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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거머쥔 배우 윤여정의 어록을 총정리했다. 그는 '배우고 싶은 어른'이다

당신의 맘속에 미나리 같은 애정의 씨앗이 뿌려질 테다.

  • 황혜원
  • 입력 2021.03.15 21:24
  • 수정 2021.04.26 12:07

[업데이트] 26일 오전 11시 58분

25일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윤여정 
25일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윤여정  ⓒPool via Getty Images

배우 윤여정은 20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미디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인 수식어와 대중의 반응이랄까. 까탈스럽게 돌직구 날리는 잘난 척 쟁이라고 부를 땐 언제고, 어느새 재치와 현명함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성실한 배우라고 칭송한다. 격세지감이란 말보다 오히려 배신감이란 감정이 들지 않을까? 윤여정에게 이런 미래가 올 거라고 예상했냐고 묻는다면, ”어머 얘 내가 알았겠니?”라며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라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위트있고 솔직한 윤여정 특유의 화법은 tvN ‘윤식당‘, ‘윤스테이’를 통해 부각되면서 최근엔 ‘윤며들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윤며들다는 ‘윤여정에게 스며들다’라는 말의 축약어로 영어로 손님을 접대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따뜻함과 재치를 잃지 않는 그를 향한 젊은이들의 찬사다.  

25일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윤여정  
25일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윤여정   ⓒPool via Getty Images

과연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궁금증에서 비롯된 애정은 물먹은 미나리처럼 쑥쑥 솟아났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그의 인터뷰들을 찾아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의 말들은 이상하게도 삶을 뒤돌아보게 했고, 가끔은 누군가를 원망하게도 했으며, 결론적으로 나를 더욱 사랑하자는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굴곡진 삶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는 ‘즐겁게 살자‘고 말한다. ‘너도, 나도 힘들지 않은 날들이 없다’고 말한다. 인생은 ‘고행‘이라고, ‘불공평‘한 거니까 그리 알라고. 그러니까 ‘우리끼리 서로를 해치지는 말자’고 말이다. 비범한 그가 평범하게 말하는 것들은 가슴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래서 그를 따라 솔직하게 말해보련다. 이것은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윤여정 선생님에 대한 사심을 담은 ‘윤여정 어록 모음집’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미나리같은 애정의 씨앗이 뿌려지기는 바라면서 적는 글이기도 하고. 읽고 가만 있을 수 없을 테다.

 

2021. 2. 22
‘보그 코리아’ 인터뷰 중

웃고 살다 죽기로 결심했어요

위트와 유머는 타고난 건지, 길러진 건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윤여정이 한 말. 그는 ”살다 보니 힘들어서 사람도 웃기고 즐거운 애들만 만나요. 심각하게 앉아서 영화를 논하자는 애들은 멀리 피하고”라고 덧붙였다. 윤여정은 일전에 ‘꽃보다 누나’에서도 ”난 웃고 살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 '다른 나라에서'로 제65회 칸영화제에 참석했던 윤여정. 레드 카펫 위에서 유준상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서 있고, 그들의 왼편으로 함께 영화를 찍은 프랑스 국민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보인다.
영화 '다른 나라에서'로 제65회 칸영화제에 참석했던 윤여정. 레드 카펫 위에서 유준상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서 있고, 그들의 왼편으로 함께 영화를 찍은 프랑스 국민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보인다. ⓒGetty Images

 

2017. 10. 18
tvN 현장토크쇼 ‘택시’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근데 그 서러움을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아.

나는 내가 극복했어

이영자가 윤여정에게 이혼 후 복귀했을 때 주변 동료들로 인해 서러웠던 적이 없었는지 물었다. 일례로 선후배들이 김혜자와 윤여정에게 인사하는 방식이 달랐을 정도로 차별 대우가 심했던 상황. 이에 윤여정은 ”그런 서러움 너~무 많았지, 얘 영자야 너는 서러움 없었니?”라고 물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2003. 04. 14
KBS1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

계획 없어요.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되더라고요

인간 윤여정에게 삶의 계획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가 한 대답. 당황한 김동건 아나운서가 ”지금까지 그랬습니까?”라고 묻자 윤여정은 ”그냥 ‘조금 큰 꿈은 이랬으면 좋겠다’ 싶었던 적은 있었는데 이제는 꿈을 안 꿔요. 인생은 제 뜻대로 제 계획대로 안 된다는 걸 알아서”라고 답했다. 이에 김 아나운서가 ”그러니까 내일은 생각 안 하는 겁니까?”라고 덧붙이자 그는 ”그냥 하루하루를 나 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뭐 종착역으로 가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죽음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꿈을 뭐 여자 대통령이 돼보겠다 그럴 수도 없고”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개구쟁이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윤여정의 모습. 19년 전이다.
개구쟁이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윤여정의 모습. 19년 전이다. ⓒKBS1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

 

2003. 04. 14
tvN ‘꽃보다 누나’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

그는 특히 ‘꽃보다 누나’ 여행 중에 많은 어록을 쏟아냈는데, 함께 여행하며 삶과, 커리어,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던 덕분이었다. 그는 당시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냐”면서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고. 내 인생만 아픈 것 같고 그런데, 다 아프고 다 아쉬워”라고 말하면서 누구에게나 한번뿐인 삶의 의미와 어려움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2017. 10. 18
tvN 현장토크쇼 ‘택시’

나는 나같이 살다 가면 되잖아

50대에 접어든 이영자가 삶이 어렵다고 한 얘기에 윤여정이 한 말.  그는 ”그냥 나는 늘 주장이 나는 나 같이 살다 가면 된다. 이영자는 이영자 같으면 되는 거고, 오만석은 오만석 다우면 되는 거고. 언제부턴가 롤모델이 생겨서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난데, 왜 그 사람 흉내를 내냐”면서 자기답게 살기를 주장했다. 이에 오만석이 ”많은 사람의 롤모델로 불리지 않냐”는 말에 ”미쳤지 걔네들이, 날 자세히 몰라서 그러지”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윤여정은 늘 자기 자신으로 살 것을 주장해왔다. 누가 왔던 길을 따라 가지 말고 자신의 소신껏 살아가는 게 좋다는 것.
윤여정은 늘 자기 자신으로 살 것을 주장해왔다. 누가 왔던 길을 따라 가지 말고 자신의 소신껏 살아가는 게 좋다는 것. ⓒtvN 현장토크쇼 ‘택시’

 

2013. 05. 07
SBS ‘최화정의 파워타임’

어떻게 만인이 나를 좋아해.

일찍 죽어요. 그럼

‘윤여정 너무 싫어’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냐는 말에 윤여정은 ”난 상관없어요”라며 ”싫은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어떻게 만인이 다 나를 좋아해? 일찍 죽어요 그럼”이라고 답했다. 그는 앞서 뒷담화를 들은 적이 있냐는 말에 ”저 혼자 잘난 줄 안다더라, 돈도 없는데 왜 저렇게 (명품)을 사고 다닌다는 둥. 내가 벌어서 내가 산다는 데 뭘 어디서 꿔서 사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벌어다 준 돈을 방탕하게 쓴 것도 아니라서 난 별로 뒷담화라고도 생각 안 했어요. 잘난 척하는 게 낫지 비굴한 것보다”라고 밝혀 그가 지금까지 무수한 오해와 말들을 듣고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09. 12. 09
MBC ‘무릎팍도사’ 중

배우 역시 돈이 급할 때 가장 연기를 잘하는 법이다

뛰어난 연기력을 만든 건 ‘배고픔‘이었다고 밝히며 했던 말.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기자들은 ‘돈이 필요해서 연기를 했다’는 말을 지금이나 당시나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생계형 배우”라면서 ”예술은 잔인한 것. 예술가는 배가 고프고 돈이 급할 때 좋은 작품을 만든다. 화가들을 봐라. 명작들은 배고플 때 나온다”라고 운을 떼면서 ”배우 역시 돈이 급할 때 가장 연기를 잘하는 법이다. 내가 그토록 혼이 실린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고 당시의 속사정을 털어놨다.

제65회 칸 영화제에서 열린 영화 '돈의 맛'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윤여정의 모습. 당시 윤여정은 출연한 영화 '다른 나라에서'와 '돈의 맛'이 동시에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제65회 칸 영화제에서 열린 영화 '돈의 맛'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윤여정의 모습. 당시 윤여정은 출연한 영화 '다른 나라에서'와 '돈의 맛'이 동시에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Getty Images

 

2018. 01. 13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인터뷰 중

어른이 어른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해요.

애들처럼 똑같이 욕심 안내고, 밥값은 내가 내고

일흔이 넘었는데도 젊은이들과 잘 어울리며 사랑받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 말. 그는 ”내가 젊은이들을 좋아해요”라며 ”우리는 전쟁을 겪었고, 먹고사는 데 급급해서 촌스러운 게 있잖아. 그런데 젊은 애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막 신통하고 장하고 그래요”라며 ”난 뭐 대단한 어른은 못돼요”라고 답했다.

 

 

2017. 05. 11
허프포스트 인터뷰

제가 터득한 진리 중 하나는

연습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촬영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경상도 사투리’에 도전하는 심정을 물었더니 그는 ”천부적인 사람들이 가끔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걸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면서 ”그러니 노력, 노오력하지 않으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사실 도전은 그의 연기 여정을 정의하는 키워드로 보인다. 50대에는 ”배우는 쉬운 연기를 하고 있으면 망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라며 답습하기 쉬운 비슷한 역할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고, 60대에는 ”경력이 쌓이면 기술은 좋아지지만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70대에는 ”내가 환경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며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떠나갔다.

'미나리' 홍보차 '문명특급'에 나온 윤여정이 면전에 험담하던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미나리' 홍보차 '문명특급'에 나온 윤여정이 면전에 험담하던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문명특급' 인터뷰

 

2021. 02. 25
문명특급′ 인터뷰 중

우월감하고 열등의식이 같이 가는 거거든요. 그거 하지마.

‘문명특급’ 인터뷰는 그의 말 하나하나가 명언급이었다는 호평을 받으며 공개 20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230만을 넘어섰다. 이날 그는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서 ”말라도 너무 말랐다”라며 면전에서 혹평을 날린 행인을 만났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행인과 같이 있던 친구가 ”대놓고 그런 얘길 하니?”라고 타박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뭐 어때 연예인인데?”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했다. 윤여정은 ”그 행인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임에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씁쓸해했다. 이를 들은 재재는 ”요새도 똑같은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우리 때 사람들은 촌스러워서 그랬다 치지만, 그건 열등의식이다. 우월감하고 열등의식이같이 가는 것인데 자기네들은 그러지 말아야 해”라고 말했다.

 

2021. 02. 15
미국 주간지 ‘옵저버’ 인터뷰 중

상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미나리’로 상을 휩쓴 그에게 현재 당신의 커리어에서 권위있는 상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혹은 작품 자체에 더 집중하는 편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상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내겐 새로운 일과 프로젝트가 보상이에요. 물론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순간엔 매우 행복하겠죠. 하지만 저는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새 직장을 구하면 그게 제 보상입니다.(웃음)”라며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2015년 3월 26일, 영화 '장수상회'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여한 윤여정. 발걸음이 당차다.
2015년 3월 26일, 영화 '장수상회'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여한 윤여정. 발걸음이 당차다. ⓒGetty Images (Photo by Han Myung-Gu)

2021. 03. 02
tvN ‘온앤오프

난 한국 사람, 한국 배우 윤여정이다

한 외국매체의 기자가 영화 ‘미나리’ 관련 온라인 인터뷰에서 윤여정에게 ”한국의 메릴스트립이라 불리던데?”라고 물었던 것에 대한 대답. 윤여정은 직접 영어로 ”그분과 비교된다는 데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배우다. 제 이름은 윤여정이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들끼리 비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칭찬에는 감사드리지만, 제 입장에선 답하기 어렵다”라는 세련된 답변으로 패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미나리’의 주연배우와 감독이 피자 헛 라운지에서 초상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미나리’의 주연배우와 감독이 피자 헛 라운지에서 초상화 포즈를 취하고 있다. ⓒGetty Images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은 하퍼스 바자의 인터뷰에서 윤여정에 대해 “CF를 찍거나 돈 많이 줄 영화를 소개할 PD님들을 더 자주 보고 살면 좋으실 텐데 우리 같은 아웃사이더를 챙기시느라. 그런데도 작업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 능력과 재능을 떠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책임감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이어 ”선생님이 겉보기에는 까칠해도 누구보다 마음이 약하고 안된 사람을 안쓰러워 하시죠. 원래 고생한 사람 마음은 고생한 사람이 안다고, 본인의 힘들었던 연기 생활을 떠올리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모른 척 못하십니다”라며 ”검증 하나 안 된 제 영화에 출연료 없이 나와주신 건 시나리오가 좋아서도 아니고 (열심히 고생하며 일해왔던) 저를 눈감지 못하셨기 때문일 거예요”라고 감사를 덧붙이기도 했다.

″육십 넘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영화 찍기로 마음먹었다”며 ”그것이 내가 누리는 가장 큰 사치”라고 말하는 배우 윤여정. 물질적 가치를 최고의 보상으로 여기는 이 사회에서 윤여정은 변함없는 가치를 지키며 오늘도 노력하고 또 나아가며 20년 전처럼 지금,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갈 것이다. 누구보다 변화하며.

 

황혜원: hyewon.hwang@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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