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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08일 14시 15분 KST

코로나19로 무료 급식소들이 문을 닫았고 노인 '돌봄 공백'이 현실로 나타났다

8월20일 기준 서울 시내 무료 급식소 31.5%가 운영을 중단했다.

Yaraslau Saulevich via Getty Images
자료 사진.

7일 아침 7시 반께 마스크를 굳게 눌러쓴 노인들이 우산에 기댄 채 장대비 속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직은 도심 속 출근 행렬이 보이지 않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서울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은 부지런히 모여든 노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늦게 도착하면 배식을 못 받을 수 있어. 빨리 나와야 해.” 대열에 합류한 한 백발의 노인이 급식소에서 검은 봉투를 받아들며 중얼거렸다.

 

태풍 ‘하이선’에도 노인 100여명 몰려

원각사 무료급식소엔 이날 아침 7시 반부터 1시간 동안 무려 100여명에 이르는 노인들이 몰려들었다. 8월 중순부터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이곳을 뺀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가 모두 운영을 멈췄다.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아침 일찍부터 장대비가 내렸지만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들은 유일한 안식처인 이곳 급식소를 향해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어른 주먹만한 주먹밥 하나, 단무지 세 쪽, 요구르트 한 개가 담긴 작은 봉투를 받기 위해 멀리 인천에서 오는 노인들도 있다.

“비 오는데 밥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아니면 밥 먹을 데가 없어요.” 자원봉사자 심아무개(62)씨가 거리두기 수칙을 유지하기 위해 재빨리 주먹밥을 나눠주자 받아가는 이들마다 한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어떤 이는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주먹밥으로 밤새 허기진 속을 달래고, 어떤 이는 바닥에 앉아 요구르트부터 들이켰다. 다른 노인들은 작은 봉투를 손에 움켜쥔 채 종종걸음으로 흩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급식소·복지시설 대부분 폐쇄

‘준3단계’ 거리두기로 대부분의 급식소나 복지시설이 문을 닫은데다, 긴 장마와 태풍으로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워져 가난한 노인들이 찾을 곳이 사라져 버렸다. 끼니를 때우기조차 어려워진 노인들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먼거리 이동을 감수하며 무료급식소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원각사 급식소를 찾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생계가 어려운 노인들이다. 이 급식소 책임자는 “대부분의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았는데 사람들이 아침마다 와서 ‘굶어 죽는다’고 하소연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방역수칙을 지키며 주먹밥을 포장해주고 있는데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전했다. 지난달 20일 기준으로 노숙인 등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서울시내 단체 54곳 중 17곳(31.5%)은 코로나19 등으로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한겨레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린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에서 어르신들이 주먹밥을 받아가고 있다. 점심시간마다 비빔밥을 제공했던 급식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주먹밥으로 바꿨다.

이날 급식소 앞에서 만난 오아무개(76)씨도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 걸리는 경기도 광명시에서 왔다고 했다. 오씨는 “집 주변에는 무료 급식소가 없어서 이곳까지 왔다. 쌀이 없어서 밥 먹기도 어려운데 이곳에 오면 의지할 수 있으니까 왔다”고 했다. 또다른 급식소 이용자는 “문 여는 급식소를 찾아다닌다. 아침은 종로구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청량리에 가서 해결한다”고 말했다.

 

독거 노인들의 ‘돌봄 공백’ 현실화 

사회복지시설이 문을 닫은 탓에 노인들이 폭염과 폭우를 피할 만한 공간조차 마땅하지 않다. 서울시는 지난달 18일 각 자치구에 사회복지시설 3601곳의 휴관 권고를 내렸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돌봄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서울역 인근 쪽방촌에서 혼자 사는 김동수(73)씨는 “평소에 용산 복지관을 자주 갔었는데 문을 닫아 나갈 곳이 없다. 비가 많이 오거나 더우면 용산역, 서울역 등 시원한 역사 안에서 쉰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복지관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도시락 배달 등을 지원하지만 거주지 문제 등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독거노인 중엔 주소를 자녀 집으로 해두고 홀로 사는 경우가 많다.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소규모 지역 단위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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