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올 여름 시판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 여성들에게 강제 불임 수술, 수용소 구금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는 AP 탐사보도가 파장을 낳고 있다.
역시 만점 비결은 아주 간단했다.
처음으로 총학생회가 개최했다.
의도적 절도로서의 「전설」이나 상습범 신경숙을 단정했다가 그간의 논의를 통해 '의도'를 가정한 비난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새삼 발견한 것이라면 스스로 그러한 비난에 얼마나 동조했는지도 솔직히 밝히는 게 옳다. 또한 그동안 신경숙의 '의도적 베껴쓰기'를 인정 안한다고 창비에 퍼부은 공격은 어찌되는 것인가. 창비가 다른 많은 것을 더 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마땅히 감수해야 하겠지만 창비의 '묵언'과 '입장표명'은 '의도'에 대한 단정을 근거로 한 작가를 매장하는 일에 가담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신경숙의 사과에 대해 대다수 비판자는 의도적 베껴쓰기를 자백하지 않았으므로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격을 계속했으며 창비의 머리글이 계속해서 비난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현세의 부와 권력을 넘치도록 성취했다면 필연적으로 남는 것은 불사(不死)의 욕망인 것일까. 타셈 싱 감독의 <셀프/리스>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끊임없이 육체를 바꿔가면서 영생을 이룰 수 있다면 그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과거의 영광을 이어갈 것인가, 새로운 삶에 몰두해 또 하나의 인생을 살 것인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죽지 않는 뱀파이어는 외로움과 허무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무덤에 유폐시킨다. 영원한 삶이란 어쩌면 육체라는 감옥에 갇힌 영원한 고통일 수도 있다. <셀프/리스>는 기억과 영혼에 대한 질문으로 갈 수도 있었다.
'라운드업 레디' 특허 만료에 따라 농민들은 지난해 수확한 콩을 올해 봄 이후 종자로 다시 쓸 수 있게 됐다. 또 올해 심은 콩 중에서 내년에 종자로 쓸 것을 골라 저장해놨다가 심어도 된다. 그동안 매년 몬샌토로부터 종자를 사야 했던 농민들에게는 희소식이 날아든 셈이다. 종자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종자가 그냥 일반 종자가 아닌 GMO라는 점이다.
이마가 넓은 건 문명 고도화에 따른 뇌의 확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눈이 큰 건 지구보다 빛이 희미한 우주 식민지에 적응한 결과이다. 또 유해한 우주 방사선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피부는 까무잡잡해진다. 강한 햇볕에 노출돼 사는 아프리카인의 피부가 검은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무중력이나 저중력 상태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꺼풀은 두꺼워지고 눈썹은 진해진다. 우주시대엔 빛을 더욱 효율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동공은 기괴하리만큼 커져 눈 뒤쪽 반사판으로부터 안광을 발한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4번째 영화인 <쥬라기 월드>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이번엔 깃털 달린 공룡이 나오느냐였다. 벨로시랩터가 이빨 달린 칠면조처럼 생겼다면 스타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깃털 공룡 이론이 이렇게 보편화된 시대에 아직도 우리가 영화에서 깃털 공룡을 볼 수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나는 한국문단의 이러한 '표절의 환락가화(歡樂街化)'가 2000년 가을 즈음부터 줄줄이 터져 나왔던 신경숙의 다양한 표절 시비들을 그야말로 그냥 시비로 넘겨버리면서 이윽고 구성되고 체계화된 것임을 또렷이 증언할 수 있다. 신경숙의 표절에 대한 한국문단의 '뻔뻔한 시치미'와 '작당하는 은폐'는 그 이후 한국문단이 여러 표절사건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 악행을 고질화, 체질화시킴으로서 한국문학의 참담한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한국문인들은 신경숙의 표절 사실을 알건 모르건 간에 어쨌든 '침묵의 공범'으로 전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