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포스트 코리아는 세월호 침몰 2주기를 앞두고, 동거차도에서 인양 과정을 감시하고 있는 416가족협의회의 아빠들을 찾아 4월 8일부터1박 2일 동안 함께했다. 본 기사는 연작 기사의 세 번째 편이다.'
[세월호 2주기] 동거차도의 아빠들_1 아직 그곳에는 아빠들이 있다.(동영상)보기
[세월호 2주기] 동거차도의 아빠들 : 2 이 아빠의 독백을 들어라(동영상)보기
어선을 타고 넘실대는 파도를 넘어 한 시간, 비좁은 산길을 다시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이곳을 작년 9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명칭은 '416가족협의회'다.
416가족협의회는 작년 9월, 세월호에 대한 인양 준비작업이 시작될 무렵부터 침몰 지점에서 약 1.6km 떨어진 동거차도의 야산에서 인양 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가족들끼리 조를 짜 1주일 동안 머무르며, 보통 같은 반 부모들로 구성된다.
동거차도의 아침은 자욱한 안개로 시작됐다.
안개가 뿌려지고 다시 걷히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바지선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다른 반 부모들은 라면 같은 걸로 때우신다고 하는데 우리 반은 든든히 먹으려고 해요. 그래야 버틸 수 있으니까.”
분주히 식사를 준비하며 예슬이 아빠가 말했다.
일주일치 식량을 산까지 올리는 것도 큰일이기에 적절히 나누어 먹는 것도 중요하다.
전날 몇 번 씩 나누어 올린 짐이 상당했지만, 일주일을 지내려면 아껴야 하기에 간단히 세수와 양치를 할 수 있을 뿐 머리를 감거나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빠들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산 아래로 향했다.
“동거차도가 지금 미역 수확이 한창이에요. 일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도와주러 가는 길입니다.”
“주민들 모두 정말 고마운 분들이거든요. 필요한 것들을 빌려 주시기도 하고, 항상 저희를 가여워하시고…”
“예슬아, 저것 좀 줘.”
“소연이 형님, 참 좀 드시고 하세요. 예진 아빠도 이리로 와요.”
잠시 작업을 쉬는 틈을 타, 전날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아빠들은 이름이 없었다. 아니, 아빠들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우리가 이 사건 이후로 만나게 됐거든요. 그전에는 서로 몰랐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 이후로 누구 아빠 부르게 되던 게 계기가 된 거죠.”
예진 아빠가 담담히 얘기했다.
“우리가 서로 아이들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아이들을 기억하자는 의미도 돼요. 서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좋고, 누가 예진이를 불러 주면 더 좋고.”
예슬 아빠는 4월 16일에 마흔여덟 번째 생일을 맞는다.
“제가 4월 16일에 마흔여덟이 되거든요. 앞으로 제가 삼십 년을 더 살면 예슬이 하고 지금 제 나이가 똑같아요. 우리 애가 18년 밖에 못 살았으니까.”
“남은 인생은 나 자신의 인생보다 예슬이 인생으로 살아가고 싶은 거지. 그래서 난 내 이름은 중요하지않다고 생각해요. 예슬이 아빠, 예슬이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2 년이 지났다.
그리고 2주기를 추모하는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2년에 지난 4월일지 몰라도, 동거차도에서 만난 아빠들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머물러 있는 듯 보였다.
[세월호 2주기]동거차도의 아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