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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결코 성차별 아님)가?

아마도 80, 90년대,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그림을 표현의 자유와 풍자의 프레임으로만 보았을 여성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여성들에게 젠더질서의 변화가 정권교체만큼 중요한 현실이 된 것을 작가는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 여성비하를 자청하고 있는 시국에서 이런 그림이 가지는 풍자적 의미는 무엇일까? 오히려 대통령이 여성임을 부각시키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해온 여성들의 활동과 문제의식을 공격하는 혹은 무시하는 수준의 작품이 아닐까? 남성 작가나 국회의원이 여성들의 문제제기를 의식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세상은 끝나가고 있다.

  • 권인숙
  • 입력 2017.02.08 07:12
  • 수정 2018.02.09 14:12
ⓒ연합뉴스

'살다 살다 그것도 여자(결코 성차별 아님)가 저렇게 배째라 막가파 식으로 나오는 경우는 처음 본다.'

최순실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 중 두 번째로 추천순위가 높았던 내용인데 '여자(결코 성차별 아님)가'라는 부분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자가'라는 말은 쓰고 싶은데 성차별적 언어라고 공격받고 싶지는 않아 입이 간지러운 사람들의 현재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였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프로에서 세 살도 안 된 아이들의 자잘한 행동과 표정조차 '천상여자' '여자인데도' 혹은 '이래 봬도 상남자' 등의 자막을 끊임없이 깔며 여자, 남자로 구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문화이다.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박근혜, 최순실, 조윤선, 이화여대 교수 등이 부각되니 '여자가'라는 기준으로 평가하고 이야기할 지점이 얼마나 많을지! 오랫동안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나도 여성 정치인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더 부각되어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그들의 옷차림, 말투, 행동을 정치인 이전에 여자의 무엇으로 먼저 보고 한마디 하려다 고개를 흔들며 '이러면 안 되지'라고 마음을 수습하는 경우가 꽤 잦다. 워낙 정치하는 여성의 수가 적어 그녀들의 성은 도드라진다. 부정적인 의미로 덮싸여 있는 '여자가'와 여성을 공적 존재에 부적합해 보이게 만드는 '여성적 요소'에 주목하여 폄하함으로써 정치적 입장이 다른 불편함을 풀려는 마음도 쉽게 든다.

그래서 촛불집회나 탄핵 정국에 '여자가'와 관련한 무수한 폄하의 논리와 혐오적 비난의 시선이 크게 득세하지 못하는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물론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디제이디오시(DJ DOC)의 '수취인분명'이란 노래가 나는 그저 신나고 재미있었다. '미스박 세뇨리탕' 하는 부분도 별로 거슬리지 않아, 비판이 일었을 때 너무 경직되게 접근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발감도 들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만난 친구 딸이 강경하게 '여자임을 부정적으로 강조할 수밖에 없어서 절대 안 돼요'라고 주장하는 데 별 반박을 못 했다. 공격적인 말투와 단호함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단호함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으로는 처음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대로 올라오기 시작한 게 바로 2016년이다. 여성 정치인이나 공인을 평가하면서 '여성'에만 주목하거나 또는 비하하는 태도를 극복하기 위한 문화적 감수성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인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저지른 반헌법적 행위를 '여성의 사생활을 이해해 달라' '여자라서' 등 여성혐오와 비하 혹은 공인으로서의 여성의 부적합함을 명분으로 호도하려는 상황에서, '여자가'를 강조하면 안 된다는 원칙은 더 의미가 커 보인다.

촛불집회 초기 박 대통령의 정신건강을 풍자하며 만든 '박근혜를 병원으로'라는 슬로건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폄하할 수 있다며 비판받고 거부당할 때도 옳다 싶었다. 소수자 혐오의 가능성에 민감해지고 합당한 원칙을 대중적으로 세울 수 있는 집단 경험을 이번에 꼭 했으면 좋겠기에 반가웠다.

'더러운 잠'에 관련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작가의 시대착오적인 감수성과 표창원 의원의 정치적으로 예민하지 못함에 솔직히 짜증이 났었다. 논란이 일어날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여성 직원 셀프감금조차 성폭력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던 박 대통령 측이 이 일에 얼마나 날뛸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혐오의 심층적 현실에 공감하며 여성 문제에 민감해진 수많은 여성이 존재함을 의식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아마도 80, 90년대,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그림을 표현의 자유와 풍자의 프레임으로만 보았을 여성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여성들에게 젠더질서의 변화가 정권교체만큼 중요한 현실이 된 것을 작가는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 여성비하를 자청하고 있는 시국에서 이런 그림이 가지는 풍자적 의미는 무엇일까? 오히려 대통령이 여성임을 부각시키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해온 여성들의 활동과 문제의식을 공격하는 혹은 무시하는 수준의 작품이 아닐까?

남성 작가나 국회의원이 여성들의 문제제기를 의식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세상은 끝나가고 있다. '여자(결코 성차별 아님)가'라고 말로써 억지로 방어하는 시대도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논란이 더 잦아지길 기대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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