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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알파고'가 나오기 힘든 3가지 구조적 이유

  • 허완
  • 입력 2016.03.15 14:52
  • 수정 2016.03.15 15:06

‘알파고 대국’을 계기로 정부가 인공지능(AI) 육성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정부의 대책을 주문하는 의견도 쏟아진다.

한국에서 알파고 같은 기술이 나오기 힘들었던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이유들은 모두 구조적이다. 단기간에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뜻도 되고, 이제부터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이 분야에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덧붙이자면, 이 문제들은 인공지능 분야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 수 있다.

1. 사람이 없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 ⓒAP

알파고는 구글이 인수한 자회사 딥마인드의 작품이다. 딥마인드를 세운 데미스 허사비스는 영국 칼리지런던대학에서 인지신경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대열 예일대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이 곳은 이 분야의 “세계적 대가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딥마인드가 “영국에서 출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반면 국내에는 AI 분야 전문가가 많지 않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국내외에서 배출되는 박사급 인력은 한 해 20~30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된다. 인공지능 연구에 필수적인 기초학문 분야도 기초가 허약하다는 평가다. 그러다보니 연구인력 규모에서 격차가 날 수밖에 없다.

이식(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인공 지능을 연구하기 위해선 수학이라든지 뇌과학, 물리학, 알고리즘 같은 기초 학문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그쪽 인력들이 저희가 많지 않습니다." (KBS뉴스 3월12일)

구글의 AI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한국 사회를 강타한 첫 주말인 13일.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국내 정보기술(IT) 업계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연구개발(R&D)센터를 찾아 AI 분야의 연구 현황을 브리핑 받았다. 이 자리에서 연구원들은 국내에서 AI 분야의 인력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했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AI 연구자는 각각 100명 수준으로 구글의 자회사인 딥마인드(150명)보다도 적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3월15일)

‘돈 되는 학문’에 밀려 홀대받기 쉬운 기초학문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미국은 1957년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를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미 항공우주국도 그렇게 창설되었다. 뿐더러 수학과 과학 같은 기초학문의 교육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알파고 쇼크’를 극복하는 길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일수록 플랫폼으로서의 기초학문이 더욱 중요하다. (한국일보 칼럼 3월13일)

2. 투자가 없다

구글은 지난 2014년 딥마인드를 인수했다. 7000억원 가량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설립된지 4년도 안 됐고 직원이 50명에 불과했으며, 당장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닌 ‘정체불명’의 기업에 거금을 투자한 것. 당시 딥마인드 홈페이지에는 ‘최첨단 인공지능 회사’라는 소개가 전부였다.

이 때문에 당시 업계에서는 추측과 해석이 분분했다. 지난해 가을, 테크인사이더는 딥마인드를 구글의 ‘황당한 인수 10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구글은 인수 이후에도 수천억원을 투자해 연구에 매달렸고, 이번 알파고 대국을 계기로 자신들의 투자가 옳았음을 입증했다. ‘인공지능 연구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건 덤이다.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국에서라면 어땠을까?

우선 국내에는 ‘대기업은 이런 식의 투자에 인색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구글이 2014년 1월 영국의 벤처기업에 불과한 딥마인드를 인수한 점은 국내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확실한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은 대기업 자본과 손을 잡는다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국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협력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대기업과 협력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35.2%가 '중소기업 보유기술에 대한 부당한 평가'를 꼽았다.

협력 추진이 일회성에 그치고(23.1%) 대기업의 이익분배가 불공평하다(16.5%)고 지적한 기업도 적지 않다. 14.3%는 대기업이 자신의 원천기술을 탈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스1 월15일)

물론 삼성전자네이버 같은 대표적인 IT 관련 기업들은 핵심 기술을 보유한 국내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는 추세다. 일례로 ‘삼성페이’는 삼성전자가 인수한 ‘루프페이’의 핵심기술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 돈이 안 되는’ 투자에는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경향도 있다는 평가다. 한정된 투자 재원에서 비롯된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장기적이고도 대담한 투자가 그만큼 부족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네이버 등이 AI 연구에 대거 참여하고 있지만, 목소리 인식, 기계번역, 빅데이터(대용량 전산 자료) 분석 등 몇몇 인기 분야에 R&D가 집중된 상태다.

반면 알파고로 세계 최고의 AI 기술력을 과시한 구글은 ▲ 신체 정보 분석을 통한 중병 예측 ▲ 자율주행차 ▲ 로봇 이메일 ▲ 동영상 데이터베이스(DB) 자동 조직화 ▲ 전염병 전파 및 기상 예측 ▲ 웨어러블 기기의 사용자 인지 기능 등 다양한 연구 주제에 거금을 쏟아붓고 있다. (연합뉴스 3월15일)

3. 비전이 없다

인력 부족과 투자 부족 문제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장기적 관점과 시각, 즉 비전이 없다는 것. 이건 정부도 마찬가지이며, 이런 비전 부재가 과학기술 연구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대학 5곳(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카이스트, 포스텍)이 공동선언문을 내기로 했다. 정부가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그 실적을 평가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정부 지원금은 대학의 연구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2014년을 기준으로 서울대는 전체 연구비의 85%를 정부 지원금에 의존한다. 카이스트는 62%, 포스텍은 68%에 달한다. 그러나 이 연구비가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등 5개 대학은 이런 한계에 봉착한 주요인으로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양적 평가 풍토를 꼽았다.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는 과제를 선정하면서 논문 수나 연구 과제의 성공 여부 등을 계량 평가하는 관행이 우리 과학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3월15일)

보도에 따르면 성노현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과학자들에게 강요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는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정완균 포스텍 연구처장은 “연구자들이 정부가 원하는 사업 방향에 맞춰 2~3년 안에 성과를 내는 쪽으로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벨상 같은 성과를 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가 ‘알파고 쇼크’에 발맞춰 서둘러 ‘AI 육성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것도 논란 거리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선진창조형 정책을 펴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모방추격형 정책을 펴고 있다”며 “알파고가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우리도 알파고를 개발하자고 나서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조선비즈 3월15일)

미래부는 이런 일들을 급히 추진하느라 AI 전담 팀을 부처 안에 만들고 기업과 대학, 연구 기관들을 수시로 불러 채근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10년, 20년을 내다봐야 할 미래 기술을 정부가 개발 연대식 관치(官治)로 밀어붙이려는 발상부터가 한심할 따름이다. (조선일보 사설 3월15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정부가 "조만간 AI 관련 기업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박근혜 대통령과 간담회를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 신문의 표현대로 "기업과 대학들을 채근해 생색내기식 성과"만 내려고 해서는 "일이 될 리 없다"는 건 너무나도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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