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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성추행 당했지만 #MeToo 운동은 거부한다

  • 김태성
  • 입력 2017.10.17 13:12
  • 수정 2017.10.17 13:13

소셜미디어에서 해시태그 #MeToo가 최근에 많이 공유되고 있다. 난 #MeToo와 함께 올라온 사연을 아픈 마음으로 읽으며 눈물까지 흘렸다. '샤론'이 당했다고? 아무 상처도 없는 완벽한 사람 같았는데... '헬렌'에게 그런 일이? 안 돼!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렸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그 기분이 점점 달라졌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남성을 포함해)이 #MeToo라는 해시태그를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난 #MeToo라는 메시지에 면역이 됐다. 그리고 #MeToo 운동을 점점 더 불편해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왜 불편하냐고? 사람들은 #MeToo에 해당하는 자기들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런데 십 대에 겪은 캣콜링이 수치스러웠다는 이야기부터 상사에게 강간당했다는 이야기까지, 성추행·폭행 사례엔 큰 차이가 있다.

내용 면에선 각자의 사연이 이렇게 다른데 그 이야기들을 알리기 데 사용되는 해시태그는 똑같은 #MeToo다.

#MeToo 운동은 거의 모든 사람이 성추행을 체험했다는 사실을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에 따른 부작용이다. 정말로 알려져야 할 사연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것 말이다.

난 #MeToo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지 않는데, 사연이 없어서는 아니다. 에스컬레이터 아래서 내 치마를 올려다본 남성, 툭 하면 '당신 가슴을 만져볼 수 없을까?'라고 하다가 결국 일을 저지른 라디오 디제이 등이 있다.

이 라디오 디제이는 뉴스 준비에 바쁜 나를 뒤에서 다가오더니 자기 손을 내 브래지어 안에 쑥 넣었다. 방송을 시작하기 몇 초 전에 당한 일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당시 일하던 퍼스 지역 뉴스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성추행당했다는 사실을 몇 사람에게 알리면서 웃음으로 넘긴 기억이 난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그만두지 않았을 일이지만, 90년대는 달랐다.

아무튼, 그 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최근까진 말이다. 적어도 내겐 이전에 있었던 해프닝 정도다. 재미있는 점은 내가 겪은 이런 #MeToo 사연들은 내가 '화려한' 모델로 잠시 활동할 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일하며 그런 추행을 당했다.

내가 #MeToo 운동에 불참여하는 이유는 내가 겪은 그런 사례가 정말로 악랄한 성추행 이야기들을 혹시라도 가릴까 봐서 때문이다. 정말로 심각한 성추행·폭행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알려지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에스컬레이터 아래서 치마 속을 훔쳐본 남성'의 이야기 정도도 너무 끔찍해 잠을 설칠 사람이 있겠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또 성추행을 정의하는 방법도 각자 다르다. 나처럼 아무 문제 없이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인 작가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소설에 나오는 한 남성이 있다. 뭐에 잔뜩 취한 이 남성은 파티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당신은 아름다워. 당신도 아름다워. 당신도. 또 당신도."라고 말한다. 이를 본 주인공은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는 소리는 아무도 아름답지 않다는 소리다."라고 생각한다.

난 성추행을 평생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만지게 해 주면 채용하겠소'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나 성폭행당해본 적이 없는, 아니 캣콜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런 사람을 말이다.

사람들이 해시태그 #MeToo를 자기들 소셜미디어에 계속 추가하고 있지만, 나를 정말로 놀라게 할 해시태그는 따로 있다. 그건 #NoNeverMe다.

아래 슬라이드는 옆으로 밀면 된다.

 

*허프포스트AU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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