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안철수에겐 네 번의 기회가 있었다

안철수가 국민의당을 창당한 것은 거대양당 체제를 깨트려야 한다는 시대요구를 현실화시켰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정치 판도와 정세를 파악하고 이를 가시적 성과로 만드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목적하는 가치관에 부합하는가에 있다. 국민의당 내에 있는 유력 정치인들은 과거 폐습이 만연하던 정당정치에 익숙한 이들이다. 안철수가 그들과 함께 새로운 정당 민주주의 실험을 시도하고 결과를 증명했다면 그는 우리 정치사에 유례없는 인물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과거 민주당이 극복하지 못했던 당내 계파 이합집산 정치를 새 질서로 재편해 내지 못했다.

  • 김종현
  • 입력 2017.05.10 07:30
  • 수정 2017.05.10 07:31
ⓒ뉴스1

1.

대선후보의 인간과 역사에 대한 고민은,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의 시발점이자 답이다. 그 고민에 당사자성이 강화 될 수록 집권의지가 여물어진다. 그리고 고민의 깊이에 따라 정치적 행보가 결정된다.

정치인의 행보는 정치를 하게 된 동기, 집권의 이유, 집권 후의 미래를 유권자에게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다.

2.

안철수에겐 정치인 안철수를 설명할 수 있는 네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2012년 대선 때 일어난 안철수 바람이다. 그러나 그는 이때 그 고민의 결론이 무엇인지 내보여주지 못했다. 그가 말한 새정치는 답을 구하는 시대의 의문부호이지 결코 답이 아니었다.

3.

두 번째 설명의 기회는 새정치연합 창당 때 왔다. 그러나 창당 준비위를 발족한 후 불과 보름도 안 되어서 민주당과 합당을 했다. 준비위와 상의를 거치지 않은 안철수의 단독 결정이었다. 집단 내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건너 뛴 행동은, 그의 결정이 가치관에 따른 결정인지 정치공학에 따른 결정인지를 의심케 하는 첫 번째 신호였다.

새로 합당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세 번째 기회가 있었다. 안철수나 문재인이나 정당정치의 비민주적 폐해를 타파하기 위한 목적은 비슷했다. 그러나,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안철수는 정당의 체질을 개선해 수권능력을 보여주는 대신, 기존의 정당 기득세력과의 연합을 선택했다.

4.

그간 우리나라 정치의 근본적 문제점은 시민사회의 이익집단들이 거대 정당세력으로 커나가지 못한 역사에 있었다. 아래로부터의 결집이 아니기 때문에 중앙에서 공천권을 무기삼아 의원 줄세우기를 하여 계파권력을 유지했다. 이로 인해 정당 민주화가 어려웠고, 진흙탕 정치에 시민들이 피해를 보았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문재인은 정당 내 계파 기득세력들과 싸웠고, 안철수는 그 계파 기득세력의 저항을 자신의 세력화에 이용하는 공학적 선택을 했다. 새정치를 말하던 안철수의 고민이, 시대의 열망을 기존의 낡은 정치공학을 통해 풀겠다는 선언으로 귀결된 것이다.

5.

정치인이 공학적 선택으로 세력을 이루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정치집단이란 각자의 이익을 공동의 이익으로 변환시키는 장치인 만큼, 사사로운 비판의 지점들을 절대악으로 설정할 이유는 없다. 다 개선의 과정이다.

그러나 자신의 핵심 정치철학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행위는 정치인으로서의 가치관을 의심케 만든다. 실제로 정치인 안철수를 설명할 수 있는 네 번째 기회인 국민의당 창당 이후는 점입가경이 됐다.

6.

안철수가 국민의당을 창당한 것은 거대양당 체제를 깨트려야 한다는 시대요구를 현실화시켰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정치 판도와 정세를 파악하고 이를 가시적 성과로 만드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목적하는 가치관에 부합하는가에 있다.

국민의당 내에 있는 유력 정치인들은 과거 폐습이 만연하던 정당정치에 익숙한 이들이다. 안철수가 그들과 함께 새로운 정당 민주주의 실험을 시도하고 결과를 증명했다면 그는 우리 정치사에 유례없는 인물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과거 민주당이 극복하지 못했던 당내 계파 이합집산 정치를 새 질서로 재편해 내지 못했다.

이는 대선 기간 중 안 후보 캠프의 미숙한 기획능력과 대응, 정당 시스템이 후보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 등에서도 충분히 감지된다.

7.

개인적으론 안후보가 미래의 난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의 해결을 위해 마련한 큰 그림에 동의한다. 양당체제를 극복하고, 미래산업을 육성시키며, 교육제도를 혁신하겠다는 뜻에 공감한다.

가령 난 학제 개편의 성공적인 안착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제 개편이라는 주제 하나에는 교육의 내용, 미래의 정의, 사회의 변혁, 경제대책, 새로운 가치기준 제시, 인권향상 등이 몽땅 들어가게 된다. 하나의 사회현상에는 복합적 인과관계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엔 시대의 당사자인 인간 개개인이 있다.

그러나 안철수는 학제개편의 현실적 해법을 상세히 그리지 못함으로써, 거대한 비전을 수행하는 인간에 대한 사유가 깊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8.

정치가 있어야 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이 다양한 욕망을 갖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그의 공학적 해법이 가져온 성과에 비해 이 부분에선 뚜렷한 철학적 가치관이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충족시키는 행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설득력 떨어지는 행보의 자리를 메꾸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하면된다는 주장뿐이다. 같은 목표를 가졌지만, 행동과 결과로 하나씩 증명하던 문재인이 지나온 이벤트를 허겁지겁 뒤따라가기 바빴다.

9.

유력 정치인의 행보 마디마디는 곧 선언적 행위이다. 이는 또한 가치관의 피력이다. 안철수는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면서 실제 행위는 반대의 기묘함으로 설명되었다. 정리되지 않는 설명은 고민이 그만큼 깊고 단단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집권의지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구태정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가 집권해야 하는 이유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다.

국민의당 집권이 걱정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국민의당이 집권한다면 과거 수구보수의 욕망에 거침없던 구 새누리당과, 중도보수의 정체성을 잃고 계파 정치에 함몰돼 갈피를 못 잡던 구 민주당의 후진적 정치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았다.

문재인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로운 시스템 실험에 성공하여 체질을 개선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과거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정당들 간의 막막한 경쟁만을 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김종현 #정치 #대선 #선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