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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 어디까지 해봤니?

쉼만이 가득했던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여행기

  • 원디
  • 입력 2022.11.21 17:26

로스앤젤레스의 일상화된 복잡함을 벗어나기 위해 달린 1,600km.

에어비앤비 호스트 아담이 미리 보내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포레스트 파크(Forest Park) 주소에 도착했다.

이 공간에서의 한 달 살기가 목표였기에 아이들 짐까지 넉넉하게 챙겨왔거늘 이것은 에어비앤비를 찾아가는 길인가 아니면 정글을 거닐고 있는 것인가?

“이 길은 네가 처음이야.” 하는 것과 같은 무성하면서도 다듬어지지 않은 풀을 밟으며 숲을 내려가야 했고 “이리로 가는 게 맞나…?” 싶은 계단을 올라갔을 때쯤 비로소 우리가 묵을 공간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 내 방이자 작업실

도심 속에 있지만 산자락 끝 쪽 울창한 숲 안에 위치한 집.

도시보다는 조용한 숲속의 별장에 가까웠는데 구조가 꽤 독특했다. 산의 경사에 만들어진 집이라 계단을 올라가지만, 이 층이 우리가 쓰게 될 1층이다. 이 공간은 방 두 개, 거실, 부엌 그리고 화장실 한 개로 되어있다. 2층은 호스트인 아담이 살고 있고 현재 출장 중이어서 둘째 날에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옷과 생필품들을 일단 손닿기 쉽겠다고 생각되는 위치에 세팅하고 나니 그제야 숨을 고르는 여유가 허락되었다. 초록 액자를 걸어둔 듯한 창문을 열어두니 과하지 않은 숲속의 새들의 지저귐과 풀벌레들 소리가 들린다. 이 배경음에 걸맞게 앞으로 한 달 동안 더 격렬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만 가겠다고 다짐한다.

‘일단 3박 4일 이동하면서 미뤄뒀던 빨래나 해볼까?’ 아담에게 문자로 “빨래는 어디에서 할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얼마 후 “내가 사는 2층 계단으로 올라와서 오른쪽으로 틀면 바로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으니 편하게 사용해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주인 없는 공간으로의 침범, 그 공간에서의 내 프라이버시가 드러나는 빨래는 결코 편할 수만은 없었다.

호스트 아담이 키우는 고양이

“계세요?” 2층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고 이내 야옹 소리가 들린다. 아담이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중 한 마리가 시크하게 다가와 자기를 만져도 된다는 신호를 주듯 내 손에 몸을 비비기 시작한다. “아담이 출장 가 있어서 심심하지?”, 하면서 만져주니 녀석도 싫지만은 않았는지 회사 선임이 후임에게 인수인계하듯 내 동선을 졸졸 쫓아다니며 모니터링한다.

둘째 날 아침, 출장을 마친 아담이 찾아왔다. “원디 맞죠? 첫날은 잘 쉬었나요?”라는 질문에 덕분에 푹 쉬었다고 대답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아담은 미국과 동남아 지역에 요가 사업 체인을 둔 요기(Yogi)이다. “포틀랜드는 하이킹 코스가 많기로 유명해요. 이 근처에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괜찮은 하이킹 코스가 많으니 아이들과 산책하기에도 좋을 거예요.” 일 때문에 대부분 집을 비운다는 아담에게 “집을 비우실 때 2층과 이어지는 문을 살짝 열어둬도 괜찮을까요? 고양이들이 심심할 것 같아서요. 아이들도 고양이를 좋아하고요.”라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다고 답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인 파웰 서점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인 파웰 서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목표인 한 달 살기였지만 그래도 포틀랜드에 왔으면 다운타운은 가봐야 한다는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오랜만에 집 밖을 나섰다. 길거리에 주차한 뒤 5분 정도를 걷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인 파웰 서점(Powell’s Bookstore)을 마주할 수 있었다.

3층으로 된 68,000제곱 피트의 규모, 9개의 방, 3,500개의 섹션으로 나눠진 이곳은 도심 한 블록 전체를 사용할 정도의 위용을 자랑한다. “아이들 책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물으니 입구 반대편 쪽으로 들어간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 또 같은 방향으로 쭉 가면 섹션 전체가 아이들 코너라고 하니 그 크기가 짐작된다.

포틀랜드 다운타운의 포근했던 로터스앤빈 카페
포틀랜드 다운타운의 포근했던 로터스앤빈 카페

포틀랜드는 특히 개성이 강하고 힙한 개인 카페들과 이 도시에 뿌리를 둔 로컬 커피 브랜드들이 즐비하다. 우리는 빌딩 숲 사이 3가에 위치한 조금 더 클래식하고 포근한 느낌의 로터스앤빈(Lotus & Bean) 카페로 들어왔다.

“뭐 주문하시겠어요?” 묻는 종업원에게 아메리카노와 라떼 한 잔씩을 주문하니 곧 요란스러운 에스프레소 머신이 커피를 추출하는지 바빠진다. 커피를 가져온 우리는 가장 명당인듯한 폭신한 소파에 앉아 그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미국 시골을 연상케 하는 카페 내부 인테리어, 그곳에서 내다보이는 창밖의 빌딩 숲 안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회사 사람들, 그리고 내 앞 탁자 위의 블랙핑크 화보를 메인 표지로 둔 롤링스톤 잡지가 서로 대조적이었다.

포틀랜드 다운타운의 쇼핑 거리
포틀랜드 다운타운의 쇼핑 거리

오리건주의 가장 큰 장점은 Sales Tax(판매세)가 면제돼 면세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점이다. *미국 대부분 주는 약 5-9% 판매세가 붙는다. 캘리포니아는 8.8%)

포틀랜드로 장기간 여행을 할 때면 떠나기 전까지 우리 부부는 부지런히 쇼핑 목록에 더 신중을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떠나기 하루 전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연락해 주소를 알아둔 뒤 배송을 해둔다면 우리가 도착한 둘째 날에는 받아볼 수 있어 유용하다. 하지만 우리 차로 물건을 실어 다시 가져와야 하기에 공간적 한도가 있어 나름의 규칙은 있다. 바로 ‘부피가 작으면 $100 이상의 물건만 살 것’과 ‘부피가 크면 $400 이상의 물건만 살 것’이다.

게다가 세계 최대 브랜드인 나이키와 콜럼비아의 본사가 포틀랜드에 있어 이곳에서의 쇼핑은 옵션이 아닌 필수다.

포틀랜드 역사상 최고온도의 폭염으로 에어비앤비에서 즐기는 여유
포틀랜드 역사상 최고온도의 폭염으로 에어비앤비에서 즐기는 여유

우리가 머물렀던 7월의 포틀랜드는 그야말로 폭염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1층에 있어 구조상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덥지 않았다는 점. 방 안 침대에 누워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 그곳이야말로 휴양지였다.

문제는 에어컨이 센트럴 시스템이라 켜두면 온종일 에어컨이 나와서 추웠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아담에게 우리가 추울 때마다 에어컨을 꺼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어서 오히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폭염 온도를 들이는 상황이었다.

거실에 있던 벽난로
거실에 있던 벽난로

저녁부터는 아이들이 너무 추워해서 에어비앤비에 있는 벽난로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 벽난로용 장작도 사 왔는데 불 때운 지 20분 정도가 지나면 집안 전체가 후끈거리며 아늑해진다.

첫날은 집안의 온기에만 의미를 두었지만, 그다음 날엔 아이들이 “마시멜로 구워 먹기”를 요청하고 또 그다음 날엔 아내가 “군고구마 구워 먹기”를 요청한다.

한번 불을 지필 때 약 $11의 장작을 태웠는데 나중에 영수증을 계산해보니 한 달 살기 하는 동안 약 $165어치의 돈도 함께 태운 듯싶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이 그때의 기억을 가장 좋은 추억으로 꼽는 걸 보면 태울 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벽난로 불멍을 하고 있으면 노곤해지면서 잡념 역시 함께 사라진다. 아이들과 꼬치에 꽂은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면 이런 게 행복이 아닌가 또 한 번 실감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집을 사게 된다면 이 집처럼 계단이 있으면서 가스가 아닌 장작을 태우는 벽난로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고 하는데 돌아가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베다니 레이크 공원에서의 낚시
베다니 레이크 공원에서의 낚시

자연과 더불어진 오리건주에는 호수나 강 그리고 연못들이 많다. “아담, 첫째와 함께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낚시를 하려고 하는데 혹시 근처에 낚시할만한 곳이 있을까요?” 했더니 에어비앤비와 가까운 곳에 있는 연못인 베다니 레이크 공원(Bethany Lake Park)을 추천해줬다. 다음날 낚시 자격증과 낚싯대를 구매해 아담이 추천해준 공원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물고기를 하나라도 잡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아이와 나란히 앉아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어떠한 위안으로 다가왔다. 다음 포틀랜드에 한 달 살기 하러 돌아온다면 강과 호수도 가보자며 첫째와 약속했다.

에어비앤비의 마스코트들
에어비앤비의 마스코트들

아담이 바쁜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2층과 우리 층 사이의 문을 열어두는 횟수가 늘었는데 그러면서 요 녀석들의 방문이 늘었다. 2층 문을 열면 문 뒤에 기다리고 있다가 ‘집사! 왜 이제서야 열었어?’ 하는 식으로 위풍당당하게 입장한다.

음식을 하러 부엌에 갈 때면 미리 싱크대에 사뿐히 뛰어올라 참견하기 바쁘고, 화장실 찬장을 열 때면 ‘안에 뭐가 있는데?’ 하면서 한 마리씩 들어가 먼저 확인해준다. 첫째와 둘째는 거실에서 이 고양이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침대를 만들어준다며 늘 분주하다.

1층 덱에서 바라본 숲의 밤풍경
1층 덱에서 바라본 숲의 밤풍경

떠나기 전날 밤, 아이들은 고양이들과 정이 들었는지 이곳에 조금 더 있으면 안 되는지 묻는다. “하지만 우리 여기에 벌써 한 달이나 있었는걸? 나중에 또 놀러 오자.” 하면서 나중을 기약한다.

포틀랜드 한 달 살기 기간 동안 장을 많이 봤더니 라면이 많이 남아 아담에게 물었다. “아담, 혹시 인스턴트 라면 좋아하나요?” 물었더니 “한국 라면인가요? 내 제일 친한 친구가 한국인이라 한국 라면은 다 좋아합니다”라고 해서 종류별로 전해줬다.

“내가 없는 동안 고양이들과 놀아줘서 고마워요. 언제든 포틀랜드에 온다면 꼭 이곳에 또 머물러줘요”라는 아담의 말이 작별을 실감케 했다. 이곳에서의 좋았던 기억들은 또 나중에 포틀랜드를 추억하며 다시 찾게 될 이유가 될 것임을 안다.

여행작가 원디: 미국 공군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이라크 파병을 통해 여러 차례 테러를 경험하면서 숨 쉬고 있는 현재(present)에 가치를 둔 여행을 기록한다. 계획된 여행도 좋아하지만, ‘일단 오늘 어디든 떠나자’ 하는 갑작스러운 여행도, ‘돌아오는 날짜는 일단 가서 고민해보자’하는 기약 없이 떠나는 여행도 좋다. 그저 여행 그 자체가 주는 설렘이 좋다. (dladnjsejr@gmail.com)
여행작가 원디: 미국 공군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이라크 파병을 통해 여러 차례 테러를 경험하면서 숨 쉬고 있는 현재(present)에 가치를 둔 여행을 기록한다. 계획된 여행도 좋아하지만, ‘일단 오늘 어디든 떠나자’ 하는 갑작스러운 여행도, ‘돌아오는 날짜는 일단 가서 고민해보자’하는 기약 없이 떠나는 여행도 좋다. 그저 여행 그 자체가 주는 설렘이 좋다. (dladnjsejr@gmail.com)

** 해당 페이지는 에어비앤비가 직접 편집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부 필자에게는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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