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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국 작가 필립 로스가 85세로 사망하다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김도훈
  • 입력 2018.05.23 14:49
  • 수정 2018.05.29 16:49
ⓒOrjan F. Ellingvag via Getty Images

현대 유대계 미국인들을 사로잡는 노이로제와 집착을 낱낱이 까발린 것으로 찬사와 조롱을 동시에 받았던 작가 필립 로스가 5월 22일에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고 그의 대리인 앤드류 와일리가 밝혔다.

로스는 뉴욕에서 현지 시간 오후 10시 30분에 울혈성 심부전으로 눈을 감았다.

로스는 30권이 넘는 책을 썼다. 아버지와 자신의 복잡한 관계를 살핀 1991년작 ‘아버지의 유산’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후기의 로스는 중년의 존재적, 성적 위기를 다루었고, 유머를 잔뜩 가미하기는 했지만 수치, 부끄러움 등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자아의 비밀의 탐구에 고집스레 천착했다.

ⓒBob Peterson via Getty Images

50년 이상 작가 생활을 해왔던 로스는 자신이 자란 지역인 뉴저지주 뉴어크의 소아마비 유행을 담은 이야기 2010년작 ‘네메시스’를 자신의 마지막 소설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닌지 보려고” 자신이 쓴 모든 글을 전부 다시 읽었다고 2014년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 실린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1930~40년대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었던 조 루이스의 말을 빌어 “내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결론내렸다.

2017년에는 1960년부터 2013년까지 쓴 에세이와 논픽션 모음집 ‘왜 쓰는가?’(Why Write?)를 냈다.

로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69년작 ‘포트노이의 불평’으로, 유대계 뉴요커인 주인공 알렉산더 포트노이가 1인칭으로 서술한 소설이다. 악명 높은 자위 장면이 몇 번 등장하며, 포트노이는 “유대인놈(yid)들에게 이드(id)를 다시 넣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로스는 표제작 중편소설과 단편 몇 편을 담은 첫 단행본 ‘굿바이, 콜럼버스’(1959)로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Zuckerman Unbound’, ‘The Ghost Writer’, ‘The Anatomy Lesson’ 등에는 로스의 소설 속 얼터 에고로 알려진 네이선 주커먼이 등장한다.

로스는 팩트와 픽션 사이의 경계를 실험하기를 즐겼는데, 노이로제에 걸린 소설가들을 자주 다루는가 하면 ‘필립’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그렇지만 진짜 로스를 캐릭터에 투영해주길 바라는 독자들의 바람에 짜증도 내고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Bob Peterson via Getty Images

로스의 소설들은 유대계 미국인들의 경험을 주로 담고 있지만, 본인은 무신론자라며 유대계 미국인 작가로 분류되기를 거부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질문이 아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사는 게 어떤지 정확히 알고 있는데, 그건 별로 흥미롭지 않다. 나는 미국인이다.” 2005년 가디언 인터뷰에서의 말이다.

로스의 소설들을 보면 로스가 유대인의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을 다루거나 전반적으로 유대인을 안 좋게 보이게 만드는, 스스로를 싫어하는 유대인임이 드러난다고 말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그는 1962년 뉴욕 예시바 대학교 심포지엄에서 적대적 반응을 받았던 것이 “내 평생 가장 불편했던 대중 앞의 경험”이라고 떠올리곤 했다.

ⓒJIM WATSON via Getty Images

  

다양한 수상 경력

로스는 1960년대가 뉴저지주의 가족에 미친 영향을 담은 1997년작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 ‘Operation Shylock’(1994), ‘휴먼 스테인’(2001), ‘에브리맨’(2007)을 통해 포크너 상을 3번 받은 최초의 작가가 되기도 했다. 1998년에는 백악관에서 국가예술훈장을 받았다.

필립 밀튼 로스는 1933년 3월 19일에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험 판매원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로스는 버크넬 대학교에서 학사를, 시카고 대학교에서 석사를 받았다. 박사 과정 중 학교를 그만두고 뉴 리퍼블릭에 영화 리뷰를 쓰며 ‘굿바이, 콜럼버스’를 냈다.

로스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등에서 비교문학을 가르쳤다. 뉴욕의 헌터 컬리지에서 존경받는 문학교수로 재직하다 1992년에 은퇴했다.

영국 배우 클레어 붐과 오랜기간 함께 했으나, 1995년에 이혼하며 결혼 생활 자체는 5년만에 끝났다. 다음 해에 붐은 ‘인형의 집을 떠나며’(Leaving a Doll’s House)라는 공격적인 비망록을 내서 로스가 우울증을 앓으며, 쌀쌀맞고, 자기 중심적이며 언어적 학대를 한다고 묘사했다.

로스는 2012년에 창작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내내 다작하며, 거의 2년에 한 권꼴로 장편을 냈다. 후기작으로는 ‘The Dying Animal’(2001), ‘휴먼 스테인’(2000) 등이 있다. ‘휴먼 스테인’은 앤서니 홉킨스와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2003년에 개봉되었다.

‘The Plot Against America’(2004)에서는 스타 파일럿이었고 반유대적 관점을 표현한 적이 있는 고립주의자인 찰스 린드버그가 1940년 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꺾고 당선된 다음 아돌프 히틀러와 평화 협정을 맺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했다.

2005년에 사망한 소설가 솔 벨로 등 친구들을 떠나보낸 로스는 잘 나가는 광고계 임원의 육체적 쇠락과 죽음에 대한 짧은 단편 ‘에브리맨’을 썼다.

ⓒIan Cook via Getty Images

로스는 인터뷰하기 어려운 상대로 알려져 있었다. 자기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싫다고 가디언에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책과 싸우고, 그 책이 어떤 책인지, 혹은 어떤 책이 아닌지 재발견하게 해주어야 한다.”

글쓰기란 자기에게 있어 “공포와 외로움과 불안으로 가득하다.”고 말했지만, “완전히 보상을 받는 날들도 가끔 있다. 내 삶을 통틀어 작가로서 겪었던 그런 완벽한 멋진 날들을 다 합치면 몇 달은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2018년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는 50년 이상의 작가 생활을 뒤돌아 보며 “들뜸과 신음. 좌절과 자유, 영감과 불확실성. 풍부함과 텅 빔. 거침없는 질주와 겨우겨우 나아가는 전진.”이라고 말했다.

ⓒBob Peterson via Getty Images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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