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7월 18일 18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18일 18시 17분 KST

가톨릭이 '산아 제한'에 반대해온 역사를 총정리했다

가톨릭 도덕 신학이 일관적으로 피임을 규탄해오긴 했지만, 늘 지금처럼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대중들에게 사실에 기반한 분석적 관점을 제공하는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The Conversation’의 Lisa McClain(Boise State University의 역사와 젠더 연구 전공 교수)가 쓴 글입니다.  

AP PHOTO/JIM PRINGLE
교황 바오로 6세 

가톨릭의 역사와 젠더 연구의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로서, 나는 거의 2000년에 걸쳐 피임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전개되어 왔음을 입증할 수 있다.

가톨릭 도덕 신학이 일관적으로 피임을 규탄해오긴 했지만, 늘 지금처럼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 교회 관습

 

최초의 크리스천들은 피임을 알고 있었고 아마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이집트, 히브리, 그리스, 로마 문서들을 보면 질외사정법, 악어 똥/ 대추/ 꿀 등을 사용해 정자를 막거나 죽이는 방법 등 잘 알려진 피임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유대-기독교 성전은 인간들에게 “열매 맺고 번성하라”(be fruitful and multiply)고 하고 있으나(창세기 1장 28절), 성서에서 피임을 명백히 금지하는 구절은 없다.

최초 기독교 신학자들의 피임 규탄은 종교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관습 및 사회적 압력과의 타협이었다. 초기의 피임 반대는 그노시스파, 마니교도 등 이단 집단의 위협에 대한 반응이 보통이었다. 20세기 전에 신학자들은 피임을 하는 사람들은 ‘간음자’와 ‘매춘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결혼의 목적이 자식을 낳는 것이라 믿었다. 부부간의 섹스 그 자체는 죄로 간주되지 않았으나, 섹스하며 느끼는 쾌락은 죄로 여겼다. 4세기 크리스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부부가 임신을 예방하려 하며 하는 성행위는 비도덕적 방종이라고 규정지었다.

 

교회의 우선 사항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러 세기 동안 교회에서는 피임에 대해 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로마 제국 멸망 후, 사람들은 당연히 피임을 했지만 교회는 딱히 피임을 명백히 금지하지도, 하지 말라고 교육하지도, 제재하지도 않았다.

교구 주민들에게 어떤 종류의 죄에 대해 물어야 할지를 지도하는, 성직자들이 쓰던 참회 매뉴얼 대부분에는 피임이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1588년이 되어서야 교황 식스토 5세가 가톨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보수적 입장을 취한다. 식스토 5세는 교황 칙서 ‘에프레나탐’(Effraenatam)에서 모든 교회와 민간법이 피임을 한 사람들을 살인죄로 벌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교회와 민간 당국 모두 이 명령을 집행하길 거부했고, 일반인들은 아예 무시했다. 식스토 5세 교황이 선종하고 3년이 지나자, 그다음 교황은 제재 대부분을 철회하고 크리스천들에게 ‘에프레나탐’이 ‘발표된 적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대하라’고 말했다.

17세기 중반이 되자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부부에겐 이미 낳은 자녀들을 잘 키우기 위해 가족 수를 제한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기까지 했다.

 

산아제한이 보다 눈에 띄게 되다

 

19세기 무렵에는 인간의 생식 시스템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발달했고, 피임 기술도 나아졌다. 새로운 논의가 필요해졌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 때문에 가톨릭 성직자들 대부분은 섹스와 피임에 대한 설교를 포기했다.

1886년의 참회 매뉴얼에는 고해 신부가 교구 주민들에게 피임을 하는지 노골적으로 물어보고, 피임을 그만둘 때까지는 면죄를 거부하라고 나와 있지만, “이 명령은 사실상 무시되었다.

20세기가 되자, 프랑스와 브라질 등 전세계에서 가장 가톨릭 인구가 많은 국가들의 신도들은 인공피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 결과 가족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가톨릭들이 피임을 쉽게 접하고 또 사용할 수 있게 된 결과, 산아제한은 언제나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무렵부터 교회의 가르침에서 눈에 띄는 우선 사항이 되기 시작했다. 교황권은 피임에 대한 논의를 학문적, 신학적 위치에서 끄집어내, 가톨릭 부부와 신부 사이의 일상 대화로 바꾸기로 했다.

교황 피우스 11세는 1930년에 산아제한에 대한 노골적인 선언 ‘까스띠 꼰누비이’(Casti Connubii, 정결한 결혼생활)에서 피임은 선천적으로 사악하며, 어떤 형태로든 피임을 하는 부부는 ‘신과 자연의 법을 어기는 것’이며 ‘크고 심각한 죄에 더럽혀진다’고 선언했다.

콘돔, 페서리(diaphragm), 주기 피임법, 심지어 질외사정까지 금지되었다. 허가된 유일한 임신 예방 방법은 금욕이었다. 성직자들은 이 사실을 아주 명백하게, 아주 자주 가르쳐서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도 교회가 피임을 금지했음을 몰랐다고 주장할 수 없게 하도록 했다. 이것이 ‘틀림없는 발언’이라며 수십 년 동안 가톨릭을 믿는 일반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친 신학자들이 많았다. 구속력이 있으나 ‘나중에 다시 고려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신학자들도 있었다.

1951년에 가톨릭은 다시 입장을 조금 바꾸었다. ‘까스띠 꼰누비이’의 인공피임 금지를 철폐하지는 않았으나, 피우스 11세의 후임자 피우스 12세는 본래 의도를 조금 바꾸었다. 그는 ‘생식을 피해야 할 도덕적으로 정당한 이유가 있는’(이게 어떤 상황인지는 상당히 넓게 정의되었다) 부부들에 대해서는 주기 피임법을 승인했다.

 

피임약과 교회

 

그러나 1950년대 초가 되자 인공피임법이 다양해졌다. 경구피임약도 나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은 경구피임약 사용이 금지되길 원했다.

새로운 피임 기술이 나오고 임신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과학적 지식도 늘어나자, 일부 종교인들은 교회가 이 이슈에 대한 신의 뜻을 알 수 없으며, 아는 척하는 것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윌리엄 베커스 주교는 1963년 전국 TV 방송에 출연해 노골적으로 그렇게 발언했다.

교황 바오로 6세조차 혼란스러움을 인정했다. 1965년에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와 인터뷰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우리는 답을 주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어떤 답을? 우리는 침묵을 지킬 수는 없다. 그러나 말하는 게 진짜 문제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가? 교회는 역사상 이런 문제를 마주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리를 알리고 수호하는 조직인 신앙교리성의 알프레도 오타비아니 장관 등은 의견을 달리했다. 금지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믿은 이들 중 하나는 20세기 미국 가톨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도덕주의자인 예수회의 존 포드였다. 성경에 피임을 언급한 구절은 없으나, 포드는 교회의 가르침은 신의 계시에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1963년부터 1966년까지 열린 산아제한에 대한 교황위원회로 넘어갔다. 이 위원회는 압도적 다수인 80%의 찬성으로 인공피임을 받아들이도록 교회의 가르침을 넓히길 권했다.

이건 전혀 색다른 일이 아니었다. 가톨릭은 수세기에 걸쳐 노예제, 고리대금업, 지동설 등 여러 논쟁적 이슈에 대해 입장을 바꿔왔다. 그러나 소수파는 가톨릭이 지난 수십 년간 잘못되어 있었다는 걸 밝히면 곧 성령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꼴이 아닐까 우려했다.

Max Rossi / Reuters

‘후마네 비떼’(인간 생명 회칙)는 무시해 버렸다

 

바오로 6세는 결국 이 소수파 의견의 편에 서서 ‘후마네 비떼’(Humanae vitae: 인간 생명 회칙)를 공표해 모든 형태의 인공적 산아제한을 금지했다. 그의 결정은 피임 그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교회의 권위 보존 때문이었다는 시각이 강하다.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격렬히 항의했다. 위원회의 한 평회원은 이렇게 말했다.

“마치 1920년대에 만들었다가 출간하지도 않고 바티칸 어딘가의 서랍에 처박혀 있던 낡은 회칙을 발견해서 먼지를 턴 다음 나눠주는 꼴이다.”

1968년 이후 가톨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의 성직자들은 배우자 간의 성적 쾌감을 장려하는 것을 중요한 임무로 삼는다. 산아제한 금지는 계속되고 있으나, 부부가 인공피임 사용을 원할 수 있는 이유들을 논하는 성직자들도 많이 있다. 한 파트너에게 성병이 옮는 것을 막기, 가족이나 지구의 행복을 위해 가족 수를 제한하기 등이 그 이유다.

섹스에 대한 가톨릭의 태도는 바뀌었지만, ‘후마네 비떼’의 금지 사항들은 남아있다. 그러나 전세계의 많은 가톨릭교도들은 이를 그냥 무시해 버린다.

 

* 허프포스트US의 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