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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워싱턴의 태극기와 유승준 : 스티브 유는 극우 개신교 선동자들의 언설에서 주로 나타나는 표현을 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우파 한국계 미국인들의 세계관이다.

스티브유(유승준) 유튜브
스티브유(유승준) 유튜브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의 군중들 사이에서 태극기가 펄럭였다. 많은 한국인들은 “태극기 부대가 미국까지 진출했는가?” 하고 황당해했다. 나는 그 당혹스러운 광경을 보면서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얼마 전 병역기피 방지를 위한 ‘공정 병역법’의 발의에 반발해 ‘소신 발언’ 영상을 올린 유승준이다. 현 정부가 공산주의 정권이라거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보며 통곡했다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된 그 영상에서, 유승준은 “미국 대선은 100% 부정 선거로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횡설수설과 울분으로 가득 찬 그의 발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우파 한국계 미국인들의 세계관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본다.

수전 제이코비는 <반지성주의 시대>(박광호 옮김, 오월의봄, 2020)에서 반지성주의 문화를 상업적,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 트럼프 정권이 성립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진단하였다. 흔히 트럼프 지지자의 중핵을 ‘백인 저소득 남성 노동자’라고 하지만, 그 저변에는 종교 근본주의, 유사 과학, 음모론 등을 믿는 훨씬 광범위한 대중이 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반이민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는 트럼프를 지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종교가 끼면 얘기가 달라진다. 트럼프는 임신중단, 동성혼 등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슈들에서 오바마 시절의 진보적인 정책들을 뒤집어 왔다. 트럼프 자신은 종교적인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그를 지지하는 이유다.

스티브유(유승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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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지역의 많은 한국계 이주민 공동체는 개신교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유승준의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종교적 발언들은 그가 성장하고 활동한 한인교회에서의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현실에 대한 그의 이미지는 한국 보수 개신교가 내세워온 반공주의 신화의 형태로 왜곡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현재의 한국은 “교회에 대한 탄압이 들어와 예배드리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집회 제한을 그런 식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또 대한민국은 “선교사들의 피와 눈물로 세워진 나라”이며, “자유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는 세력들”인 현 정권에 의해 붕괴 직전에 있다고도 한다. 극우 개신교 선동자들의 언설에서 주로 나타나는 이런 표현들은 20년 가까이 조국 땅을 밟지 못한 그의 울분이 만든 환상 속에서 현실과 혼동되고 있다. 

스티브유(유승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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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승준에 대한 영구 입국 금지가 초법적이고 불합리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번 발언으로 정나미가 떨어지긴 했지만, 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만약 유승준이 병역을 신성시하는 국가주의 문화를 문제시하였다면 나는 기꺼이 그를 지지했을 것이다. 국가가 주목도가 높은 연예인인 그에게 그토록 가혹한 처사를 유지한 진짜 이유는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가 받아들이기에 좀 더 편리한 환상을 택했다. 그가 대법원 승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것은 현재 한국의 정권을 잡고 있는 이들이 기독교에 적대적인 공산주의자들이기 때문이라는 믿음이다.

그가 이런 인식을 갖게 된 것은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되어 현실에 대해 왜곡된 정보만을 접해서가 아니다.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런 환상을 믿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공주의와 종교 근본주의가 결합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반공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이던 시절이 지나가자 그것은 정치적 행동주의로 전환되고 있다. 계기가 마련되기만 한다면, 이는 다음 단계인 폭력적 테러리즘의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그 계기란 기본적으로 유승준의 경우와 같다. 개개인이 경험하는 불만과 울분의 구조적 원인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지적 노력과 비판적 사유가 필요하다. 종교적 음모론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이 미워할 수 있는 악의 세력을 제시해줌으로써 그런 수고를 덜어준다. 내 고통의 ‘진짜’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반지성주의의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한승훈ㅣ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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