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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아버지, 밖에선 호인이지만 집에만 오면…." 양치승 관장이 어릴 때 '등교 1등' 이었던 건 단지 부지런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말문이 턱 막히는...

양치승-오은영 박사 
양치승-오은영 박사  ⓒ채널A

양치승 관장이 어린 시절 ‘등교 1등’이었다고 고백했는데, 단지 부지런했기 때문이 아니다.

12일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한 양치승 관장은 ”아버지가 밖에서는 굉장한 호인이었는데, 집에만 오면 사실 0보다 더 밑에 있는 사람이었다”라며 어린 나이에도 집에 있기 힘들어 학교에 제일 먼저 등교했다고 털어놓았다.

학교에서는 마음 편히 놀 수 있어 등교 1등이었던 양치승 
학교에서는 마음 편히 놀 수 있어 등교 1등이었던 양치승  ⓒ채널A
양치승 관장 
양치승 관장  ⓒ채널A
양치승 관장 
양치승 관장  ⓒ채널A

안정적인 수입의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그러나 양치승 관장의 어머니는 새벽부터 공장에 나가 다음날 새벽에 들어올 정도로 힘들게 살아야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양치승 관장은 ”월급봉투를 들고 오다가도 밖에 힘든 사람이 보이면 봉투를 통째로 주고 집으로 들어온다. 밖에서는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 없다‘고 하지만 저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말 싫었다”라며 ”지금도 잠귀가 밝은데 아버지가 늦은 귀갓길에 저희가 자고 있으면 ‘내가 오기 전에도 잠을 자?’ 난리가 났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양치승은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를 향해 ”도망가라”고 할 정도였는데, 어머니는 자식을 두고 차마 집을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 같은 모습은 단지 일시적인 게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양치승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리고 몇해 전 세상을 떠날 때까지 70 평생 지속된 모습이었던 것.

양치승 관장 
양치승 관장  ⓒ채널A
양치승 관장 
양치승 관장  ⓒ채널A
양치승 관장 
양치승 관장  ⓒ채널A

양치승 관장은 ”나이 들면 성격이 좀 유해지기 마련인데, 저희 아버지는 70대가 되어도 똑같았다. 십몇 년 전에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도저히 못 살겠어서 찾아가서 ‘제발 나가 달라’고 얘기했다. 그리고선 8년을 만나지 않았다”라며 ”몇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양치승 관장은 ”죄송한 말이지만, 사실 (부고를 듣고) 마음이 편했다. 답답한 게 없어지는 느낌이었다”라고 밝혔고, 오은영 박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느꼈던 솔직한 마음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느꼈던 솔직한 마음  ⓒ채널A
양치승 관장 
양치승 관장  ⓒ채널A

오은영 박사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식이 그렇게 반응할 수 있나’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엄청나게 힘들게 한 사람이고, 이는 어떠한 설명으로도 납득이 안 된다”라며 ”이혼을 하려고 해도 자식 다칠까 봐 못 하는 경우도 많고 그럼 결국 이 비극은 누가 숨져야만 끝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치승 관장 
양치승 관장  ⓒ채널A
오은영 박사의 위로 
오은영 박사의 위로  ⓒ채널A

이어, 양치승 관장을 향해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이제 어머니도 편히 숨 쉬고 사실 거라는 그런 마음이 왜 안 들었겠느냐”라며 ”저는 정말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위로를 전했다.

 

곽상아 : sanga.kwa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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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아버지 #양치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