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기 시작한 비. 텅 빈 경주 트랙을 가르는 마지막 주자. 승부는 진작에 가려졌으니 포기할 법도 했지만 선수는 멈추지 않았다.

캄보디아 육상선수 보우 삼낭은 지난 8일(현지시각)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제32회 동남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5000m 결승에서 꼴찌를 차지했다. 이미 6분 전 우승자가 가려졌고 다른 선수들도 속속 결승선을 통과한 뒤, 삼낭이 홀로 트랙을 뛰던 즈음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센 폭우를 뚫고 비에 흠뻑 젖은 삼낭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영상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의 뜨거운 찬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상 속 삼낭이 22분 54초 만에 결승점을 통과하자 관중석에서는 환호와 격려의 함성이 터졌다. 삼낭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캄보디아 국기를 들어 올렸다. 삼낭은 <아에프페>(AFP)에 “인생에서 조금 느리든 빠르든 목적지에 결국 도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끝까지 뛰었다”며 “그러니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낭은 오랫동안 앓아온 빈혈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로 이날 경기를 치렀다. 그는 조국에서 열리는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내내 중국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정작 경기 당일에는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삼낭은 “레이스를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캄보디아를 대표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며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달리기 여정도 평탄하지는 않았다. 중학교에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삼낭은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트랙은커녕 흙바닥을 뛰어야 했고 운동화는 한 켤레뿐이었다. 2016년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뒤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5년 뒤 그는 주요 선수에 포함됐다. 훈 센 캄보디아 총리는 삼낭의 끈기에 감동해 미화 1만 달러의 포상금을 주기로 했다. 삼낭은 포상금으로 어머니의 빚을 갚고 자신의 학비를 대고 싶다고 한다.

이날 여자 육상 5000m 결승의 금메달은 베트남의 응우옌 티 오안이 차지했다. 지난 5일부터 17일까지 13일 동안 열린 이번 동남아시안대회 폐막식은 17일 저녁 캄보디아 프놈펜 모로독 테코 경기장에서 열렸다.

한겨레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