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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진 않지만 배우니까.."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종철 씨는 '프로듀스 101' 나온 故 이지한 아버지다

"저라도 먼저 나서야 많은 분들이 보고 오지 않을까 싶어 용기를 냈다" - 故 이지한 모친 조미은 씨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종철 씨, '프로듀스 101' 시즌2. ⓒ뉴스1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종철 씨, '프로듀스 101' 시즌2. ⓒ뉴스1

조미은(54)씨는 문득 그 맛이 궁금했다. 믹서기에 간 닭가슴살의 맛. 수백 번을 직접 만들면서도 정작 맛을 본 적은 없었다. 스물넷 아들 지한은 그걸 보물단지처럼 들고 다니며 먹었다. 직접 먹어본 맛은 충격적이었다. 누린내가 심해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미은씨가 말했다. “이렇게 맛없는 걸 어떻게 생명수처럼 가지고 다니며 먹었니. 정말 존경스럽다.” 2022년 10월27일의 대화였다. 키가 183㎝인 지한은 항상 몸무게가 67㎏을 넘지 않도록 관리했다. 늘 칼로리(열량)를 생각하다보니 닭가슴살이 주식이었다. 밥은 흰쌀이 한 톨도 섞이지 않은 현미밥만 먹었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급식이 아니면 흰쌀밥을 먹은 적이 없을 정도였다. 아이돌을 준비하며, 배우를 꿈꾸며 9년을 그렇게 보냈다.

 

‘지한’이라는 이름을 얻고 밝힌 꿈

이지한씨 사진. ⓒ유가족 제공
이지한씨 사진. ⓒ유가족 제공

지한의 어린 시절 이름은 ‘건호’였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미은씨에게 건호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순한 아이였다. 세상에 나와 걷고, 말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지한은 속을 썩인 적 없었다. 2001년, 지한이 3살 때 미은씨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우리 건호 하면 떠오르는 말 ‘순댕이’. 너무 순해서 착한 건호. ‘때론 말썽도 좀 부리지’ 하고 엄마가 오히려 생각하곤 한단다. 효자 건호.”

어린 시절의 지한은 경찰이 되고 싶었다. 주변에 억울한 친구들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슈퍼마켓에서 있었던 일을 미은씨에게 했다. 친구가 과자를 사고 돈을 냈는데 슈퍼 아저씨가 돈을 받지 못했다며 도둑 취급했다. 지한이 나섰다. 반박하다가 바닥을 샅샅이 찾아 500원짜리 동전을 발견했다. 그 동전을 아저씨에게 주면서 말했다. “왜 그렇게 의심만 하세요.”

지한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이돌 준비를 시작했다. 길거리 캐스팅이 계기였다.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너무 예쁘게 생겨서 크면 탤런트 하면 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그런지 거부감 없이 시작한 것 같다”고 미은씨는 회상했다. 남보다 늦게 준비한 탓에 지한은 열심히 땀을 쏟았다. 미은씨와 아빠 이종철(55)씨는 비디오 감독을 자처했다. 따로 춤 선생님을 붙여줄 형편이 되지 않아 주말이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지한의 춤 영상을 찍어줬다.

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가 2001년 썼던 일기. ⓒ유가족 제공
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가 2001년 썼던 일기. ⓒ유가족 제공

지한은 스무 살 때 <엠넷>(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2017)에 출연하며 처음 얼굴을 알렸다. 가족들은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기대했지만, 지한은 초반에 탈락했다. 비슷한 시기 한 기획사로부터 사기까지 당하며 악재가 겹쳤다. 이름도 건호에서 지한으로 바꿨다.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부르고 싶던 이름이었다. 지한이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말한 시점도 이때쯤이었다. “나, 아이돌이 아니라 배우가 하고 싶어.”

지한은 뒤늦게 연기학원을 다니며 동국대 연극학부에 합격했다. 훌륭한 배우들이 있는 원하는 기획사에도 2022년 5월 들어갔다. 지한의 얼굴이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날, 가족은 마을 잔치를 열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 출연도 확정됐다. <문화방송>(MBC) 금토 드라마 ‘꼭두의 계절’이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촬영에도 지한은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촬영하고 늦게 들어올 때면 가족들을 붙잡고 꼭 그날 있던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쏟아낸 뒤에야 잠이 들었다.


유가족과 연락하고,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하며

이지한씨 사진. ⓒ유가족 제공
이지한씨 사진. ⓒ유가족 제공

2022년 10월29일도 그랬다. 촬영을 마치고 새벽 3시쯤 들어온 지한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듣던 미은씨가 말했다. “우리 자야 하는데 내일 얘기하면 안 될까?” 아들이 조금이나마 일찍 자길 바라서였다.

그날 오후, 미은씨는 지한에게 늦은 점심을 차려줬다. 지한은 그날따라 밥이 잘 안 넘어간다고 했다. 구겨진 와이셔츠를 입고 나가겠다는 지한에게 미은씨는 10분만 기다려달라며 셔츠를 다려줬다. 신발을 신던 지한은 신발이 자꾸 벗겨진다고 했다. 미은씨가 그 신발끈을 단단히 매어줬다. 평소 쉽게 무엇 하나 사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 않던 지한이 말했다. “진짜 신발은 좋은 걸 하나 사야겠어, 엄마.”

그날 밤 미은씨와 종철씨는 지한의 옷을 샀다. 집에 지한의 옷을 두고 정말 오랜만에 드라이브하러 나갔다. 그리고 자정을 넘겨, 10월30일 밤 12시23분 종철씨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지한씨 부모님 맞으시냐고 물었고, 지한이 이대서울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다고 했다. 가족들이 응급실에 도착한 건 새벽 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응급실엔 낯선 남자아이가 누워 있었다. 지한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인지 지한으로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몸이 차지도 않았다. 온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미은씨가 무작정 인공호흡을 했다. 인공호흡을 하면서 더는 안 될 거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자료사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이지한 씨의 모친 조미은 씨가 3월 2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대로는 못살겠다! 윤석열 정권 심판! 3·25 행동의 날'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자료사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이지한 씨의 모친 조미은 씨가 3월 2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대로는 못살겠다! 윤석열 정권 심판! 3·25 행동의 날'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장례식이 끝나고 가족들은 하루 종일 울었다. 그다음 날 또 울었다. 집에서 울고 차에서 울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슬픔과 울음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자, 다른 유가족 생각이 났다. 그렇게 같은 슬픔을 겪고 있을 사람들을 만나보자는 생각으로 다른 유가족을 찾아 나선 것이 지금 유가족협의회의 시작이 됐다. 무엇을 하자는 생각은 없었다. 일단 모으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어느새 종철씨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돼 맨 앞에서 싸우고 있다. 미은씨는 유가족 중에선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언론과 인터뷰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평범하던 엄마와 아빠였다.

“유명하진 않지만 배우라 그나마 이름이 있잖아요. 저라도 먼저 나서야 많은 분들이 보고 오지 않을까 싶어 용기를 낸 것 같아요.” 미은씨가 말했다. “사실 저는 불씨만 지피고 대표는 하지 않으려 했어요. 가끔씩은 모르겠어요. 저도 대표이기 전에 유가족 중 한 사람이거든요. 그게, 그게 좀 힘들어요.”(종철씨)


몇 번을 더 울고 기절하고 다쳐야 끝이 날까

(자료사진) 이종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4월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생존자들에 대한 무더기 금융정보조회 규탄 기자회견에서 항의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자료사진) 이종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4월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생존자들에 대한 무더기 금융정보조회 규탄 기자회견에서 항의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2022년 12월 협의회를 만들고 불과 넉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국회에서, 서울시청 앞에서 수없이 눕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궁금한 걸 알려달라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해달라고,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해달라고, 추모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몇 번을 더 울고 기절하고 다쳐야 끝이 날까. 지한의 가족은 아직 사망신고도 하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궁금한 게 450가지 정도 되거든요. 그중 300가지라도 알 수 있다면, 그리고 최소한 한 명은 살인죄로 처벌받아아 사망신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은씨는 쌀밥을 볼 때면 지한이 생각난다. 누구나 먹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떠나서 생각난다. 실컷 놀지도 못하고 떠나서 안타깝다. 잠이라도 원하는 대로 못 자서 불쌍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누려야 할 것들도 못 누리고, 참기만 하다 가서 분하다. 지한의 집 냉동실엔 아직 그가 먹던 닭가슴살이 가득 차 있다.

한겨레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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