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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보여주기식 단속" 학교 내 불법카메라 '불시점검'은 진짜 '불시'가 아니었다

사실상 ‘예고점검’이자 ‘셀프점검’이 이뤄졌다.

기사 내용과는 무관한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는 무관한 자료사진 ⓒ게티/뉴스1

“97개 초·중·고교 모두에 교육지원청이 나가서 점검을 실시합니다. ○○일에.”

지난달 30일 안양과천교육지원청 관계자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난 29일 경기도 ㄱ초등학교 교장이 여성 교사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관할 교육지원청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관내 모든 학교에서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단속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점검 일정까지 여과없이 공개됐다는 점이다. 이 관계자는 단속 시행일을 특정했고, 이 발언은 그대로 전파를 탔다. 방송기사 밑에는 “무슨 단속을 광고하고 하냐”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단속”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현재 해당 발언은 기사에서 삭제된 상태다.

이 사태는 그동안 학교에서 이뤄졌던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점검의 ‘구멍’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장 교사들은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점검 일정이 미리 공유된 채 단속이 이뤄져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학교 내 불법촬영 범죄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지난 2018년 각 교육지원청에 불법촬영 카메라 탐지 장비 구입 예산을 지원하고, 1년에 최소 2회 각 학교를 대상으로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점검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10월 이를 더 구체화해 △학교장이 △교육지원청에서 탐지 장비를 대여하거나 다른 공공기관 협조를 받아 △연 2회 이상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불시점검’한 후 결과를 보고하라고 각 학교에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들은 ‘불시점검’이 아니라 사실상 ‘예고점검’이자 ‘셀프점검’이 이뤄졌다고 입을 모은다. 홍정윤 경기교사노조 사무총장은 1일 <한겨레>에 “현재 불법카메라 점검은 교육지원청에서 장비를 빌려와 학교 내부인이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장비를 빌리려면 날짜 조율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공문이 오가면서 점검 일정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일도 잦다. 간혹 시청에서 나와서 점검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날짜를 조율하다보면 점검 일정이 알려지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손지은 전교조 여성부위원장도 “일정이 예고된 상태에서 학교가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 단속이 (불법촬영 범죄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저 봉합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런 안이한 방식 탓에 실제 전국 교육청별 점검을 통해 적발된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건수는 여태 단 한 건도 없다. 반면 전국의 학교에서 발생한 불법촬영 범죄 건수는 △2016년 86건 △2017년 115건 △2018년 173건 △2019년 175건(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경찰청)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불법촬영 범죄 건수는 110건으로 소폭 줄었지만, 이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많아진 영향으로 보인다.

현장에서는 불법촬영 카메라 점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외부기관이 점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 사무총장은 “외부업체에 ‘위탁’하는 형식이 아니라, 경찰이든 시청이든 신뢰할만한 기관이 개입해 함께 점검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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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학교 #교육지원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