가 전하는 따뜻하고 발랄한 기운에도,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여성 사무보조직들은 조선소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지만, 이후에는 중공업 가족의 재생산을 맡는 역할 안에 갇히게 된다. 사실 ‘땐뽀걸즈’의 20대는 중공업 가족의 아빠들이 나쁘지 않게 여기는 삶이다. 취업난이 심해진 지금, 상경해 대학을 다닌 거제 출신 여성들 중에는 아버지가 중공업에 종사하며 직영이나 하청 사무보조직으로 근무하는 여성들을 이따금 부럽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럭저럭 일하고 퇴근해서 엄마와 함께 쇼핑하는 일상을 누리고, 아빠가 소개해주는 적당한 남자와 결혼해서 사니 ‘심 편하고’ 좋지 않냐고 되묻곤 한다. 아들과 딸 모두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고, 취업 시장에도 똑같이 진출하길 기대하는 2010년대 가족들에게 사무보조직의 삶은 어쩌면 너무 낡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사무보조직도 괜찮다는 부모들의 말은 낡은 사고방식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예전의 상황에서 괜찮은 선택지를 탐색하며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깥 세상과 큰 괴리가 있는 선택지라는 것도 하나의 엄연한 사실이다.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는 애초에 배제와 포섭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거제로 이주한 정규직(사무직/생산직)들이 회사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족을 형성함으로써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결혼과 출산을 통해 직계가족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공업 가족은 여성들과 딸들의 공간을 결혼 생활의 영역에 한정 지었고, 그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젊은 세대들 앞에서 약점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젊은 세대는 셔틀버스로 출퇴근을 하는 쪽을 택함으로써 중공업 가족이라는 틀을 거부하고, 경기에 따라 이직을 선호하는 등 확실히 다름을 표방했다. 딸들은 거제를 떠나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아빠들의 믿음을 저버렸다. 그렇게 중공업 가족은 빈축을 샀다. 조선산업의 경기가 위축되면서 중공업 가족 내부의 모순과 긴장들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필자의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