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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03일 11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1월 03일 11시 17분 KST

강제진단이 제때 이뤄져야 하는 이유

보다 적극적인 법의 해석과 집행이 필요하다.

sudok1 via Getty Images
huffpost

※ 세밑 유명을 달리한 의사를 추모하며

2013년에 견줘 지난 5년간 불안장애로 진료받은 환자의 수는 35.7%나 증가했다. 우리 사회의 ‘불안증’은 사회의 주요한 ‘경험치’이며, 개인적인 것 이상의 문화적, 사회적 현상의 결과다.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희망하고 무엇에 낙담하는지에 관한 것의 총합이다.

세밑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죽음으로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행정권은 물론이고, 치안권을 발동할 수 있다. 강도가 칼을 들고 있다면 불법이지만, 의사가 인간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응급실에서 손에 쥔 메스는 합법이다. 생명권을 위한 사회적 제도 불비의 언급은 차치하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병적 불안’이 더 조장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환자의 생명권을 위해 평생 헌신한 의사의 2016년 유작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 나온 구절들이 절절히 가슴에 와닿는다. 임세원 교수는 수년 전부터 시작된 고통스러운 만성 통증에 시달리면서 여기에 수반되는 힘겨운 우울 증상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평소 환자들이 말하는 ‘마음의 병’에 대해 가슴으로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임 교수는 책에서 “전문의가 되고 나서도 10년 이상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틀리고 환자들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많은 환자들을 만나 임상 경험이 쌓여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우울증으로 상당 기간 고통을 받고 나서였다”라고 했다.

진료기록부를 볼 수는 없지만 조울증 양극성 장애로 의심되고,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타인을 해할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사료되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정을 할 수 있다.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하여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는 경우 어떤 방법이 합리적일까?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자신과 타인의 생명권을 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 사회적으로 안전한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도 ‘적극적 인권’에 해당할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는 강제입원의 특성상 사회적, 윤리적, 그리고 법적으로 그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늘 있었으며, 특히 최근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인권에 대한 관심과 최근 지역사회 케어의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탈시설화’에 방점을 두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명백한 타해(남을 해침)의 위험이 있음에도 병식이 없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외국에선 이탈리아와 스웨덴, 스페인을 제외하고 보편적인 기준으로 자·타해 위험성을 적용해 강제입원을 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신건강복지법도 이 점을 인정하여, ‘진단을 위한 입원’ 제도를 두고 있다. 정신과 의사가 진료를 통해,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자신 또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성이 있는 자’가 ‘정밀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해당 시·군·구의 장은 최장 2주까지 강제로라도 ‘진단을 위한 입원’을 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그 정밀진단 결과에 의해 퇴원이나 ‘치료를 위한 입원’을 판단한다. 다소 복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절차는 인권과 생명권을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장치인 것이다.

하지만 ‘진단을 위한 입원’의 판단과 인정 자체가 반드시 ‘대면진료’를 전제로 해서는 곤란하다. 대면진료를 통해서만 하게 되면 제때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때때로 필요할 경우엔 정신의학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응급요원들이 자·타해 위험성이 보일 경우 요청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면진료를 거치지 않으면 담당 의사나 관계 공무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잖다. 적극적으로 환자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를 먼저 상기해야 하는데, 문책을 받을 생각에 머뭇거리는 사이 정밀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대면진료를 위해서 병원에 먼저 데려와야 하는 경우에도 전문의나 정신보건 전문요원의 신청으로도 환자를 강제 이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조차 꺼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는 숭고한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에 충분한 대처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새해 아침부터 무기력함에 빠져버렸다. 보다 적극적인 법의 해석과 집행이 필요하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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