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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낸 것 없다" 집행부 불신·전공의 내분에 의료현장 정상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전협 지도부는 지난 7일 총사퇴했다.

6일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국시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6일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국시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해 18일째 ‘집단휴진’을 이어온 전공의들이 업무 복귀 여부를 놓고 사분오열하면서 의료계 정상화가 분수령을 맞았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일부 전공의들이 집단이익을 요구하며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는 ‘벼랑 끝 전술’을 펴면서 환자들의 피해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그동안 전공의들은 일관되게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정부·여당과의 합의 국면마다 중재안을 걷어차면서 사태 수습을 지연시켜왔다. ​7일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부터 업무 복귀를 하겠다고 밝혔으나, 전공의 내부 분열로 당장 8일부터 의료현장이 완전히 정상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대 8600명이 동시접속한 대전협 온라인 간담회에서는 댓글창을 통해 “얻어낸 것이 없다” “의사 국가고시를 포기한 본과 4학년 선생님들을 지켜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는 전공의·의대생들이 적지 않았다. ‘집단휴진’의 명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의료계 내부는 상호 불신만 격화하는 모습이다.

대표성을 잃은 비대위, 단결력을 상실한 전공의 개개인의 목소리가 표출되면서 결국 박지현 비대위는 이날 간담회를 끝으로 총사퇴를 선언했다. ​전공의들의 집단휴진 ‘유지’ 또는 ‘종료’를 이끌 구심점도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브레이크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전공의·의대생들의 강경 기조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공의들은 표면적으론 지난 4일 대전협의 상위 기관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정부·여당 간 의료정책 합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배제됐다며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버티기’로 일관하며 최종적으로 의료계 요구 다수를 관철했던 사례와 닮은꼴이다. 정부 정책 철회를 외치는 의사들의 반발→전공의들의 집단휴진 가세→의료 공백 심화→정부의 정책 원점 재논의 약속이라는 수순은 20년 전 의약분업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또 의료법에 명시돼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 지방자치단체장의 ‘업무개시명령’이 실제 법적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설령 집단행동으로 의사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최대 3년이 경과하면 재교부가 가능하다. 지난해 기준 최근 5년간 의사 면허 재교부율은 97%였다. 재교부 신청에 대한 별도의 심의절차 또한 없다.

의대생들이 전날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한 것 또한 면허 취득이 1년 늦춰지긴 하나, 군의관·공중보건의 등 내년도 의료인력 수급 문제가 불거지면 정부가 아쉬워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한 수도권 의대에 재학 중인 ㄱ씨는 “단체행동에 따르지 않고 개별 행동을 하면 구제받지 못하는 동료가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배 좀 튕겨도 교수·병원이 나서 시험 볼 여건을 만들어줄 거란 믿음도 강하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부 집단의 단체행동이 결과적으론 업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만큼 ‘사용자’인 병원으로부터의 복귀 압박이 세지 않은데다, 의대 교수들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는 점이 집단행동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가진 진료권이 ‘독점적 권한’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강경 기조를 고집하는 악순환이 수십년째 반복되는 행태를 띤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민간이 중심이 된 의료체계에서 이들은 의사 증원을 경쟁자 확대로만 여기는 비뚤어진 시각을 갖고 있다”며 “경제력에 기반한 특권 의식, 일반 국민과의 정서적 괴리 등이 의사 집단의 비이성적인 행동을 키운 것”이라고 짚었다.

도제식 교육, 의대생-전공의-전임의-의대 교수까지 연결된 수직적 업계 분위기는 그간 ‘의사 집단’의 응집력을 키웠다. 이에 기반해 지금껏 단결해온 전공의들이 이번 ‘집단휴진 지속 여부’를 놓고 첨예하게 입장이 엇갈리게 된 것은 의료계-정부 협상 국면이 복잡하게 굴러가며 의사 개인의 이해관계와 그에 따른 손익계산서도 달라진 까닭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진료실, 수술실에서 최종 결정자가 되는 교육을 받아왔기에 주장이 강하다. 의료계 안에 거버넌스가 없고 학회와 산하단체만 수십개여서 논의 과정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 다들 한마디씩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누구든지 갈아 치울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공석이 된 비대위원장 자리엔 이제 누가 앉더라도 단일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와 의사단체 간 협상 과정을 잘 아는 한 정부 관계자는 “대전협의 새 지도부가 누가 되든 협상 상대방으로서 신뢰를 얻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협상 뒤에 협의 결과가 뒤집히거나 협상 책임자가 불신임되는 조직과 어떻게 누가 협상을 할 수 있겠나”라고 우려했다.

현장에선 여전히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형병원 진료의 중요 임무를 맡았던 전공의들이 당장 현장으로 복귀한다고 해도 실제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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