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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돌'을 통해 '외로움'을 탐구하는 어느 사진작가의 이야기(사진)

  • 강병진
  • 입력 2016.07.05 06:13
  • 수정 2024.04.11 11:01

‘섹스돌’은 이제 단지 ‘섹스를 위한 도구’로만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어떤 이에게는 “비정한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많은 이들에게는 점점 사람과 똑같아지는 기술을 목격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집약체이기도 하다. 또 어딘가에서는 본래 용도와 달리 무시무시한 허수아비로 쓰이거나, 사람으로 오인받아 경찰의 구조를 받는 애꿎은 운명에 놓여있기도 하다. ‘섹스돌’은 섹스뿐만 아니라, 감정과 기술 등의 차원에서도 인간에게 묘한 감상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물론 ‘인간’과 닮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인 ‘June Korea’ 또한 ‘섹스돌’에게서 감정을 느낀 사람이다. 그는 지난 2014년부터 섹스돌을 통해 “존재하는 인간의 외로움과 존재하지 않는 영원함”을 주제로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제목은 ‘Still Lives: Eva’다. (*‘June Korea’의 허락을 얻어 그의 사진들을 여기에 싣는다.)

‘June Korea’는 지난 2001년부터 인형을 대상으로 한 사진을 주로 찍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느끼던 ‘외로움’ 때문에 인형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란 생각을 계속 했어요. 살아있는 이들은 영원할 수 없겠지만, 인형들은 아무데도 가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내가 한 인형에게 새로운 생명과 정체성을 선물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가 처음부터 ‘섹스돌’을 대상으로 했던 건 아니었다.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1천원짜리 인형부터 시작해서 버려진 인형, 선물 받은 인형, 그리고 마리오네뜨, 구체관절 인형들을 찍었어요.” (그의 이전 사진들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후 “관계, 외로움, 영원함”이라는 단어들을 바탕으로 다음 작업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한 그는 “가장 사람에 가깝게 디자인 된 인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마네킹이나 자동차 충격 테스트에 쓰는 더미를 찾아봤어요. 괜찮은 모델들이 있었지만 제가 생각한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후 ‘섹스돌’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중국 제조사들이 만든 모델을 찾아보기도 하다가 2014년에 저의 구상에 가장 가까운 인형을 일본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섹스돌’은 페덱스 박스에 담겨 ‘June Korea’를 만났다. 그는 섹스돌에게 ‘에바’(EVA)라는 이름을 붙였다. “Eternity를 상징하는 Forever와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여성 Eve를 합친 이름이에요.” 에바는 단순히 제조사가 내놓은 모델이 아니었다. “얼굴을 비롯한 신체의 모든 부위를 주문 제작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사이즈를 선택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일단 저는 인형이 사진에 등장했을때, 보는 이들의 시선이 성적인 부분에 집중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여자 동료의 도움을 받아 에바의 신체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조명과 구도에 따라 가장 다양한 표정을 보여줄 수 있고, 저와 함께 사진에 등장했을 때 가장 어울릴 수 있는 얼굴을 선택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에바가 택배박스에서 나오는 사진으로 시작한다. 에바와 남자(June Korea가 직접 등장한다)는 함께 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산책을 한다. 하지만 이 사진들이 단지 섹스돌과 일상을 함께하는 남자의 판타지를 그리는 건 아니다. 사진 속에서는 남자를 바라보는 에바의 감정도 표현되어 있다. 남자의 감정과 달리 에바는 종종 자신만의 감상에 빠져있는 듯 보인다.

“대부분의 장면은 제 기억과 경험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맺어온 사람들과의 있었던 일들, 그때의 감정들을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사진들은 결국 제가 누구인지를 반영하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저를 담은) 이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감정과 관계, 고양이와 강아지, 인공지능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외로운 사람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June Korea’는 구글의 기술이 발전해 에바에게 ‘알파고’가 이식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처럼 행동하는 개체들과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예술을 도구로 사용하는 저를 포함한 이들은 그 새로운 관계 안에서 생겨나는 우리의 감정과 도덕,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또 그것들을 그들만의 언어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till Lives: Eva’는 이 사진들로 끝난 프로젝트가 아니다. “평생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갈수록 사진에 담기는 에바와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약간의 상상은 하고 있다.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늙을 것이고, Eva는 그렇지 않을거예요. 그 과정에서 오는 괴리감과 사무치는 소외감, 외로움,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이 앞으로 이야기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궁극적인 결말은 죽음이나, 어떤 이유의 헤어짐, 혹은 즐거운 결말이 될 수도 있을까요? 마지막 한 장의 그림을 그려놓고 시작한 작업이 아니기에 일단 지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예측되는 삶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June Korea’의 또 다른 작품은 그의 홈페이지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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