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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가스 검침원'의 하루는 험난하다(사진 2)

지난 9일 오전 11시, 인왕산 자락 서울 종로구 홍지동 주택가. 아스팔트 비탈길과 계단이 지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33.6도. 아침 7시30분부터 홍지동 도시가스 검침에 나선 서울도시가스 강북5고객센터 검침원 장혜경(45)씨 얼굴은 벌써 붉게 상기돼 있었다. “너무 덥죠? 오후 넘어가면 어질어질하고 토할 것 같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한겨레>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장씨를 동행 취재했다.

입사 3년차의 장씨는 오래된 주택가 골목을 능숙하게 헤집고 다녔지만, 비탈길을 오를 땐 숨을 헐떡였고 얼굴에선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장씨는 평창동·홍지동·신영동의 주택가와 상가 등 모두 2400여곳의 도시가스 검침과 안전점검, 고지서 투입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검침은 각 가정·상가의 계량기 숫자를 확인해 휴대용 단말기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가스계량기가 육안으로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곳에 달려 있는 집들이 많아 아슬아슬한 장면도 자주 연출됐다. 오래된 다세대주택에서는 복도 창문을 넘어가 가스 배관에 매달리거나 단독주택 담장에 매달려야 했다. 장씨는 “겨울철엔 눈길에 미끄러지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무르팍이 까진 적도 많다”며 “일하다 다쳐도 개인 비용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계량기가 집 안에 있으면 일이 더 많아진다. 일과시간엔 집에 없는 사람이 많아 검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날도 두시간 동안 돌아다닌 집 가운데 세 집에 사람이 없어 메모지를 문 밖에 붙여놓고 돌아서야 했다. 장씨는 “고객님들이 메모지 보고 바로 연락해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밤중에 연락 올 때도 있어 업무시간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결국 다시 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아파트는 주민이 직접 가스사용량을 적어놓게도 하지만, 단독주택가는 계량기 위치 확인이 쉽지 않아 그렇게 하기 어렵다.

1년에 두번(6월말, 12월말)인 안전점검 시즌에는 “속이 타들어 간다”. 주민이 있는 시간에 가구를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씨는 “집 안에 들어갔는데 속옷 차림으로 맞는 남자 고객들도 있다”며 “그런 거 신경쓰다 보면 일 못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불쾌하고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장씨가 이날 5시간 반 동안 750가구의 검침을 하면서 걸은 횟수를 스마트폰 만보기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해보니 1만보였다. 비탈이 더 심하고 구조가 복잡한 평창동의 경우 8시간 동안 3만5천보를 걷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운동화가 두어달 만에 금방 닳아버린다. 장씨는 “한 사람당 맡은 가구가 많은데다 검침마감일(한달에 세번) 등 정해진 일정이 있어 원하는 날짜에 휴가를 쓰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검침원들은 하루에 일정 시간을 노동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맡은 구역의 업무를 끝내는 조건으로 월급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하루 7~8시간씩 일하지만, 방문하는 지역이나 재방문 횟수 등에 따라 더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한달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30만원 남짓이다. 1년 단위 계약직이고, 근속에 따른 임금 인상도 없다. 주로 40~50대 중년 여성들이 많다.

서울시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회사는 서울도시가스, 예스코 등 민간기업 5곳이다. 이 공급 회사들은 검침·점검 등의 고객센터 업무를 별도의 사업자 71곳에 위탁을 주는데, 이 고객센터에 지급하는 지급수수료는 서울시가 책정한다. 검침원들의 노동실태를 연구 중인 이유미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는 검침·점검 건당 소요시간을 계산해 인력과 인건비를 산정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재방문에 소요되는 시간이나 고지서 분류 작업 등 재택근무 시간은 빠져 있다”며 “적정 인력과 인건비 산정·지급 내역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씨가 속해 있는 강북5고객센터 소속 노동자 20여명은 지난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했다. 장씨는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고 싶다”며 “회사와 교섭을 통해 인력도 충원하고 휴가도 원할 때 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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