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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수면의 질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증거와 그 이유

  • 박세회
  • 입력 2016.04.05 14:11
  • 수정 2016.04.05 14:16

스탠퍼드 대학의 수면장애협회를 설립한 윌리엄 C. 디멘트 박사는 25년 전 어느 날, 전날 4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 실험대상자를 데려다가 눈꺼풀을 테이프로 고정하고 눈앞에 플래시를 댄 채 평균 6초 간격, 그러나 랜덤하게 터뜨리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출처 : 수면의 약속). 플래시가 터지면 손에 쥔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는데, 대상자는 플래시에 맞춰 버튼을 잘 누르다가 시간이 지나자 눈을 뜬 채로 동공이 열리더니 마지막 세 번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왜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나요?"

"플래시가 터지지 않았으니까요."

수사적으로, 수면이 정말 부족하면 사람은 눈이 먼다. 과학적으로는? 뇌가 신경과의 연결 고리를 끊는다. 정말 졸리면 동승자도 눈치채지 못하게 눈을 뜨고도 졸음운전을 할 수 있다는 섬뜩한 얘기다. 이런 극단적이 경우 말고도 수면 부족의 폐해는 심각하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잠을 못 자면 혈압이 올라가고 심박동이 증가하며, 소화와 신진대사에도 영향을 줘서 고혈압, 뇌졸중, 심장마비, 당뇨병의 영향이 될 수 있다. 또한, 행동이 느려지고 학습을 할 수 없으며 살이 쉽게 찐다. 게다가 정말 무섭게도 성욕이 감소한다.

어쩌면 아직도 지나치게 극단적인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디멘트 박사의 '수면 빚' 개념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말 그대로다. 모자란 수면은 빚처럼 쌓인다. 언젠가는 뇌가 의식의 문을 노크도 없이 열고 들어와 차압 딱지를 붙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인 성인의 권장 수면 시간은 7~8시간. 한국갤럽이 2015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40대가 6시간 37분으로 가장 짧고, 이어 50대 6시간 45분, 30대 6시간 56분이었다. 다들 빚을 지고 사는 격이다. 30대의 경우 '그래 봐야 4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르게 얘기하면 7시간도 못 자고 매일 뇌에게 빚을 지는 과반의 사람들(물론 중간값이 아니니 정확하지는 않다)이 자동차라는 흉기를 몰고 도로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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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그딴 거 걱정하지 않는다. 우린 정말 낙천적이다. 통계청의 태도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면 시간이 OECD 18개국 중에 최하위라는 기사를 봤을 때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통계청이 조사한 우리나라의 평균 수면 시간이 7시간 39분이라는 걸 알고는 그 천진함에 당황했다. 대체 우리나라에서 누가 하루에 7시간도 넘게 잔단 말인가? 직접적인 비교에는 무리가 있지만 덜 낙천적인 서울시에서 조사한 서울 청소년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6분이었다. 과연 한국갤럽의 조사 대상자들과 서울의 청소년들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걸까? 7시간 39분은 조사 대상에 몰래 나무늘보나 판다를 몇 마리 끼워 넣지 않고는 납득할 수 없는 수치다.

"한국인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들"_이 동영상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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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잠을 꽤 못 자는 편이다. 다만 우리와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슬립 사이클'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아침에 가장 나쁜 기분으로 일어나는 국가'로 꼽혔으며 불면증 또는 수면의 질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지난 2015년부터 'Sleep + Wellness'라는 빅뉴스 페이지를 만들고 수면에 관한 책 발간을 준비하는 등 잠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해왔다. 허핑턴포스트 US는 지난해 수면에 관한 기사를 400여 개 발행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문제의식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게 드러난다. '전문가가 얘기하는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잤을 때의 문제점', '알람시계는 당신의 생체시계를 교란할 수 있다', '잠들기 가장 좋은 시간은?' 등이다. 정말 필요한 이야기들이지만, 이상하게 이런 기사들을 번역했을 때 한국인 독자들은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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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인은 '수면의 질' 따위에 신경을 쓸 수가 없는 걸까? 한국은 OECD 회원국 34개 가운데 멕시코(2,228시간)에 이어 2,124시간으로 노동시간 2위를 차지했다. 우리의 불만은 이 2,124시간이란 통계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수치라는 점이다. 수면 시간은 그렇게나 낙천적이고 노동 시간은 왜 이리 보수적인가? 주 5일을 기준으로 연간 근무일을 230(365-법정 공휴일-연차-정기휴가)일로 계산하면 하루 평균 9시간가량 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내가 아는 직장인 중에 하루 평균 9시간만 일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뭐 이것 역시 내가 서울에 사는 청소년 같은 비관적인 심정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지금 한국인에겐 무슨 속옷을 입고 언제 자야 좋은지, 알람시계 때문에 생체리듬이 망가지지는 않을지 걱정할 겨를 조차 없다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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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데이터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나만 그런가? 혹시 다른 사람들은 수면의 질을 엄청나게 신경 쓰는데 나만 그런가 싶어 좀 찾아봤다.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는 2016년에 들어서만 약 20개의 수면 관련 기사('남편과 잘 때 하는 생각 5가지' 같은 건 뺏다)를 발행했는데, 그중 구독자 수로 500위권 안에 든 기사는 '자기 전에 먹으면 잠이 잘 안 오는 간식'(43위) 단 하나다. 수면에 관한 기사 중에 가장 인기 있는 기사의 관심도가 'A4 용지를 7번 접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40위)보다도 더 낮다는 게 현실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전통적이고 고질적이고 강제적인 회식과 야근을 금지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국민들에게 돌려줄 방법을 찾는 작업이다. 그러면 한국인은 그 저녁 시간에 술을 마실지 잘지는 알아서 결정할 것이고, 또 무슨 속옷을 입고 잘지도 마침내 결정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PS. 최근 넷플릭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의 1~4시즌이 한꺼번에 정식 번역으로 풀린 게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수면 부족의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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