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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07일 16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07일 16시 13분 KST

어딘가를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얼굴의 개였다

무탈한 오늘

북이십일
huffpost

그날은 술을 많이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음날 안락사 예정인 개들의 소식을 본 날이었다.
보통은 마음이 아파 후루룩 넘길 사진이었는데
술에 취해서인지 뚫어지게 보았고
끝내 입양되지 않은 한 마리가 있어
임시 보호자가 울 것 같은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
자정이 임박한 시간임에도
초조히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임시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다음날 울산으로 녀석을 데리러 갔다.
아팠고 말랐고
홍역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떨었으며
어딘가를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얼굴의 개였다.

북이십일

삶의 대부분을 유기견 보호소에서 살았던 것은
안락사를 피하기 위해
임시 보호자들이 여러 곳을 옮겨 다니게 해준 덕이었지만,
개는 더 이상 사는 일에 미련이 없어 보였다.
그것이 우리와 함께하지 못할 까닭은 아니었기에
서류를 작성하고 녀석을 데려와서
연이,라는 고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묵은 고생의 흔적이 가시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마음을 여는 일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그 지점을 몰랐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이에게 손바닥을 물려서
여섯 바늘을 꿰매야 했다.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친해지려는 태도가
가진 자의 여유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다가가는 손을 경계하고
사료가 넘쳐도 허기진 마음은
경험에 근간한 불안.
그로 인한 날카로움은
손이 물렸을지언정 내가 타박할 일이 아니었다.

북이십일

연이가 먹을 때는 혼자 먹을 수 있게 하고
쓰다듬을 때는 손을 먼저 볼 수 있게 했다.
거리를 지키기 시작한 뒤
함께 지내는 일은 순탄해졌고
종이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일상적이고 조용하게,
숨결이 느껴지는 품 안으로 연이가 다가왔다.

상처받은 존재를 대함에
우리는 얼마나 쉬이 우를 범하는가.
잘해주면 금세 친해질 거라는 생각과
친해지면 금세 상처가 아물 거라는 착각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것인가.
기대만큼 다가오지 않는 네 한 걸음이 과연
내가 화낼 이유가 되는가.

북이십일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연이를 잘 말하지 못한다.
헤어지고 나니
내가 잘못한 것이 끝없이 떠오른다.
연이는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
아프게 남아있는 존재이며
처음 만난 모습을 가장 또렷이 기억하는 존재이다.

연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어떤 모습이었든,
내가 어둑한 저승길을 걸어가는 순간에
어느 수풀에서 연이가 뛰어나와준다면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저승길에 그들이 맞이해주러 나온다는
검증된 바 없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몹시 좋아한다.

북이십일

우리가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아주 짧은 순간일지언정
그 머리를 한 번만 더
쓰다듬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잘 지냈어 연아,
라고 조용히 이름을 부르며.

* 에세이 ‘무탈한 오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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