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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kg 철판에 깔려 세상 떠난 23살 이선호씨 아버지는 “아들의 허망한 죽음 반복돼선 안 된다”고 절규한다

아버지가 휴대전화에 저장한 아들의 이름은 ‘삶의 희망’이었다

  • 이인혜
  • 입력 2021.05.07 10:02
  • 수정 2021.05.07 13:50
경기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작업을 하다 300㎏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이선호(23)씨와 아버지 이재훈(62)씨의 생전 모습.
경기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작업을 하다 300㎏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이선호(23)씨와 아버지 이재훈(62)씨의 생전 모습. ⓒ한겨레/ 이재훈씨 제공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일을 하게 된 건 지난해 1월부터였다. 대학교 3학년 아들 이선호(23)씨가 군대에서 제대한 뒤 코로나19로 등교가 어려워진 상황 등을 이유로 틈틈이 아버지 이재훈(62)씨가 다니는 인력사무소에 나갔다. “친구처럼 같이 아침밥 먹고 차 타고 다닐 수 있어서” 아버지는 기뻤다.

6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만난 재훈씨는 2017년부터 약 4년 동안 인력공급업체 ‘우리인력’의 작업반장으로 일해왔다고 한다.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와 관련한 각종 작업, 내용물 검수 등의 작업을 했는데, 업무 지시 대부분은 원청인 물류업체 ‘동방’이 내렸다. 동방 직원들이 재훈씨한테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업무를 알려주고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면 재훈씨가 적합한 사람을 찾아주는 식이었다. “형식상으로는 외부인력업체 우리인력 소속이었지만 실제 작업 지시는 모두 동방에서 받았어요. 세관 공무원 오면 제가 직접 설명할 때도 있었고요.”
현행법상 원청이 도급계약을 맺은 하도급업체 직원을 파견업체 직원처럼 지휘·감독하는 건 불법이다. 동방이 우리인력 직원들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하는 경우도 불법 파견 소지가 있다. 지난달 22일도 그런 ‘불법 파견’ 행위가 이뤄진 날이었다.
재훈씨와 또 다른 현장 노동자 ㅇ씨, 동방 쪽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달 22일 오후 3시41분께 동방의 현장 관리자가 재훈씨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뭘 하나 뽑아야 하니까 도구 좀 갖고 아까 작업했던 곳으로 한 명 보내달라”고 했다. 개방형 컨테이너의 양쪽 날개를 접어야 해 안전핀을 제거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개방형 컨테이너는 천장 없이 앞뒤면만 고정해 비규격 화물을 운송하는 용도로 쓰인다. 재훈씨는 그 일을 오랫동안 해온 숙련 노동자 ㅇ씨를 떠올리고 그에게 직접 연락하려다 “하필 눈앞에 아들이 있어서” 아들을 대신 ㅇ씨에게 보냈다. “너 ㅇ아저씨한테 가서 도구 들고 저쪽으로 가라고 전달해라.”

사고 당시 상황 
사고 당시 상황  ⓒ한겨레

 

그런데 ㅇ씨는 ‘혼자 하기 힘들다’며 선호씨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오후 4시께 선호와 ㅇ씨가 양쪽 날개가 펼쳐져 있는 개방형 컨테이너와 지게차 기사 두 명이 있는 수출입화물보관 창고 앞에 도착했다. ㅇ씨가 컨테이너의 안전핀을 일부 제거하고 일어나려는데 지게차 기사 한 명이 “컨테이너 양쪽 구멍에 들어간 나뭇조각을 주우라”고 말했다. 그는 동방에 소속된 기사였다.

3년 동안 개방형 컨테이너와 관련한 작업을 해온 ㅇ씨는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지시를 받아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ㅇ씨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게차 기사는 재차 ‘저기 있는 쓰레기를 주우라’는 제스처를 했다고 한다. 선호씨가 “그래도 시킨 일이니까 하겠다”며 나뭇조각이 있는 작은 구멍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때가 4시10분. 선호씨가 나뭇조각을 빼내려는 순간 맞은편에 있던 지게차 기사가 선호씨를 보지 못한 채 컨테이너 한쪽 날개를 접었다. 그 뒤 이 한쪽 날개가 접히는 진동 여파로 선호씨가 서 있던 반대쪽 날개가 함께 접혔고, 선호씨의 몸을 덮쳤다. 날개 하나의 무게는 300㎏이었다.

 

안전 관리가 하나도 되지 않았다

선호씨의 작업 과정을 보면, 현장을 운영한 물류회사 동방의 안전관리와 국가기간시설인 평택항의 안전예방 조처가 부실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개방형 컨테이너를 다루는 과정 일체는 선호씨가 평소 하던 업무가 아니었다. 선호씨는 평소 평택항에 들어오는 컨테이너의 내용물을 꺼내서 검수하는 일을 주로 맡아 왔다. 하지만 이날 처음 투입되는 현장의 위험성을 미리 숙지하도록 하는 안전 교육은 없었다. 지게차와 같은 중장비가 사용되는 현장은 작업 지휘자나 작업 유도자를 반드시 둬야 한다. 현장엔 이런 인력도 없었다. 동방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현장 관리자는 사고 당시 옆 컨테이너에 있었다”고 말했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작업계획서에 따라 절차를 지키면서 해야 했는데, 그런 조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지게차 지휘자와 유도자를 배치해야 하는데, 이 조처가 없었던 부분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위반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장비 노후화 문제도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개방형 컨테이너라면 한쪽 날개가 접힌다고 해서 다른 날개가 진동으로 함께 접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동방 쪽은 “문제가 있는 컨테이너 같다”고 했다.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6일 오전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아들의 빈소에서 인터뷰 중 오열하고 있다.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6일 오전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아들의 빈소에서 인터뷰 중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게다가 선호씨는 안전모도 없이 위험한 컨테이너 작업에 들어갔다. 재훈씨는 “이전에도 현장 직원들이 안전모를 쓰거나 안전 교육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동방 쪽은 “안전도구와 장비들을 현장에 비치했지만, 개별 노동자에게 지급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실장은 “개방형 컨테이너는 언제나 날개 작동에 따른 위험이 따른다. 지게차 작업을 할 때 안전한 상태가 아니면 컨테이너 주변 출입을 통제했어야 한다”며 “회사의 안전관리 공백 상태가 만든 원시적 재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가기간시설인 항만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안전 관리 감독 체계도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훈씨는 “항만이 노동자 신원확인 절차를 밟은 적이 없다. 보안교육이나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고, 근로계약서를 써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반면 동방 쪽은 “신원확인 절차 자체는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실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부산·인천·울산·여수 항만 부두에서 1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46명이 중상을 입었다. 김기홍 민주노총 평택안성지역노동위원장은 “항만 일용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안전모를 안 쓰고 작업하는 게 비일비재할 정도로 무방비로 안전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얼굴도 이름도 가리지 말아달라…아들의 허망한 죽음, 대한민국 부모는 다 알아야”

300㎏ 컨테이너 날개가 선호씨 몸을 덮친 뒤, 재훈씨는 당일 오후 5시가 다 될 때까지 선호씨의 죽음을 몰랐다.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직원들이 집에 갈 기미가 안 보이자 ‘오늘 일 참 심하게 시키네’ 하며 현장을 돌아보던 중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컨테이너가 바닥 가까이 기울어 있었고 그 밑에 “자는 듯이 엎드린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재훈씨는 잠시 ‘아들이 뭘 줍고 있나’ 생각했다. 곧 그런 모습으로 물건을 줍고 있어서는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려던 그가 말했다. “이거 뭐고. 죽은 기가. 죽었나.” 재훈씨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선호씨는 119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의사는 “이 정도면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저는예, 죽겠더라고요. 애 엄마한테 가서 이 믿기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얘기를 해야 될 지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집으로 가서 아내 앞에 꿇어앉아서 ‘선호 죽었다’고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라면서, 아내가 그 순간에 미치더라고요.”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6일 오전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아들의 빈소에서 인터뷰 중 `삶의 희망‘으로 저장된 아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들어보이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6일 오전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아들의 빈소에서 인터뷰 중 `삶의 희망‘으로 저장된 아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들어보이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아버지가 휴대전화에 저장한 아들의 이름은 ‘삶의 희망’이다.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고 올바르게 커 줬던, 친구처럼 지냈던” 아들이었고 “저녁에 집 갈 때면 아버지한테 똥침을 놓던”, 하나 뿐인 누나에게도 살가웠던 장난기 가득한 아들이었다. 그런 재훈씨 삶의 희망을 “국가와 회사가 무참히 강탈해 갔다.” 재훈씨는 얼굴도, 이름도 가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의 허망한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고, 자식을 둔 대한민국의 부모는 이 일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고 이선호군 산재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이날 평택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의역 고 김군, 태안화력 발전 고 김용균 건설노동자 등에 이어 이선호군까지, 우리는 꽃다운 젊음의 죽음을 왜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가”라며 “코로나19 (사망자)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비용 절감이라는 논리 아래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채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죽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평택/신다은 기자, 박준용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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