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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3일 15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03일 15시 44분 KST

암이 재발한 엄마가 수술 하루 전 부탁을 했다

huffpost

최근에 페이스북에 글을 아주 많이 쓰고 있는데, 사연이 있다.

5년 전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는데 이미 3기말이었어서 급작스러운 대수술을 받았다. 열 시간 넘게 걸린 수술은 그나마 나았고, 그보다 더 힘겨운 항암을 거치면서 생활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진짜 죽으란 법은 없다지. 고맙게도 엄마가 잘 견뎌주어 그럭저럭 건강한 5년이 지나갔다.

암은 5년간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라고 한다는데, 지난 3월 그러니까 딱 한 달 전이 완치 판정을 앞둔 마지막 정기 검진이었다.

난 요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일도 꽤 잘 풀리고 남한테 크게 아쉬운 소리 할 일 없고 살고 싶던 동네로 이사도 오고 그러던 차였는데.

그러던 차였는데, 마지막 검진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간 엄마로부터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희한하지. 맨날 같이 갔다가 시간이 도저히 안 맞아 처음으로 엄마 혼자 간 날이었는데. 강의 한 타임 끝내고 쉬는 시간이었는데 여기 저기로 전이가 많이도 됐다네. 인생.

이쯤 되면 하루가 다른 게 암이어서 또 급작스러운 수술을 받았다. 기관지부터 시작해서 저 아래까지. 지난 번보다 훨씬 더 큰 대수술이었고, 이번에는 전공마다 의사 선생님도 여러 분이 들어가셨다.

엄마는 재발 진단 받던 날부터 갑자기 씩씩해지더니 ”이미 한 번 해봐서 이번엔 자신있다”고 느닷없는 투지를 불태웠다. 원래 좀 그런 성격이다. 수술 끝나구 당분간은 중환자실에 가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투지 덕인지 수술도 잘 되었고 중환자실도 안 갔고 회복도 잘 되고 있다. 지금은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인데 주치의 선생님도 볼 때마다 기함하시는 정도.

아, 그래서 페이스북에 갑자기 글을 많이 쓰게 된 사연은,

수술 전날 같이 병원에서 자는데 엄마가 나한테 뭐 하나 부탁이 있대. 뭐냐니까, 나는 니가 쓴 글 읽는 게 좋은데 요새 니가 너무 바쁘고 일만 하느라 글을 안 쓰니까 심심하다구, 회복하고 항암하고 할 때 누워만 있어야 하니까 여기 저기다 글 좀 많이 써달래. 그리고 조그맣게 덧붙이는 말.

″댓글 보는 것도 꿀잼이니깐 이왕이면 페북에 쓰구.”

natasaadzic via Getty Images

으이구 증말. 사실 우리 엄마는 내 페이스북을 맨날 눈팅하고 있는데, 나한테 욕 먹을까봐 댓글은 절대 달지 않는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무슨 쌈질 같은 거 열리면 나한테 와서 알려주고, 누가 내 저격글 같은 거 쓰면 귀신같이 찾아내서 캡쳐를 보내준다. 예전에 누가 댓글에 내 글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어머님이 누구니?” 달았더니 그 부분만 캡쳐해서 카톡으로 보내놨드라. (자랑스러웠나봐요.)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옛날에 일기장에 써놓은 글 같은 것도 올리구, 암튼 요새 매일 매일 뭘 많이 찌끄리게 된 사연은 이렇다.

수술 하던 날,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참 수술 전날 기껏 부탁이라고 한다는 말이 별 것도 아닌 페이스북에 글 많이 써놓으라는 거라니. 누워서 그거 읽는 게 재밌다구,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내가 뭐 써놓은 거 읽는 것보다 나한테 우호적인 의견들이 담긴 댓글들을 보는 게 엄마는 좋은 것이다.

그것도 생각났어.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타온 상장이 경필 쓰기 대회 최우수상이었는데, 그거 받아오던 날 하필이면 동네 어디 가게에 불이 나서 동네 사람들이 그 앞에 다 나와 있었다. 우리 엄마는 거기 들구 나가서 내가 받아온 상장을 자랑했다지. 불난 집에 딸내미 상장 자랑질이라니.

나는 이런 마음이, 뭐 모성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뭐든 자동으로 아름다워지는 경향이 있지만, 아름답기는 커녕 너무 맹목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맹목적인 본능이 일깨워지는 게 싫어 누군가의 엄마가 되기가 두려운 마음이 드는 정도랄까.

그런 한편 또 드는 생각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대수술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수술 동의서 서류에 서명을, 내가 지난 밤에 해두었었지. 내가 보호자니까. 그러면서 떠오른 문장이

엄마가 이 세상에 없으면 나는 다시는 이런 맹목적인 지지자를 갖지 못 할 것이다.

뭐 암튼 그런 날이 있었다.

어쨌든 또 지나보내구 이런 말을 하게 되는 때가 오네. 인생.

*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