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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성폭행 피해자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다

“당신이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는 걸 나는 믿습니다.” 젊은 여성이 형사가 했던 말을 내게 전해 주었다. 그녀가 자신이 지난 주말에 겪었던 잔혹한 성폭행 이야기를 믿느냐고 묻자 그 형사가 했던 대답이었다.

지역 강간 위기 핫라인 카운셀러인 나는 성 폭력을 신고하려는 개인의 의지를 꺾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게 아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앞뒤가 맞지 않고, 몇 군데에서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형사는 그녀가 일어나지 않았던 범죄를 만들어 내고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트라우마의 신경과학을 떠올리게 된다. 트라우마에 대한 뇌의 반응은 복잡하고, 트라우마, 특히 성 폭력에 반응하는 인간의 행동은 우리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최근의 연구에서 중요한 인사이트들이 발견된다.

성 폭력 허위 신고 비율은 사실 낮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7%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비교를 위해 덧붙이자면, 보험 사기 비율보다 상당히 낮다.) 게다가, 연구에 따르면 성 폭력은 사실은 신고가 실제보다 덜 되고 있다. 경찰 등 기관에 신고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얼마나 잘 아는 사이인지, 술을 마신 상태였는지 등 피해자가 신고할지 말지를 가르는 여러 요소가 있다는 것이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낮은 허위 신고율과 신고를 하지 않는 비율을 종합해 생각해 볼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 폭력과 실제 성 폭력 사이에는 명백한 모순이 있음이 드러난다. 매체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피해자’ – 밤에 주차장에서 칼로 위협받는 젊고 맨정신인 여성 – 와 현실 세계의 피해자들은 다르다. 실제 피해자들 중 거의 4분의 3 가량이 가해자를 알고(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90%까지 올라간다) 총, 칼 등 무기로 공격을 받은 경우는 7%에 불과하다.

개인의 성 폭력 경험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가슴 아플 정도로 흔하다. 선거로 당선된 국회의원이 고등학생의 성 폭력 신고를 회의적으로 보며 ‘어떤 여자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강간당한다’고 공식 발언을 한 예도 있다. 보다 최근 어떤 스포츠 영웅의 팬들은 그에게 강간당했다는 한 여성의 말을 믿지 않고있다, 그녀는 관심을 끌려고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다 라고 단언한 적이 있다.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는 경우가 왜 이렇게 많을까? 이러한 불신의 상당 부분은 피해자들의 행동 패턴에 기인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피해자들의 행동 패턴은 굉장히 다르고, 평균적인 형사라면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될 행동도 자주 보인다. 이런 패턴을 이해하려면 성 폭력을 당할 때 경험하는 것과 같은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뇌와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트라우마, 특히 성 폭력을 경험하며 겪는 트라우마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다루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에서는 ‘긴장성 무운동’이란 말을 쓴다. 스스로를 무력화시키는 것, 혹은 강제로 제지 당하지 않는데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긴장성 무운동은 인간 아닌 동물의 연구에서 오래 전부터 다루었던 현상이다. 동물이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얼어붙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인간도 스트레스에 이런 반응을 한다는 것이 최근 실험실에서 관찰되었다. 이 발견은 성 폭력 피해자 상당수가 무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느꼈다고 반응한 것을 설명해준다.

게다가 호르몬이 크게 변화하게 되는데, 통증 관리와 관련이 있는 옥시토신과 아편제, 보통 ‘싸우거나 도망치거나’와 연관되는 아드레날린, 코티솔이 분비되어 뇌의 여러 부분간의 기능 연결이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 상황은 기억 형성에 중요한 경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겪는 중의 기억을 제대로 부호화하고 저장하지 못할 수 있게 된다.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트라우마 상황 자체는 기억하지만(체내에 알코올이나 마약이 없었을 경우), 이런 기억들은 파편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고, 서사적으로 앞뒤가 맞는 이야기로 짜맞추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성 폭력을 겪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참전 군인 같은 다른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도 비슷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알려진 이러한 증상의 패턴은 감정 마비, 트라우마 상황의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 플래시백, 각성과민(주위 환경을 강하게 의식하거나 늘 ‘경계’를 취하고 있는 것) 등이 있다.

연구에 의하면 성 폭력을 겪은 사람들 다수는 사건 직후부터 이주일 동안 PTSD 증상 중 최소 일부를 보인다고 한다. 사건 9개월 후에도 피해자 30%는 이런 증상 패턴을 보였다. 종합하면, 성 폭력 피해자 중 거의 3분의 1이 사건 후 어느 시점에서 PTSD를 겪는다고 추정된다.

트라우마에 대한 각 개인의 반응은 사건 이전의 삶의 경험과 건강 요인에 따라 굉장히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 조사 결과 해석이 복잡해진다. 피해자가 부정적으로 인지하는 타인들의 반응, 효과적이지 못한 대처 전략 등 인지 변수들이 PTSD의 발생 여부와 심각도에 큰 영향이 있다고 밝혀졌다. 다른 연구에서는 응급실에서 측정된 코티솔 레벨이 낮을수록 PTSD 발생 위험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즉 부적응적 성격과 보살핌이 트라우마에 대한 개인의 반응에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건강에 관련된 많은 질문들이 그렇듯, 원인을 콕 집어내기는 어렵다. 정신 질환과 같은 사건 전의 신경생물학적, 심리사회적 위험 요인들이 PTSD 발달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PTSD가 다른 건강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다. 피해자 연구에서 절대적인 원칙은 없다. 성 폭력을 겪는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러므로,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의 이야기를 믿지 못했던 형사는 그녀 이야기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극단인 트라우마에 대한 뇌의 반응이 아니라 거짓말이라고 잘못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들이 성 폭력 피해자가 수면 사이클을 최소 두 번(일반적으로 48시간) 거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면담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면담은 심문 형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해야 한다. 연구 결과를 반영한 수사 진행은 성 폭력 피해자들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신고와 처벌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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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린 기글러는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학습과 기억에 대한 인지 신경과학 박사 과정 중이다. 엘리자베스 시 주립 대학 여성 센터 디렉터이다.

이 글은 인간 두뇌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다루는 허프포스트 사이언스 시리즈의 일부이다.

*본 기사는 허핑턴포스트 US의 'How Brain Science Can Help Explain Discrepancies in a Sexual Assault Survivor's Story'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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