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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4일 15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14일 15시 16분 KST

AI 시대의 번역가

HighLaZ via Getty Images
huffpost

번역을 직업으로 삼은 지 만 10년이 되었다. 그만큼의 부끄러움이 쌓인 셈이다. 사소할 수도 있겠지만 잡아내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민망했을 오역을 할 뻔한 적이 있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소설 ‘뉴욕을 털어라(원제 The Hot Rock)‘였다. ‘로드 & 테일러‘에서 알몸을 드러냈다가 경찰서에 잡혀온 ‘바바리맨‘이 등장했다. 뉴욕의 거리명일 거라 짐작하고 ‘로드가와 테일러가 사거리‘라고 옮겼다. 원고를 완성한 뒤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로드 & 테일러’는 미국 백화점 이름이었다.

이건 잠깐 방심했다가 다행히 실수를 바로잡은 경험담일 뿐이다. 번역을 해온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터넷 없던 시절의 번역가들은 대체 어떻게 작업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누구나 수정할 수 있는 위키 기반의 사이트는 믿으면 안 된다고도 하던데, 온갖 픽션과 논픽션을 번역하다 보면 다른 방법이 없을 때도 많다. 엄청난 고생을 하고 수없이 벽에 부딪히면서 어쩔 수 없이 오역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을 까마득한 선배들이여, 지금 저는 너무 쉽게 일하고 있는 걸까요.

최근 갑자기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를 봐야 할 일이 생겼다. 외출 중이었던 터라 번역서는 없었고 당장 살 수 있는 전자책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구글로 원문을 찾은 다음 ‘O for a Muse of fire’로 시작하는 서문 첫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윅셔너리’에서 ‘O for’의 뜻을 찾고, 원문을 현대 영어로 옮긴 텍스트를 구글에서 구해 참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강 이해한 뜻은 ‘불의 뮤즈가 있었더라면(없어서 아쉽다)’이었다. 아쉬운 대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도구가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의 바보짓까지 잡아주지는 못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헝거 게임’에서 ‘cheek’을 ‘chin’으로 잘못 보고 ‘턱’이라고 옮기는 대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AI에 직업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텐데.

* 조선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