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울림
국가관과 역사관을 건드린다???
시신 운구 비용이 없어 옴짝달싹 못하던 상황.
오미크론 최초 감염자인 40대 목사부부가 있는 교회다.
방송 2회 만에 역사 왜곡과 자극적 희화화로 비판의 중심에 섰다.
고려인으로, 국적은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이었다.
101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신원을 파악했다
한국 배우 유태오가 주연했다.
왜 속칭 '폴리페서'들이 유독 한국에서 판을 치는가? 한국 학계에서 국가권력은 견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친근한 유착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 귀족이 된 소위 '명문대'의 전임교수들은 정치·행정 엘리트들과의 네트워킹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19세기 말 생존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해 간 조선인들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는 시련이 멈추지 않았다. 20세기 초, 정확히는 1937년, 17만 명의 고려인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 당한다. 고려극장의 배우들도 그 안에 있었다. 영화는 당시 고려극장 전설의 디바였던 이함덕의 발자취를 좇는 한편 그녀의 제자이자 생존해 있는 고려극장의 대표적인 디바 방 타마라를 방문한다. 영화는 고려인, 고려극장, 이함덕, 방 타마라를 넘나든다.
사흘밤낮의 기차여행은 너무나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우선은 여름 시베리아의 풍광이 만만치 않기도 하거니와, 4인 1실의 좁은 객실에서 나만의 침대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나를 되돌아보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병실에 누워있거나 감옥에 가지 않고도, 여행 속에서 일상의 시간을 벗어나 이처럼 자기 침잠(沈潛)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예기치 않은 선물이었다.
바야흐로 이 드라마는 현직 의사의 눈으로 볼 때 아주 끔찍한 의학적 고증으로 가득 차 있다. 배에 총탄이 박힌 사람을 살리겠다고 그 자리에서 후벼파는 거야 너무 뻔한 클리쉐이니 넘어간다. (총탄이 들어간 배는 수술실에서 개복해야 한다. 드라마처럼 마취를 안 하고 배를 후비면 진짜 즉사할 수도.) 그리고, 수액 달고 있는 환자에게 근육 주사로 굳이 엉덩이도 아닌 팔에다 놓으려고 하는 것도 일단 넘어간다. (이미 수액 확보한 자리에 놓으면 된다. 얼마나 편한가.) 근데, 난민 애들이 홍역에 걸렸다고 기지로 데려와 막 피 뽑아 검사하는 건 좀 심했다고 생각했다.
북한은 소련에 의하여 설립된 나라이다. 1940년대 말, 소련 당국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를 통치하였다.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가 된 것 역시 소련 당국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우드로윌슨센터의 냉전디지털기록원에서 이에 관한 중요한 사료가 공개되었다. 사료는 소련의 높은 간부에게 보낸 보고인데, 저자는 김일성을 '민주적 영웅'으로 소개하면서 '미래 통일된 민주연합'의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으로 추천한다.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동포들이 그룹별로 진행한 '우리들의 문화유산 자랑'이 있었다. 중국의 조선족 동포들의 '텐미미' 노래, 탈북가수 한옥정의 '반갑습니다'와 '휘파람' 등의 노래, 우즈베키스탄과 사할린 동포들이 함께 부른 '카츄사' 노래와 왈츠 춤, 남한 조각보 중창단의 '일어나', 'I Have a Dream' 노래는 이날 모임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 각 나라 동포들은 코리안의 노래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가슴 뭉클한 순간을 느끼기도 했다.
대한민국 사서의 역사는 암담하였다. 해방 이후 우리 사서는 친일사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시작되었다. 사학계에서도 친일파들이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단과 6·25 동란의 영향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한 축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더욱이 독재 및 권위주의 정부의 오랜 집권으로, 이에 반대하는 이들의 역사 또한 왜곡되고 말살되었다. 이렇게 암울했던 역사 교육은 87년 체제로 전환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상화된다. 우리도 비소로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사서 체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시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