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0년 10월 03일 18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10월 03일 18시 07분 KST

유모차는 유아차로 바꿔 써야 하는 이유 :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차별적 표현들

주로 장애를 빗대 부정적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이 많다.

JTBC 화면 갈무리
2017년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가 JTBC <말하는대로>에 출연해 한국에서 겪은 인종차별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휠체어 탔는데도 예쁘네!” 누군가는 칭찬이라고 한 말일지 모르나, 중학교 2학년 유지민에겐 불쾌한 표현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지민은 외출할 때마다 굳이 화장하고, 어른스러운 옷을 챙겨 입는다. 나이와 상관없이 장애인이라면 무조건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 사람으로 대하거나 얕잡아보기 때문이다. 변호사 박한희(35)는 지민과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트랜스젠더(성전환자)같이 생기지 않았네요!”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보통 연예인 하리수를 떠올리지만, 실제 당사자들의 외모는 다양하다.

장애와 성적 지향에 따른 고정관념에 맞춰, 개인의 특성까지 ‘이럴 것이다’ 손쉽게 재단된다. 물리적 폭력과 욕설처럼 강한 강도는 아니지만 이런 표현에 자주 맞닥뜨리는 당사자들은 괴롭다.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고 만연한 차별을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아주 작은 공격)이라고 한다. 무심코 하는 말 속에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미세 차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도 한때 즐겨썼던 ‘결정장애’

한국 사회엔 장애를 빗대 부정적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이 유독 많다. 차별적 표현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을 빚은 ‘절름발이’가 그중 하나다. 주로 조화롭지 못하거나 부족한 양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정세균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이것은 ‘절름발이 총리’이고….”(1월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주호영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의원)

“경제부총리가 금융부문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7월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애인 인권단체는 절름발이, 눈뜬장님, 귀머거리, 불구자 등의 표현 사용은 당사자를 비하하고 차별하는 행위라며 개선을 촉구해왔다. 2014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인에 의한 사적 영역에서의 장애인 비하 용어 및 속담 사용을 무조건 차별적 표현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면서도 “공적 영역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언론 보도에서 장애인 비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불특정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므로 이러한 표현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실에서 ‘장애’는 부족함·열등함의 의미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결정장애’처럼 어떤 단어에 장애를 붙이는 표현이 그렇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다문화학)는 2019년 출간한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김 교수가 혐오표현 관련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썼는데, 토론회가 끝난 뒤 한 참가자가 조용히 물었다.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결정장애’는 너무 많이 고민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꼬집는 간명한 말이라고 생각해, 자신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아 수없이 사용하던 말이었는데 이날 비로소 이 표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많은 장애인이 참석해서 듣고 있던 자리에서 내가 ‘장애’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의식조차 못했다.”

한겨레
*국가인권위원회 ,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서울시 자료 참고



이주민에게 “한국인 다 됐다”는 말은 모욕일수도

언뜻 칭찬이나 격려인 것 같지만 당사자가 듣기엔 그렇지 않은 표현이 많다. 김지혜 교수가 발견한 두 표현 중 하나는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장애인으로 사는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이 전제됐다. “설령 장애인이 사회적 조건으로 생활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다. 이건 희망을 가져야 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선량한 차별주의자> 10쪽)

이주민들에겐 “한국인 다 되었네요”라는 말이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한국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는 당신을 온전히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린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최근 경기도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이 얼굴에 검은색을 칠하고 찍은 졸업사진에 대해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이다.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하느냐”라고 비판했다. 개그 프로그램에선 오랫동안 흑인 분장을 웃음을 유도하는 소재로 써왔다. 19세기 미국에서 있었던 ‘블랙페이스’가 그 시작이다.

블랙페이스는 얼굴을 검게 칠하는 등 흑인 분장을 한 배우가 노래하고 춤추는 극장 공연이다. 백인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흑인을 비하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을 주로 다뤘다. 1950년대 민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블랙페이스는 인종차별이라는 비판과 함께 금기시됐다. 피부색을 유독 강조한 ‘흑형’ ‘흑진주’ 같은 표현도 흑인 당사자에겐 차별적 언어다.

어떤 발언이나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엔 보통 ‘그렇게 할 의도는 없었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방어적 태도가 뒤따른다. 그러나 이 방어망을 거둬야 일상의 차별을 감지해내는 게 가능하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차별이 보이지만, 차별하는 사람에겐 차별이 쉽사리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민의 어머니인 홍윤희(47) 장애인이동권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은 “누군가를 비하하고 차별하는 표현이 나왔을 때 당사자가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고 ‘아 그렇군요, 고칠게요’란 환경만 조성돼도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그러나 위계 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기분 나빠하고 버릇없다고 비난한다”고 말했다.

 

나도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

9월2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열린 ‘주한 외국대사관 초청 차별금지법 인권 콘퍼런스’에 참여한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대사도 평등권 실현을 위해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뿐 아니라 개인 스스로 마음을 성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베를린에서 일할 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흑인이 있더군요. 그분에게 ‘길을 잃었다면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는데, ‘저 이 건물에서 일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저는 인종차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제 마음속에 다른 피부색, 다른 성적 지향에 대해 (편견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 역시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의심이,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