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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취임 80일 만에 ‘28% 성적표 받고’ 여름방학 떠나는 대통령에게

낙제점을 맞고 첫 여름방학을 보내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뉴스1

윤석열 대통령 취임 두달여 만에 국정수행 지지율 30% 선이 붕괴한 날, 한 정치인은 윤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이렇게 전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대변되지 않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일’이라고 하더라. 신림동에서 ‘쓰레빠’ 끌고 사시 공부하던 9년이 자신한테는 사람들의 어려운 삶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대. ‘슬리퍼’를 ‘쓰레빠’라고 표현하면서 신림동에서 보고 느낀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진정성이 느껴지더라고.”

‘대변되지 않는 삶을 대변하겠다’고 했다는 윤 대통령의 포부를 접하고 복잡한 생각이 밀려왔다. 6411번 버스 안 풍경을 전하며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을 위해 (진보정당이) 존재”해야 한다고 했던 고 노회찬 의원,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지방 청년, 농민, 장애인 등 지워진 목소리를 우렁차게 대변하는 것이 소임”이라고 강조했던 심상정 의원이 떠올랐다. 윤 대통령과 진보정치의 간판 심상정·노회찬의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취임 3개월차 윤 대통령의 행동은 거꾸로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에 윤 대통령은 “국민이나 정부나 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공권력 투입을 을러댔다. 불황에 임금 깎이는 건 예사고, 잦은 폐업에 월급도 떼이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야말로 대변되지 않던 사회적 약자였다.

그들을 대변하고 싶었다면 윤 대통령은 “하청 노동자의 어려움, 원청·하청 노동자의 갈등도 알고 있다.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테니 불법 파업은 끝내주길 바란다”고 말했어야 했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도 윤 대통령은 반응하지 않고 있다. 대선 후보였던 지난해 12월 혜화역에서 시위 중인 장애인들을 우연히 만나 교통약자법 개정을 약속한 게 전부다. 이동권 확보 조처를 의무조항에서 임의조항으로 바꾼 정부·국회의 반쪽짜리 법률 개정 뒤 전장연은 시위를 재개했다.

“내부 총질이나” 한다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문명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이라며 전장연에 ‘총질’을 해도 윤 대통령은 말이 없다. 대변되지 않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힘겹게 삐져나온 이들의 목소리를 되레 억압하거나 외면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취임 80일 만에 지지율 28%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휴가를 떠났다. 낙제점을 맞고 여름방학을 보내게 됐으니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준석 대표를 힐난한 메시지가 공개된 뒤 윤 대통령은 3일 연속으로 오전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을 건너뛰었고 자연스럽게 여름휴가로 이어졌다. 8월8일에야 출근할 테니 최소 12일 동안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없다. 설화가 없으면 지지율은 오를 것이다. 매우 긴요한 시기에 확보한 ‘정치적 묵언기’다.

윤 대통령은 올해 7월 중순 잠정 중단됐던 약식회견을 하루 만에 재개한 뒤 민감한 질문엔 답을 피했다. 조심성이 커진 사뭇 달라진 모습에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정부 인사는 “발언을 조심하라는 조언을 한 1000명에게서 듣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뒤에도 과거 전화번호를 그대로 사용하며 ‘외부인’들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휴가 기간에도 텔레그램 소통은 쉬지 않았으면 한다. 왜 여론이 싸늘해진 건지, 누굴 원망하거나 비방하진 말고 외부 목소리를 경청하는 게 좋겠다. ‘내가 대통령을 왜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파업으로 회사에 ‘천문학적 손해’를 입혀 ‘죽음의 손배소’를 무릅쓰거나 출근길 지하철 지연운행을 반복시켜야 겨우 주목받을 수 있는, ‘힘없고 빽 없어서’ 대변되지 않는 이들이 우리 사회엔 수두룩하다.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만큼이나 해야 할 일이 많다.

 

김태규 | 정치팀장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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