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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캐내 성적 이미지 만들고 사칭하는데…20대 여성 80%가 당한 '온라인 스토킹' 처벌할 법이 없다

독립된 '온라인 스토킹' 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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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grinvalds via Getty Images/iStockphoto

 

1) “제 사진을 조건만남 사이트에 유포하겠다고 저를 협박했어요. 그 사람은 제 친언니에게까지도 SNS로 계속 메시지를 보내며 협박을 이어갔고요.”

2) “확산의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죠. 오프라인상의 스토킹은 일단은 가해자랑 저랑 임시방편으로 분리가 되기는 되거든요. 근데 온라인상으로는 그게 안돼요. 애초에 성립이 안 돼요. 온라인상에서 피해가 발생한다는 건 내가 어떤 공간에 있는지를 구분하는 거 자체가 무색해지는 일이니까요.”

3) “가해자와 같은 학교를 다녔으니까 동네가 겹쳐서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어떤 때는 이미 구했던 알바도 결국에는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4) “아예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어요. 누가 가해자인지도 애초에 알 수 없었고…. 저도, 부모님도, 제 주변 사람들도 온라인 스토킹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법적으로 대응한다거나 신고를 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죠.”

20대 여성들이 겪었다는 온라인 스토킹 피해 사례는 핍진했고, 표현은 절박했다. 피해 유형은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캐내거나 이상한 글과 사진을 전송하는 가장 흔한 것부터 피해자 사칭 등 심각한 범죄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었다. 오프라인 스토킹과 달리 가해자가 누구인지 특정하지도 못한 채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다거나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주변과 자신을 연결해주던 온라인 활동을 끊어야 했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이사와 이직을 고민해야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삶 모두가 위협받게 된 것이다.

법안 발의 22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토킹처벌법 공포안을 의결하며 서울 노원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피살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오늘 공포된 법률이 충분히 스토킹 대책을 담고 있는지 추가로 점검해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 지시가 있기 전부터 여성계에선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스토킹은 ‘오프라인’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에스엔에스(SNS)나 메신저 등에서 이뤄지는 온라인 스토킹은 반영구적으로 기록이 남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피해자를 따라다니며 상처를 남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온라인 스토킹이 디지털 성범죄나 오프라인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조 범죄’라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소장 김은주)는 지난달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의뢰로 <온라인 스토킹의 실태 및 대응 방안> 보고서를 썼다. 올해 1~2월 20대 여성 90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스토킹에 대한 인식과 피해 실태 등에 대한 심층 조사를 실시한 결과물이다. 오는 9월 시행되는 스토킹처벌법은 원치 않는 글과 이미지를 전송하는 행위 정도만 온라인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번 대규모 실태 조사에서 확인된 가해 유형은 훨씬 다양하고 중첩적이었다. 연구자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연쇄적 범죄 사슬을 끊기 위한 별도의 온라인 스토킹 처벌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20대 여성 10명 중 8명 “온라인 스토킹 당해봤다”

“제 얼굴 사진이 단톡방에 유포됐고 거기에서 성희롱이 난무했는데, 그때 저는 중학생이라 어려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만 하라고 말은 했었지만 거기에서 뭐라고 더 하면 제 사진을 어딘가에 더 올릴까봐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어요.”

 

온라인 스토킹 피해 실태 조사 결과, 20대 여성 응답자 903명 중 715명(79.2%)이 온라인 스토킹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은 대부분 스토킹처벌법 테두리를 벗어난 것들이었다. △개인정보를 알아내 저장하기(56.8%) △사생활 캐내기(56.4%) △원치 않는 글·이미지 전송하기(54%) 등의 온라인 스토킹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 알 수 없는 이들이 에스엔에스 계정이나 메신저 프로필 등을 통해 개인정보를 캐내고, 원치 않는 글과 이미지를 보내는 일이 그만큼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특히 △개인정보를 이용해 당사자 사칭(18.1%) △다른 범죄에 개인정보 이용(14.6%) △개인정보를 유포해 제삼자 범행 부추김(7.5%) 피해 사례에 주목했다. “온라인 스토킹이 다른 범죄의 연결고리로 작동해 피해자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부가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발생 빈도와 상관없이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온라인 스토킹 피해 경험
온라인 스토킹 피해 경험 ⓒ한겨레

실제로 온라인 스토킹이 단지 일회성 가해로 끝나지 않고 심각한 다른 범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다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실태 조사에서 확인됐다. 20대 여성 응답자의 13.9%가 온라인 스토킹이 다른 온·오프라인 가해로 이어졌다고 답했다. 심층면접(FGI)에 응한 피해자들은 온라인 스토킹 가해자에 의해 자신의 얼굴사진을 유포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같은 학교 학생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 집 주소, 학번, 실명, 연락처 등을 올린 적이 있었어요. 그걸 보고 알지 못하는 다른 학교 남학생들이 저를 스토킹하며 쫓아온 적이 있고, 집 근처에 낙서를 하거나 집으로 다섯 번이나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제 근황이 추가되고, 익명의 이용자들이 저에 대해 성희롱을 하거나 외모 평가를 했어요.”

 

심층면접 응답자들은 자신의 사진이 이름·나이·거주지 등 개인정보와 함께 온라인에 게시된 경우가 있었고, 이런 사진과 개인정보가 성적 이미지로 재가공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스토킹으로 캐낸 개인정보가 디지털 공간에 일단 유포되면 피해 범위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확대됐다. 연구자들은 “온라인 스토킹은 디지털 성범죄처럼 1회의 가해 행위만으로도 그 피해는 반영구적이 된다는 점이 매우 위협적”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의 가해자 특정 어려워…피해자의 8.8%만 수사기관 등에 신고

온라인 스토킹은 오프라인 스토킹과 달리 가해자를 특정하기도 어렵다. 20대 피해 여성들에게 주된 가해자는 누구인지 물었더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응답이 31.5%, ‘가해자를 알지 못한다’는 응답이 19%에 이르렀다. 2차·3차로 확대되는 가해의 고리를 끊기가 그만큼 어려운 셈이다.

“아예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어요. 누가 가해자인지도 애초에 알 수 없었고, 불특정 다수를 수사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만약에 가해자를 찾더라도 다 학생일 테니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 같았고…. 차라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상대측에서 저에 대한 관심이 꺼질 것 같아서 최대한 조용히 있으려고 했어요.”

 

온라인 스토킹 가해자 특성
온라인 스토킹 가해자 특성 ⓒ한겨레

온라인 스토킹 가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부터 힘들기 때문에 오프라인 스토킹처럼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 조처하는 것도 힘들다. 연구진은 “온라인 스토킹에 대한 피해자의 불안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임시적으로든 영구적으로든 분리될 수없는 온라인 환경의 특수성에서 극대화된다”며 “피해자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가해자가 더 이상 자신들의 에스엔에스를 염탐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제재”라고 짚었다.

최근 들어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한 오프라인 스토킹과 달리 물리적 폭력이 동반되지 않은 온라인 스토킹의 경우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인식도 부족한 편이다. 온라인 스토킹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23.6%)거나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28.3%)는 응답이 꽤 있었다. 이렇다 보니 여성 스스로 온라인 스토킹 피해를 사소화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지인이나 전 연인이 에스엔에스나 메신저를 통해 개인정보를 캐내는 일은 ‘구애 활동’이나 ‘관심의 표현’ 정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온라인 스토킹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어요. 주변에서도 알려주지 않았고, 친구들도 제게 ‘걔가 너를 되게 좋아해서 그랬나 보다’라고 이야기하던 분위기였어요. 저도 그래서 ‘아, 얘가 나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고….”

 

온라인 스토킹 발생 공간
온라인 스토킹 발생 공간 ⓒ한겨레

수사기관이나 상담기관 역시 온라인 스토킹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부족한 탓에 용기를 내어 신고한 피해 여성이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도 많았다. 온라인 스토킹의 33.8%가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디엠(DM) 등 ‘인스턴트 메신저’를 통해 발생했는데, 이 경우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 등으로 수사기관의 대응이 소극적이었던 사례도 있었다.

“그 당시에 여성 폭력 대응 기관이 있다는 것은 몰랐어요. 대신 학교 위클래스(학생상담 지원센터)에 갔었는데 ‘이런 건 신고할 수 없고 너가 피해 다니는 수밖에 없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너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잘 가면 된다’는 식으로 제게 책임을 돌렸지 피해 대응에 대한 대답은 듣지 못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스토킹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경찰 여성청소년계와 사이버수사대 모두에 신고했고, 100장의 증거물을 제출했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어요. 트위터가 해외서버라는 이유로 가해자를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고, 저도 상대방 얼굴만 알았지 이름이 본명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어요.”

온라인 스토킹 미신고 이유
온라인 스토킹 미신고 이유 ⓒ한겨레

이런 상황에서 피해 여성들은 수사기관 신고 등 법적 절차를 밟기보다는 개인적 해결을 많이 선택했다. △온라인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거나(19%) △해당 서비스 이용을 중단하거나(13.4%) △사용하던 계정을 삭제하고 새 계정을 만들었다(11.4%)고 했다. 온라인 스토킹이 발생한 해당 플랫폼 신고센터나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 조처를 했다는 응답은 8.8%에 그쳤다.

 

“온라인 스토킹 처벌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해야”

 9월 시행을 앞둔 스토킹처벌법은 ‘우편·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글·말 등을 도달하는 행위’를 스토킹 행위의 하나로 규정해 온라인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하지만 이번 대규모 실태 조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주된 온라인 스토킹 행위 대부분은 22년 만에 만들어진 법망을 모두 빠져나간다. 당사자 허가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이렇게 얻어낸 개인정보를 합성·가공·유포해 다른 범죄에 사용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국회 제출 보고서에서 정의하고 분류한 온라인 스토킹 유형만 10가지에 이르는데, 이런 행위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이 아닌 ‘스토킹’으로 묶어 처벌할 방법은 여전히 없는 셈이다.

스토킹처벌법이 행위의 지속성, 반복성을 스토킹 범죄 구성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도 온라인 스토킹 처벌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연구자들은 “온라인 스토킹은 단 한 번만 해도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스토킹처벌법처럼) 2회 이상을 반복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온라인 스토킹의 경우에는 스토킹 범죄 구성요건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실태 조사에서도 온라인 스토킹이 1개월 미만(40.9%), 1회(35%)였다는 응답이 상당수였다.

온라인 스토킹은 피해자-가해자의 직접적 접촉과 폭력을 전제로 하는 오프라인 스토킹과는 성격이 다르다. 온라인 특성상 피해자 고통은 빠르게 확산한다. 디지털화한 고통은 반영구적으로 재생산·되풀이된다. 이때문에 연구자들은 오프라인 스토킹과 구별되는 온라인 스토킹을 실질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령을 독립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서에서 제안했다. 미국은 네브래스카주를 제외한 49개 주가 사이버 괴롭힘(Cyber Harassment), 사이버 스토킹(Cyber Stalking)을 별도 법령으로 처벌하고 있다. 스토킹처벌법 첫발을 뗀 국회가 보완 입법이나 별도의 온라인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한겨레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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