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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덜 포장해도 괜찮아

플라스틱은 핵폐기물과도 같다. 한 번 만들어지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현재 석유 생산량의 약 2%가 플라스틱 포장재 산업에 사용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를 불러온다. 유기농이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려하면 유기농산물의 포장 또한 달라야 한다.

ⓒGettyimage/이매진스

정말 필요한지 생각해 봐요

한국 친환경농산물 소포장

우리가 진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인증표시를 하거나 일반 농산물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통하기 쉽고 판매하기 쉽기 때문에 고민 없이 소포장하는 문제이다. 자연의 순환을 근본으로 하는 유기농에서는 쓰레기를 되도록 만들지 않고 자원을 절약해야 하며, 따라서 포장 역시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인증표시, 반드시 포장에 할 필요 없어

친환경농산물을 소포장하는 이유로 흔히 드는 것이 "인증표시를 하기 위해서"이다. 정부는 전문인증기관이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검사한 친환경농수산물의 안전성을 인증하는 '유기식품 등 및 무농약농수산물 등에 대한 인증제도'를 두고, 인증여부를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표시하도록 한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은 생산방법과 사용자재 등에 따라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유기축산물, 무항생제축산물, 유기가공식품으로 구분되는데 인증을 받은 사업자는 도형이나 글자로 인증표시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의 '유기식품 등의 인증정보 표시방법'에 따르면 인증을 받은 사업자는 인증정보를 인증품 또는 인증품의 포장·용기에 표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인증품을 포장하지 않고 거래하는 경우에는 공급자가 발행하는 납품서, 거래명세서 또는 보증서에 표시할 수 있다. 또 포장하지 않고 판매하거나 낱개로 판매하는 경우에는 해당 인증품 판매대의 표시판 또는 푯말에 인증정보를 표시하고, 인증품이 아닌 다른 물품과 섞이지 않도록 판매대·판매구역 등을 구분하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법제처의 친환경 표시 관련 문답에 따르면 "유기농 과일을 포장하지 않고 낱개로 판매하는 경우 표시판 또는 푯말을 이용해 유기표시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인증정보를 반드시 포장에 표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인증표시를 위해서라면 소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유기농산물을 비롯한 친환경농산물과 일반 농산물이 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포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친환경농산물은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일반 농산물과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거나 친환경농산물 전문유통업체를 통해 주로 거래되어 왔다. 그러나 직거래나 생협 중심에서 대형 마트와 전문유통업체로 취급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일반 농산물이 섞일 가능성이 늘어났고, 소포장으로 친환경농산물과 일반 농산물을 구분하려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친환경농산물만 취급하는 생협이나 직거래를 이용하면 방지할 수 있고, 유통단계가 늘어남에 따라 포장도 같이 많아지는 문제 역시 생협과 직거래 이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해야 한다면 최소한으로, 제대로 하자

농산물 포장의 1차적인 목적은 물품이 손상되지 않고 신선함을 유지하도록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자원을 절약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친환경 농업·산업이라면 이런 목적을 충족하는 최소한의 포장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유통·수송 체계를 정비하여 소포장하지 않아도 온전한 물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체계를 정비하는 사업 초기에는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들 수 있지만 결국에는 생산과 유통 과정을 간소화해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소비자 역시 처음에는 포장 없이 장보기가 불편하고 낯설겠지만, 물품금액에서 포장에 드는 비용이 빠지니 이익이다. 무엇보다 포장쓰레기를 크게 줄여 환경을 살리는 유기농의 가치를 좀 더 실현할 수 있다.

무조건 모든 포장을 없애자는 건 아니다. 꼭 필요한 포장은 하되, 되도록 생분해성 포장재나 재활용·재이용이 가능한 자재를 사용해 제대로 하면 좋겠다. 누군가는 포장을 가장 좋은 마케팅 수단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애쓰고, 투명하고 반짝이는 비닐 등의 자재로 청결하고 안전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하늘과 동업하여 지은" 농산물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최고라는 걸. 유기농에서만큼은 '무포장이 좋은 포장'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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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산물 소포장, 한다면 이렇게

글_사진 문지영(한살림연합)

플라스틱은 핵폐기물과도 같다. 한 번 만들어지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현재 석유 생산량의 약 2%가 플라스틱 포장재 산업에 사용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를 불러온다. 유기농이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려하면 유기농산물의 포장 또한 달라야 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컵(왼쪽): 유기농 요구르트 등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를 담을 생분해성 플라스틱 컵이 등장했다. 옥수수에서 먹지 않는 부분이 원재료로 얼핏 보면 일반 플라스틱컵과 다를 바 없지만, 특별한 과정을 거쳐 발효한 생물 고분자 물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 92주 후면 완전히 썩어 없어진다.

플라스틱 함유율을 줄인 종이포장(오른쪽): 전통적인 육류 포장재는 유기농 여부에 상관없이 플라스틱이었다. 하지만 기존 포장재에 비해 플라스틱 함유율을 70% 이하로 낮춘 이른바 '에코팩' 종이 포장재가 나왔다. 이 포장재에 쓰인 종이는 지속가능한 삼림관리(FSC) 인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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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비포장 슈퍼마켓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 사진 임성욱(한살림경남생협)

2014년 9월 독일 베를린에 문을 연 '오리기날 운페어팍트(OU)'는 '원래부터 포장되어 있지 않은'이라는 이름의 소형 슈퍼마켓이다. 넓이 70㎡의 좁은 공간이지만, 포장 없이 진열·판매하여 필요한 만큼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을 살 수 있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과 언론이 주목했다. 취급하는 물품 중 유기농 비율은 80% 정도이다.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채소나 과일을 소포장하지 않고, 그에 따라 쓰레기도 나오지 않는다. 포장이나 용기를 재활용하기 이전에 재활용거리를 만들지 않는 개념이다. 가게에서는 채소나 과일은 물론 꿀, 커피, 와인 등 식재료 600여 가지를 포장 없이 저장 용기에 담아 두고,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의 양을 담아 오면 그에 따라 가격을 매겨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물품을 담을 용기를 직접 가져오거나 매장에서 판매 또는 대여하는 용기를 이용해 물품을 구입한다.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용기는 유리나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것으로, 얼마든지 재사용할 수 있다. 한편, 남은 식료품은 푸드셰어링(음식나눔)을 한다.

기존 슈퍼마켓에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포장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착안한 이 가게는 2014년 5월 진행된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여 운영을 시작했다. '포장쓰레기 없애기'라는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많고, 이러한 호응이 실제 소비로 이어졌다. 포장하지 않는다는 특성상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OU와 같은 비포장 가게는 유기농 인증 등과 같이 정부나 단체에서 법적으로 정한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니라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가게는 물품을 진열하거나 보관하는 데 좀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지만 유통 전반에 걸쳐 포장쓰레기를 크게 줄이고, 소비자들은 용기를 준비하거나 빌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불필요한 포장쓰레기를 줄이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환경을 살린다는 만족감이 약간의 번거로움을 충분히 상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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